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나의 하녀 마리 레텔로여!

by 김정현 작가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나의 하녀 마리 레텔로여!


내 생이 끝나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나를 지키고 있군.

어젯밤 신음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나의 거친 숨소리에 화들짝 놀라 다가온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고,

내 머리를 빗겨주고, 만져주며 옷 매무새를 고쳐준 이도 당신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죽는 날까지, 당신의 숨결과 성스러운 손길을 어찌 잊을 수 있겠소!

그렇소. 당신은 나의 위안이자 안식일지도 모르오.

아니지! 이제 당신은 나의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 하고 싶소."




며칠째, 심장 발작으로 누워있는 비제의 병상을 지키고 있는 마리는 지친 눈빛에 가망없는 죽음의 별리를 기다리 듯, 서글픈 마음 감추지 못한 채 흐느끼고 만 있다.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가인 프랑스 출신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삶은 세빌랴의 담배공장 여공 카르멘의 극적인 사랑과 자유분방한 삶의 편린이 비제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듯 하다.


성악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음악교육과 재능 덕분에,

10세 때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다.


1848~1857년까지 비제가 다녔던 파리 음악원 (2009년 모습)

이후 18세에 칸타타 <다윗>으로 로마대상 작곡부문에 입상하게 되고, 이듬해에는 <클로비스와 클로틸드>로 로마대상을 받게된다. 국비로 3년동안 유학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후, 그는 주로 오페라 작곡에 음악적 열정을 쏟아 부었다.


23세 젊은 청년 비제의 집에 어느날,

연상인 하녀 마리 레텔로가 들어온다.

그녀를 향한 단순한 호기심, 혹은 이성에 눈 뜬 그에게 연인의 대상으로 포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와 사랑의 행각은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일단락 지어지는 듯 했다.


비제의 아버지 아돌프는 비제의 장래를 위한 명분 뿐 만 아니라, 결코 비제와 마리를 맺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비제와 마리 사이에 태어난 딸 '잔'을 자신의 딸로 입적시킴으로써 대외적으로 잔은 아돌프의 딸로 알려졌다.


결국, 잔은 성인이 되어 결혼한 후에야 자신의 친부가 비제인 것을 마리를 통해 듣게 된다.


비제의 드라마틱한 사랑은 27세 때 파리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만난 41세의 여성 '세레스트 모가도르'로 이어진다.

세레스트는 16세 때부터 창부로서 인생을 살다가 우연히 댄서의 길을 걷는다.

이후 도박과 여자 문제로 재산을 탕진한 드 샤브리앙 백작과 결혼하게 되지만,

백작의 채권자들에게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부터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레스트의 남편은 일거리를 찾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버리고,

곧이어, 그녀는 회상록을 집필하게 된다.

그녀가 쓴 <황금 도둑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어, 남편의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게 된다.

창부에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모한 그녀의 인생을 통해 비제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여성의 모티브를 발견한다.


<카르멘>에서 세빌랴 담배 공장 여공인 집시

여성 카르멘의 자유분방하면서 정열적인 사랑의 몸부림은 아마도 세레스트 모가도르의 영향이 지대했으리라.


29세가 된 비제가 자신의 스승이자 작곡가인 플로망탈 알레비의 딸 주느비에브와 결혼하려 할 때,

알레비는 순순히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심장병이 있는 비제의 건강과 세레스트와의 스캔들에 얽힌 자유분방한 연애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비제는 어떤 여배우도 집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30세 때에 주느비에브와의 결혼을 허락받는다.




비제의 아내 쥬느비에브 (1849~1926)



자신의 일생을 비제의 그림자처럼 지낸 마리는

비제가 병상에 누워서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그를 정성껏 돌보고, 간호한다.

비단, 그녀가 비제 집안의 하녀이기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을지라도,

그녀 마음 속으로는 자신도 비제의 아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젊었을 때,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을 성의 유희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비제의 관념 속에 마리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카르멘>에서 젊은 병사 돈호세를 사랑하는 '미카엘라'와 가까운 성정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을까?

한 남자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헌신적인 여인의 모습이 마리에게 그림자와도 같다.



비제는 카르멘이다는 공식이 그의 일생을 통하여, 퍼즐처럼 맞춰진다.



1875년 당시 '카르멘' 포스터




카르멘 포스터 (1896, 미국)


Screenshot_20190527-214939.jpg 로열코벤트가든에서 열란 2009년 프로덕션 오페라 <카르멘>


마리 레텔로에서 시작된 비제의 사랑은 여러 명의 여인을 거쳐가며, 그의 인생이 그려졌고,

그녀들이 존재함으로써 비제의 음악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제의 사랑을 음악에 담그다. 카르멘은 자금도 진화하고 있다. 2019. 05. 26. 가원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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