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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토리 Dec 21. 2016

카페 6 - 커피는 쓰다.(결말 포함,스포 주의)

대만의 첫사랑 시리즈. 


참 대만은 이런 류의 영화를 잘 만드는 것 같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그리고 이번 카페 6까지 대만의 영화가 풀어내는 첫사랑의 감성은 달달하기 그지 없다. 세 작품 모두 첫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원칙은 확실히 지켜지고 있다. 달콤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저마다 다른 재미가 있는 영화이니 카페 6를 재밌게 봤다면 앞의 두 영화도 보기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를 재밌게 봤던 관객의 입장에서 이번 카페6 역시 참 재밌었다. 첫사랑 이야기는, 비단 첫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영화란 결국 얼마나 관객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특히나 이런 감성적인 로맨스 영화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카페6의 주인공은 불나방 같은 소년이다. 누군가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커징텅처럼 조심스럽고 풋풋한 첫사랑을 했겠지만 또 누군가는 이번 카페6의 관민록처럼 불같은 사랑을 했을 것이다. 모든 걸 다 퍼주는 그리고 노력하는 그런 사랑. 그런 첫사랑을 했던 사람들에게 더더욱 깊게 와닿을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뻔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 자체는 굉장히 뻔한 영화이다. 흔히들 말하는 클리셰 덩어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같이 비교해보면 더더욱 명확하다. 시작은 나이가 들어있는 현재.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 남주보다 공부를 잘하는 여주. 그리고 싹트는 사랑. 하지만 결국 여주와 남주는 다른 대학으로 진학. 장거리 연애를 극복하지 못함.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대만 영화들이 가지는 힘은 어마어마 하다고 생각한다. 유치한 장면들이 연달아 나오지만 눈살이 찌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첫사랑 이야기. 너무나도 많이 다루어졌던 주제지만 뭔가 대만 영화는 더 풋풋하다. 풋풋하다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보면서 나도 설레게 만드는 그 힘.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실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중간 중간 남주와 여주의 감정선이 이해가 안 가는 뭔가 맥이 탁탁 끊긴 듯한 스토리 전개. 그리고 결말. 갑자기 전개가 왜 이래? 라고 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반전과 함께 찾아오는 허무감.


이해한다. 그리고 나도 이 의견들에 공감한다. 분명 관민록(남주)과 심예(여주)의 감정선을 더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뭔가 휙휙 지나가버리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알고보니 150분 짜리 영화를 100분정도로 잘라냈다고 한다. 감독판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ㅠㅠ) 아마 150분짜리 영화를 본다면 이러한 부분은 해결될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결말. 사실 카페를 연 건 관민록의 친구였고 관민록은 자살을 했다. 라는 다소 극단적이고 자칫하면 지금껏 몰입해왔던 관객들에게 원치 않는 뒷통수를 한 대 팍! 하고 치는 그런 결말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영화를 찬찬히 돌이켜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불나방 같은 사랑을 했던 관민록이다. 심예에게 모든 걸 다 쏟아 부었다. 그러는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예와도 헤어지게 된다. 관민록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치 불꽃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화르륵 타버리고 잿가루만 남아버린 것이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장면이 중반부에 보면 나온다. 심예가 관민록에게 커피를 타주며 하는 대화가 있다. 심예가 카푸치노인데 너무 달게 된 것 같다고 하자 관민록은 적당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심예는 커피는 달아서는 안된다며 써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블랙커피를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쓴 맛 뒤에 달콤함이 있다고 말한다. 관민록은 쓰면 그게 약이지 라며 계속 이런 대화를 할거냐고 묻는다.


다음 대화를 그들의 인생에 대입해보면 답이 나온다. 관민록은 쓴 맛을 모른다. 심예와 사귀면서 얻게 된 달콤함만을 원한다. 이런 걸 알려주는 장치는 중간에도 계속 나온다. 심예에게 처음 그림과 함께 준 것도 초콜렛이었고 마술을 하는 심예에게 찾아가며 가져간 것도 초콜렛 꽃다발이었다. 초콜렛. 그 달콤함. 그 달콤함에 빠져 자꾸 인생의 쓴 맛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반면 심예는 어땠는가? 계속해서 현실을 바라본다. 앞으로를 생각한다. 인생의 쓴 맛을 생각하며 후에 올 달콤함을 얻길 원한다. 커피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달콤함만을 알고 있는 관민록은 쓴 맛을 이해하지 못했다. 헤어지면서 나왔던 말을 떠올려보자. 심예는 관민록에게 너는 나와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럼에도 관민록은 나는 너에게 정말 노력했어! 라는 자기최면에 빠진 채 그걸 외면했을 뿐이다. 쓴 맛을 외면한 관민록에게 돌아온 것은 더 쓰라린 아픔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신다. 인생의 최대 쓴 맛을 순식간에 맛보게 된 것이다. 이걸 이 불나방 같은 관민록이 버틸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인생엔 달콤한 초콜렛만 있는 줄 알았던 관민록에게 준비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게 된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을 것이다. 그걸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고. 이게 결말이다. 결말은 어떤 방향으로도 나올 수 있도록 착실히 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이런 풋풋한 첫사랑 영화에 이런 극단적인 결말이 어울리는 가에는 물음표가 들긴 한다. 그래도 나는 납득할만한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는 쓰다. 


나도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너무 쓰다. 커피를 마시느니 차라리 핫쵸코를 마시는게 좋다. 나도 관민록 같은 사람인걸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나 달콤함을 원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 항상 달콤함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쓴 맛 뒤에 찾아오는 달콤함이 더 달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민록의 인생에 조금만 쓴 맛을 넣어줬더라면 결말은 180도 달라져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달콤함은 너무나도 컸으며 찾아온 쓴 맛 역시 너무나도 컸다. 심예가 그에게 쓴 맛을 알려주려고 할 때 그걸 한 번이라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런 불나방같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관민록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커피를 조금씩 마시고 있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메리카노도 한 잔을 다 비워봤다. 너무나도 썼다. 그 뒤에 숨겨진 달콤함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찾아가는 맛도 있는 법이니까. 다음번엔 카페에 가면 카푸치노를 마셔봐야겠다. 달달하지 않은 카푸치노. 커피는 써야하니까. 그게 커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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