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누이여~

파니와 펠릭스

by 김정현 작가

"파니! 며칠전 누이가 쓴 '피아노 트리오' 1악장 Allegro molto vivace 15마디,

이 부분을 이렇게 치면 더 생생한 느낌일 것 같지 않을까?"




동생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으며,

피아노 앞에 함께 앉아 있는 남매의 다정한 모습은 봄날 창가에 비취는 햇살이 등뒤로 따스하게

내려앉 듯 평화롭기만 하다.

남다른 오누이 간의 우애로 잘 알려진 이들!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1805~1847)과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1847)


파니 멘델스존
13세의 멘델스존 -빌헬름 헨젤의 소묘




특히, 음악에 관한 한 서로의 의견은
존중되었고,

동지애와도 같은 끈끈한 남매간의 우애는 늘 서로를 더 의지하게 했다.


유태계 혈통르로 부유한 은행가 출신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어려서부터 집안에

문학, 예술, 철학가들이 자주 드나 들었고, 그들과의 교분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음악, 미술, 시, 철학 등을

골고루 배웠고, 그것이 음악적 재능을 뒷받침 해주는 토양이 되었다.


할아버지 모세(Moses)는 계몽주의 철학자요,

아버지 아브라함(Abraham)은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은행가였으며,

어머니 레아(Leah)는 아마추어 음악가로
어릴적 펠릭스에게 피아노를 직접 가르쳤을 만큼 실력자였고,

영문학, 불문학, 이탈리아 문학을 연구하는 인텔리 여성이었다.


이러한 대단한 가문에서 태어난 펠릭스는

이름(Felix)자체 그대로

행운아(Der Gluckliche)인 셈이었다.


1821년 2월, 12살 펠릭스의 저택에는

왕실의 카펠레 오케스트라가 초청되어 그가 작곡한 오페라

<병사들의 연애사건 >이 연주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그는 프로 음악가로 입문한 상태나 다름 없었다.


저택에 자주 초청된 오케스트라 연주 덕에,

펠릭스의 귀는 어려서부터 여러 악기가 갖고 있는 특성,

어떤 악기를 어떤 음색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갖추어졌었고,

이에 걸맞는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동반되어,

음악가로써 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그는

16세에 <현악 8중주>를 작곡하였고, 섬세함과 가벼움이 존재하면서,

교향곡 같은 웅장함이 한데 어우러진 관현악이라 할 정도의 스케일을 표현했다.


펠릭스 누이 파니 또한 어려서부터 이런 가정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기에,

그녀의 피아노와 작곡 실력은 펠릭스 그 이상이었음을 부모도 인정하는 바였다.

펠릭스 또한 누이의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당시에는 음악가의 길은 여성에게 열려있지 않거니와,

어렵고 희박한 길이기에 쉽게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펠릭스에게만 음악적인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그녀도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그녀의 속마음은 어땠을지 알 수 없으나,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쉽게 감당할 수 있지는 않았으리라.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그리고, 원하는 음악을

작곡가라는 직업을 앞세워서,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다는 것에

실망과 심적인 박탈감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선택을 해야 했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남동생 펠릭스의

탁월한 음악성이 세상에 알려져

작곡가의 길을 가는 것에

평생 그의 든든한 조언자가 되기로 마음 먹고,

동생을 위해 축복했으리라.


파니와 펠릭스 남매의 다정한 모습



'행운아'라는 이름의 뜻처럼 펠릭스는

일생동안 자신의 음악세계를 훤히
다 알고 이해해 주며, 조언해 주는 누이의 존재가

자신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나중에는 깨달았을 것이다.




1847년 5월 14일, 38세인 펠릭스는

영국 연주여행 도중에 누이 파니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접하고,

그 슬픔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누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자,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암흑같은 느낌이오."

흐느끼며, 이야기하고 있는 멘델스존을 아내 세실이 어루만지며 위로하지만,

누이를 잃은 슬픔은 더욱 커져만 갔다.


펠릭스는 연주여행의 피로와 신경쇠약증세까지 겹쳐, 급기야 병석에 눕고 말았다.

같은해 11월 4일 누이가 먼저 갔던 곳으로 그도 떠났다.


누이를 먼저 떠나 보낸 그리움이 그리도 애틋하고 큰 상심이었을까?


낭만주의 감성이 흠뻑 젖어 들게 하며,

봄기운 가득찬 잎이 기지개 펴 듯,

이 세상 모든 만물에게 밝고, 건강한 미소를 띄워 주는

펠릭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E단조. Op.64>를 듣고 있노라면,


언제나, 따사롭게~~

황홀한 현의 미끄러지듯,

빠질 듯 멈춰선 투명한 선율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명쾌한 리듬의

화려한 전개가 생생하게 귓가를 맴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 61,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 Minor Op. 64,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G Mmajor Op. 77 은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도 유명하다.


묘하게 이들은 모두 독일 출신 작곡가 들이다.

클래식 음악사의 고전주의로부터 낭만주의의 양대산맥의 심장부 역할을 당당히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작곡가들을 줄줄이 배출했으니, 부러움을 받을 만 한 나라 독일 역시!





때론 친구처럼,

연인처럼, 선생님처럼, 어버이처럼,

누이가 남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리 크고 강할 수 있을까? 2015. 5. 15.佳媛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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