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본 순간

치명적인 그녀

by 김정현 작가

오~~ 그대!

그대를 처음 본 순간


1892년의 말러


세상의 모든 별들이 그녀 앞에 나와 영접하러 기다리는 듯, 파티에 모습을 보인 그녀는 그 어떤 별보다 더 반짝거리는 혜성처럼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났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동공이 크게 흔들렸고

나는 숨쉬기를 잊은 사람처럼 숨은 이내 멎었고,

몸은 꼿꼿하게 굳어져 버렸다.


넋을 잃고 흐린 초점으로 먼 산 바라보듯,

그녀의 자태와 미소에 또르륵 흠뻑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파티에 참석한 남자들 대부분은

'빈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 불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 밤에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고, 마음속으로나마 그녀와 한마디라도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남자들 사이에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니,

이런 행운을 거머쥔 나는 그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인사를 청하며 내게 다가오는 순간,

섬광처럼 번뜩였던 나의 마음과 다짐을 잊지 못한다.




"이제 당신은 나의 것이라오. 이게 꿈은 아니겠지? "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1901년 어느 가을,

빈 궁전 오페라 감독이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는 한 부부의 초청으로 간 파티에서 평생의 뮤즈가 될 여인인 알마 쉰들러(1879~1964)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알마 쉰들러(1879~1964)


빈 화가 출신인 카를 몰의 양녀였던 알마는 음악과 미술적 재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여인이었고,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미모와 지성미를 갖춘 인텔리였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을 뿐 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숱한 스캔들의 근원이기도 했다.


알마의 요청에 의해 지인이 소개해 주는 형식으로 말러와 첫인사를 나누었지만,

조급한 성격과 완벽주의적이면서 강압적인 말투로 알마 앞에서 연설처럼 시작된 말러와의 대화에

알마는 금방 따분함을 느꼈는지,

줄곧 분위기는 냉랭했고,

둘만의 대화는 더 이상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색한 만남에 알마는 말러에 대한 호감과 흥미를 금세 잃어버렸다.


첫 만남의 좋은 기억이 없어서인지,

이후 그녀에게서 말러는 관심 밖의 인물로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남부터 그들의 사랑은 급속한 진전을 보이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둘 사이 대화 가운게 비친 '음악적 관심사'가 동일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리라.


작곡가 쳄린스키의 제자로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알마는 종종 작곡을 하기도 했고,

열광적인 바그너 음악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어느 날 쳄린스키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서,

온몸이 전율하듯, 감동했던 알마의 기억이 말러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알마의 마음이 말러와 서로 통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 이후로 알마와 말러의 밀애는 일사천리로 빠르게 급진전되었다. 음악을 매개로 한 그들의 사랑은 이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1901년 11월,

말러는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연애관계를 뒤로 하고 알마에게 청혼을 했으며,

이후 같은 해 12월 7일에 그들은 약혼을 한다.

두 사람은 1902년 3월 9일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신혼여행은 말러의 지휘가 예정됐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신혼여행지에서 남편의 지휘를 바라보며,

그를 향한 격정적인 사랑은 더해지고 경외감은 충만했다.


알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실했던 말러는 교향곡 제6번과 8번을 아내를 위해 헌정하기도 한다.


Screenshot_20190603-200316.jpg 첫째딸 마리아(왼쪽) ,둘째딸 안나(오른쪽)와 함께 한 알마 말러


1902년에 태어났던 첫째 딸 마리아가 성홍렬로 1907년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평소에도 조금씩 균열이 보였던 부부관계는 더욱 소원해지면서 악화 일로에 이르게 된다.

유부녀였지만,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던 알마의 매력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07년 피아니스트 가브릴로비치가 알마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반면, 말러는 알마와의 결혼생활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회의와 정신적으로 지친 생활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처지였다.


그 이면에는

첫째 딸을 잃은 슬픔과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도 묵묵히 지켜보아야 만 했던 말러의 고통이 극에 치달아 있었고, 그 상황을 꾹 참으며, 감내해야 만 했다.


이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덜기 위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서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으나 큰 진전이 없었고,

이미 심장병 발작이 시작되어 약물치료 처방을 받고 있었다.


1910년 교향곡 제10번을 작곡할 무렵,

알마는 휴양지에서 금발의 멋진 건축가를 만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사람이자, 근대 건축의 거장인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


그로피우스와 그의 딸 마농, 알마 그로피우스


이들의 밀애는 우연히, 알마에게 띄운 그로피우스의 편지가 말러에게 배달되어 그들의 관계가 발각됐고, 결국 이 일로 말러는 삶의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빠지게 된다.

이미 손상된 자존감은 회복불능 상태였고, 절망감만 더욱 커져갔다.


예술가들의 알마에 대한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말러 살아생전, 알마는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와도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녀의 남성편력에 대한 집착은 말러가 세상을 떠나는 1911년 5월 18일 이후에도 계속된다.


말러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915년 알마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재혼하고 딸 마농을 낳는다.

그들의 사랑 또한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알마는 그로피우스와 헤어지고, 이후 다른 예술가와의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다음 대상은 작가 프란츠 베르펠이었고, 그녀는 그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알마와 베르펠



프란츠 베르펠(Franz Werfel, 1890~ ~ 1945)


말러 살아생전에 밀애를 나눴던 오스카 코코슈카와의 사랑은 알마가 프란츠 베르펠과 이혼 후에 다시 만남을 갖게 되면서 지속된다.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알마


알마의 연애 편력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당대 숱한 천재적인 예술가들이었다.


말러의 죽음을 재촉했을 만큼 강박증을 안겨준 그녀의 미모와 매력으로 빨려 들어간 스캔들은

말러 혼자서 절대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가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에도 아내와의 이별을 걱정하기보다,

자신의 죽음 이후 알마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때부터인가 알마와 함께 해도 말러 자신은 이미 혼자라는 서글픈 생각에 외로움을 떨치지 못 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으리라.

그의 슬픔이 허공 위에 맴돈다.



그녀는 알마 쉰들러, 알마 말러,

알마 그로피우스,

알마 베르펠로 불렸고,


그녀의 일기장에 숨겨진 첫 키스의 주인공인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클림트 1902년

말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부터 쭈욱 염문을 뿌렸던 오스카 코코슈카의 사랑

과연 그녀의 사랑은 치명적이다.

오스카 코코슈카 (1886~1980) ㅡ 바람의 신부(폭풍)(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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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사랑의 흔적은 작품이 되다.

2015. 10.5. 월 가원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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