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Sep 28. 2020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세상 만사는 건조하게 하지만 마음은 사랑이 넘치게



  스물한 살 때 쯤,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나만의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그 이후로는 수시로 ‘나는 지금 얼만큼 행복한가?’를 체크해보았다.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가 눈앞에 나타났다고 생각 해 보자. 그리고 세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겠지. 그 때 나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딱히 가지고 싶은 것이 없었고 딱히 달라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 때 생각을 했다. 아, 지금 지니가 나한테 와서 소원 3가지를 들어준다고 했을 때,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면 그게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뜻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25년동안 거의, 언제나 지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딱히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두 달간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합리화를 잘 하는 나라지만 이런 상황에까지 ‘그래도 나는 행복해!’ 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는 없었다. 지니가 온다면 나는 당연히 ‘엄마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라고 말 할 터였다. 그치만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행복은 잠시 재쳐두고,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나는 내 인생 자체가 너무나 큰 비극이었고, 그 무게가 무거워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애초에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이고, 그에 맞게 내 인생은 앞으로도 절대 행복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매 분 매 초 괴로웠다.    


  두 달 간 생각해본 결과,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나는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세상을 조금쯤은 건조하게 보는 것이다. 물론 아름답게 보는 것이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마냥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고, 자식이라면 대부분 부모보다 나중에 죽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모의 부재를 견뎌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냥 건조하고 담담하게 어제도,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다 보면 눈물이 멎기도 했다. 눈물이 다 멎고 가만히 이다지도 건조한 세상의 이치에 대해 생각 해 보고 있자면 내 가슴 속 슬픔의 역치가 저 끝까지 깊어져 아, 이렇게 다들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세상은 건조하게 보되, 동시에 가슴은 한없이 따뜻하게 가져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마음까지 건조하게 먹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천성이 사랑이 넘쳐 그렇게 살아서는 도통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는 엄마의 유산 문제나, 혹은 심리적으로 힘든 틈을 타 나를 꾀이려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니 주변 사람들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이었다. 가족도 믿지 말라고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전화도 안했다. 내 슬픔으로 그들을 물들이는 것처럼 느껴져 밤만 되면 이불을 입에 물고 소리도 안내고 울었다. 주변 남자들이 나를 위로하면 의도가 뻔하지, 하며 행여나 정들까 지레 벽을 세웠다. 이모를 있는 힘껏 미워했다. 가족도 별 거 없구나,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야지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하려다보니 사는 게 힘이 들었다. 하루하루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누굴 미워하는 것이 누굴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약해질 때면 나 지금 약해요, 하고 다 보여주고 싶었고 따뜻한 말 한마디면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고 그 온기에 감동했다. 마음에 넘치는 사랑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철썩 같이 믿다가 나중에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더라도 어찌됐건 철썩같이 믿었던 시간 만큼은 행복한 것이니, 차라리 그만큼이라도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 슬픔으로 그들을 물들이더라도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친구들은 나의 슬픔에 같이 울어주고 며칠이고 자신의 집을 내어주었다. 의도가 뻔한 남자들이어도 어쨌든 순간은 즐겁고 순간은 재미가 있으니 사는 데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이모도 혼자 사는 인생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겠나 생각하면 한편으로 조금 측은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냥 다 사랑하기로 했다는 거다.

  네, 저는 웬만하면 모든 사람을 믿고, 웬만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쪽을 택하고 싶어요.

작가의 이전글 단형을 처음 만난 12월-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