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하다

그녀는 나의 마돈나

by 김정현 작가


'혼자 만의 사랑' 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짝사랑의 시작은 늘 그렇듯,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번뜩이 듯 시작됐다.




"오~~당신은 나의 사랑의 뮤즈!

영원한 마돈나,

무대 위의 당신은 분명 천사입니다."


써 내려간 연서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마지막까지 불태우리라는 다짐과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는

프로포즈로 가득했다.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던,
거장 루이스 헥토르 베를리오즈
(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Hector Berlioz (1845년) 모습



1827년 따뜻한 봄날 밤, 파리 오데웅극장에서 영국의 공연단의 셰익스피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베를리오즈는 첫 날부터 줄곧 무대 바로 밑 객석에 앉아서 공연 관람을 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반한 그녀 때문이었다.



오필리어로 분한 해리엇 스미드슨



오필리어 역을 하고 있는 해리엇 스미드슨의 모습



Charles Kemble 과 Harriot Smithson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기 장면

오로지 그녀를 보기 위해!

오필리어와 줄리엣을 연기한 헤리엇 스미드슨(HarrietSmithson1800~1854)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배우를 보고 이내 사랑에 빠져 버렸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일방적인 사랑의 연서를 통해서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1828년에는 연주회를 열어 어떻게든 그녀에게 환심을 사고 싶어 했으나, 모든 것은 그가 원하는 것처럼 쉬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허사로 돌아고 말았다.


빡빡한 무대 일정과 연예인으로써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콧대 높은 그녀에게 무명의 프랑스 작곡가의 사랑을 갈구하는 몸부림이 보일리 만무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영어만 읽고 쓸 수 있었던 그녀가 불어로 씌여진 베를리오즈의 연서를 읽을 수도 없었기에 내용을 전혀 모르는 그녀에게는 베를리오즈의 프로포즈 조차 몰랐다는 풍문도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프로포즈가 거절당한 것으로 이해했고, 이내 포기해 버렸다.

스미드슨이 공연을 마치고, 파리를 떠나자 베를리오즈의 사랑은 끝나는 듯 했다.


4년 동안 로마대상(Prix de Rome)에 도전했으나 한번도 1위를 달성하지 못한 그에게 다섯번째 도전인 1830년 8월에 칸타타 <사르다나팔>로 로마대상 1위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스미드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사랑의 복수라도 하듯,

표제음악 성격인 '어느 예술가의 생애'라는 부제로 <환상 교향곡, Op. 14>을 완성하였다.

제1악장 - 꿈, 열정

제2악장 - 무도회

제3악장 - 들판의 풍경

제 4악장 - 단두대로의 행진

제 5악장 - 마녀들의 밤의 꿈으로 총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을 통하여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사랑의 절망감을 드러내어 표현할 만큼

직선적인 감정선을 그대로 음악에 투영하였다.


베를리오즈가 작곡한 환상교향곡 악보



훗날 이곡은 그의 이름에 걸맞는 명성을 안겨준 곡이자, 후대에 등장하는 작곡가 바그너,

말러에게 관현악곡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선사하였던 곡이기도 하다.

그 당시 베를리오즈의 곡의 파격성을 보여주는 캐리커쳐


얼마 후 베를리오즈는 마리 모크(Marie Moke)라는 피아니스트를 만났고, 이내 그녀와 약혼을 하였다.

차선의 선택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마치 '갑돌이와 갑순이'에서 홧김에 장가가는 갑돌이의 모양새인 듯 했다.


로마대상 이후 줄곧 로마에 머물면서 여행을 하고 있던 3개월 쯤 뒤,
그에게 어이없는 소식 하나가 도착했다. 약혼녀 마리 모크가 파혼을 통보해 온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약혼녀였던 마리 모크(Marie Moke)


그녀의 선택은 이제 작곡가로 입문한 병아리 음악가 베를리오즈가 보다, 장래성이 보장되는 명문 피아노업체 플레이렐 사의 후계자인 카미유 플레이엘과 결혼으로 종착했다.

누구의 말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인지 마음이 변한 것인지 본시 사랑이 아니었는지 종 잡을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을!


마리 모크의 변심으로 마음이 더 복잡해진 베를리오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었을까?
스미드슨을 향한 사랑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 것 같다.


1832년 당시, 베를리오즈 모습


그 무렵 스미드슨은 파리에 와 있었고, 이 소식을 들은 베를리오즈는 '이번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라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1832년 12월 9일에 <환상교향곡>이 연주되는 연주장에 스미드슨과 극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리오즈의 적극적인 구애로 스미드슨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당시 베를리오즈의 부모는 그보다 연상인 스미드슨과 결혼을 탐탁치않게 생각해 반대했으나,

그의 굽힐 줄 모르는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우여곡 끝에 그들은 1833년 10월 3일, 프란츠 리스트의 입회하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녀를 향한 복수심의 발로에서 <환상교향곡>이 씌여졌다면. 1832년 완성된 생활에의 복귀라는 부제로 만들어진 <랠리오>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곡으로 완성되었다.


이렇듯 자전적이면서, 방황하는 자신의 사랑을 승화시켜,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출한 생생한 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세계를 과감하게 곡에 적용한 그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음악적 토대가 되어 곡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갈구했던 사랑이 이루어졌으나, 그들의 사랑은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파경에 이르고 만다.

베를리오즈가 정말 사랑했던 여인 해리엇 스미드슨일까?

아니면, 그 당시 화려한 무대 위에서 '오필리어와 줄리엣'으로 분한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과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와 미모에 그만 홀딱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베를리오즈의 음악적인 뮤즈였던 해리엇 스미드슨의 아름다운 자태(Eugene Deveria)

자식을 낳고 뚱뚱해진 아내의 모습과 더 이상 생명력 있는 여배우의 길을 갈 수 없는

아내의 모습에 일상으로의 무딘 생활과 밋밋함으로 사랑의 생명이 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마음을 꿰 뚫어보 듯, 자신의 적막하고 쓸쓸한 상황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스미드슨의 인생 후반부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 다.


하지만, 리스트가 베를리오즈에게 했던 말처럼,

그녀 생의 과업은 완수되었기에 그녀의 슬픔은 더 이상 없으리라.


"그녀는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고, 당신은 그녀를 노래했으니 그녀의 과업은 완수 된 것이오."


몽마르뜨에 있는 베를리오즈의 무덤




내 사랑 오필리어여

내 사랑 줄리엣이여~ 이렇게 불러도 그녀는 지금없다.

그래서, 사랑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 2015. 5. 18. 佳媛 생각


그래도, 베를리오즈 인생의 스미드슨은 그의 음악 속에 영원히 반짝거린다. 2019. 05. 02. 따뜻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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