한사람을 위한 사랑

세 여인의 엇갈린 인생

by 김정현 작가

바그너를 사랑한 세 여인!


바그너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미나 플래너


사업가의 아내이자, 한때 바그너의 정신적 지주이자 음악적 연인이었던 오토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


바그너의 두번째 부인이자 프란츠 리스트의 딸, 지그프리트 바그너의 어머니인 코지마 바그너


"나의 아내 미나(Minna)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인 마틸데(Matilde)


그리고 한스 폰 뷜로우의 아내 코지마(Cozima)

그들이 함께 한 이 자리의 묘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 현재의 내 마음을 물으면,

바로 답 할 수 없는게 맞을 것이다.

솔직히,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볼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바그너 부부가 스위스 망명 생활 중이던 1857년 가을 어느날 밤,

부유한 사업가 오토 베젠동크의 도움으로 마련된 바그너의 집에 작은 연주회가 열렸다.


이제 마악 완성된 악극 <발퀴레>의

피아노 스코어(piano score) 연주를 듣기 위해

참석한 세 여인.

그들의 감정선을 모두 읽어야 하는

바그너 입장에서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깃든

풍경일 것이다.


발퀴레 한 장면 묘사작품 (Arthur Rackham, 1910)


드라마틱 하면서 격동적이고 때론 극적인 인생을 산 바그너의 인생만큼이나 그가 추구한 음악 세계의 파급력 또한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이자 현재의 아내 ㅡ

미나 플래너


현재 사랑하고 있는 여인이자 뮤즈 ㅡ

마틸데 베젠동크


미래에 사랑해서 재혼하게 될 여인이자 바그너의 음악을 최고조로 부흥시킬 능력자,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의 아내 ㅡ 코지마 뷜로우


그녀들에게 발견된 공통점은

'바그너를 사랑한다' 라는 명제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이름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연인를 앉혀 놓고 음악회를 연 음악가는 바그너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 밤, 그의 음악 세계의 탁월성을 세 여인 모두에게 인정 받은 환상적인 날이기도 하리라.


독일의 작곡가이자, 19세기 후반 악극의 무한한 발전에 공헌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현대 음악의 커다란 흐름를 만들어냈던 인물이었다.


1834년 21세의 젊은 음악가 바그너는 마크데부르크의 베트만 극장의 악장직을 맡아달라는 극장측의 요청을 거절하려다가, 극장의 프리 마돈나로 활동하던 미나 플래너를 보고, 첫눈에 반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고픈 마음에 열악하고 변변치 못한 악단의 악장직을 덜컥 수락하고 만다.

젊은 바그너의 끓어오르는 혈기와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구애를 통하여 미나는 바그너의 사랑을 받아 들인다.


1836년 11월 24일 결혼식을 통하여 사랑의 결실을 맺는 듯 했으나, 불과 결혼한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미나가 군인과 야반도주하는 사건을 맞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결혼생활은 빠걱대기 시작했고, 빨간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나가 다시 바그너에게 돌아왔으나 그들의 관계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게다가, 1849년 5월 드레스덴 봉기 때 선두에 선 것이 화근이 되어, 지명 수배자로 몽타쥬가 시내에 걸리게 되면서, 일시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바그너는 더 이상 드레스덴에 머물 수 없게 되자, 미나와 함께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스위스에 도착한 바그너는 다행히, 미국에서 비단 상인으로 부를 거머쥔 독일인 출신 오토 베젠동크를 1852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고 지적인 오토 베젠동크의 든든한 후원 아래, 바그너의 음악가로써 작곡생활은 점차 안정을 되찾게 된다.


생활이 궁핍한 바그너를 안쓰럽게 여긴 오토는 자신의 관리인 즈루차를 통하여 바그너를 원조한다. 혹시라도 자존심 강한 바그너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직접 나서지 않는 오토의 따뜻한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당시 물질적인 후원을 넘어 바그너의 음악적 세계에 영향을 끼친 여인은 다름아닌 오토의 아내 마틸데였다.

시인이기도 한 마틸데는 아름다운 감성과 따뜻한 미소를 소유했다.


당시 바그너와 마틸데의 사랑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을 낳았고, 1857년 9월 마침내 그는 그녀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기사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야기는 그들의 농후한 사랑을 암시라도 하듯,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되어 있다.


마틸데는 이 사랑이야기를 보고, 바그너에게 "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라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둘만의 은밀한 사랑을 묘사한 작품의 탄생이 그녀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산물임을 확신했기에 감당하기 벅찬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바그너는 마틸데에게 그녀를 사랑하는 답례로 5곡으로 구성된 가곡집 <베젠동크 가곡집>을 작곡하여,

같은 해 12월 23일 마틸데의 생일에 맞추어 선물하는 센스까지 발휘한다.


시인이었던 마틸데가 쓴 시에는

천국에서라도 맺어지고 싶다는 그녀의 애절한 마음이 곡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바그너의 아내 미나가 그들의 애정행각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사건으로 오래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던 미나는 심장병이 심해졌고, 결국 취리히 근처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오토는 아내 마틸데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마틸데가 바그너와의 사랑에 대해 남편 오토에게 고백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2년여의 세월이 흐른 1859년 바그너는 오토 부부와 재회하게 되지만, 예전에 느꼈던 마틸데를 향한 사랑에 대한 감정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뒤였다.


바바리아의 루트비히 국왕2세


1864년 독일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바그너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동시에 수상 푸폴텐은 정상적이지 않은 바그너의 애정행각을 들먹거리며, 바그너를 후원하는 국왕을 공격함으로써, 뮌헨에서 추방되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


복잡한 가정사, 오페라 제작 실패로 늘어난 부채,

채권자들에게 늘 쫓기며 피신하는삶 등 어려운 시기에 동반자로 함께 했던 그의 아내 미나는

1866년 1월 25일 요양원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이 그리 평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기에 회한의 눈물은 그리 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시작된 또 하나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1857년 가을밤 취리히 바그너의 집에서 <발퀴레>연주에 초대된, 한스 폰 뷜로우의 아내 코지마였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는 열성적인 바그너 추종자이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1865년 초연했던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염문은 코지마가 1865년 4월 바그너와의 관계에서 딸 이졸데를 낳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뷜로우의 아내였음에도 바그너와의 사랑을 지속했고, 급기야 바그너의 사생아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바그너의 둘째 딸인 에바와 셋째로 태어난 아들 지그프리트를 낳음으로써 결국, 한스 폰 뷜로우가 코지마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 이혼에 합의하게 된다.


무려 4년여의 세월을 보낸 뒤에서야

부부관계는 정리되었다.

1870년 8월 25일 마침내 바그너와 코지마는 재혼하게 된다.

미나도 떠나고,

마틸데도 떠났으니...

이제 그와 평생 함께 할 여인은 코지마 한 명 뿐인 것이 분명해졌다.



인생이 어찌 사랑만 존재하겠는가?

그럼에도, 사랑이 없으면,

예술의 위대함과 존재가치가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사랑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바그너의 삶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1876년에는 바그너 자신만의 곡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극장인 바이로이트 극장이 바이에른에 완공된다.

실로 평생에 염원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과거 바그너의 음악적 친구였던 리스트에겐 남다른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딸 코지마의 불륜 상대자가 자신의 친구인 바그너라는 사실과 둘다 모두 유부남, 유부녀라는 사회적 질타를 받을만 한 사실 등이 아버지의 마음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장인인 프란츠 리스트의 차가워진 마음도 바그너의 음악적 성취의 위대함에 압도되어 바그너와 딸 코지마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또한 손자, 손녀 셋까지 얻었으니, 안정기에 접어든 그들의 결혼생활을 축복해주어야 하는 당위성도 얻었다.


코지마 바그너의 아버지이자 바그너의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


"이봐 바그너~ 자네가 내 사위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 세상엔 어떠한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군"



반프리트의 정원에 있는 바그너와 코지마의 무던


그들의 세상은 죽음 이후에는 평온함이어라.





2019. 5. 12. 바그너 사랑은 마침표가 아니, 쉼표였구나~


이전 09화단발머리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