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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외의 Feb 09. 2022

믄옵씨



2020.05.28

할머니의 언성에 믄옵씨가 잠에서 깬다. 어머니는 오늘도 믄옵씨의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아가미만 뻐끔거린다. 매일 할머니의 잔소리에 잠이 깨는 믄옵씨는 이 상황이 자연스럽다. 소란스럽던 할머니가 어머니를 밀치고 지나가고 어머니는 어항에 떠다니는 지저분한 것들을 뻐끔거리며 삼켜 냈다. 믄옵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에게 소리쳐 보기도 했지만 ‘네가 교육을 잘못해서 애가 버르장머리 없이 바락바락 대드는 거 아니냐’라며 되려 어머니를 더 못살게 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어머니의 곁에서 어항 청소를 돕는 게 최선이었다. 아버지는 차라리 방관자 역할 뿐이라면 다행이었다. 늘 방관만 해 오다 이따금 믄옵씨가 터질 때면 할머니 편을 들며 두 모자를 지탄했다. 어머니의 곱던 주황빛 비늘은 하루하루 윤기를 잃어 갔다. 어항에 이물질을 삼켜 내느라 배가 불러서 끼니를 거르니 건강이 악화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너무도 조용해서 낯선 아침. 늦잠을 자던 믄옵씨는 꿈자리가 사나운 탓에 눈을 떴다. 믄옵씨의 시선이 닿은 곳,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어머니가 보인다.



2020.06.01

실크로 만들어진 듯 주황빛 비늘의 금붕어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인다. 믄옵씨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주황빛은 핏빛으로 물들고 비늘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눈을 뜬 믄옵씨는 거친 숨으로 입을 뻐끔거린다. 어머니의 부재로 조용해진 아침을 깨우는 건 악몽뿐이다. 몬읍씨가 정신을 다듬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할머니가 ‘물이 왜 이렇게 더럽냐’라며 언짢은 기색을 보인다. 믄옵씨는 참았던 울화가 터진다. ‘어머니가 그 더러운 걸 치우느라 죽은 거 아니냐’고 소리치자 할머니와 자갈 뒤에 있던 아버지가 동시에 믄옵씨를 쳐다본다.

“누가 죽었다고?”



2020.12.01

어젯밤, 할머니는 산호초에 걸려 아가미에 상처가 나고 아버지는 바위에 부딪혀 두통에 잠이 들었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 믄옵씨는 먼저 깬 아버지에게 간다. 두통은 괜찮냐고 묻자 이상하다는 듯 빤히 쳐다보고 믄옵씨를 지나쳐 간다. 할머니에게 상처를 묻자 그제서야 아가미 상처를 보더니 화들짝 놀란다. 믄옵씨의 예상과 계산은 맞았다. 그들은 3개월 주기로 기억을 잃었다.



2021.02.28

믄옵씨가 산책하던 할머니를 부른다. 믄옵씨가 부르는 소리에 뒤도는 순간 할머니의 꼬리가 산호초에 휘감기고 산소 공급기 물살에 휩쓸려 수면 위로 올라간다. 아래로 내려가려 헤엄쳐 보지만 거센 물살에 공기 중에 나갔다 들어왔다, 할머니의 정신은 혼미해진다. 믄옵씨가 가만히 위를 바라본다. 산호초에 꼬리가 묶인 채,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2021.03.01

역시나 믄옵씨의 바람대로 아버지는 할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이 어리석은 자는 어머니의 죽음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믄옵씨는 어머니에 대한 연모를 주체하지 못한다. 이제는 둘 뿐이라 누군가 기억을 잊어야 할 필요가 없으니, 곧바로 계획을 세운다.



2021.03.17

은신처로 놓인 작은 항아리는 아버지만의 상석이었다. 일찍이 잠자리에 든 아버지를 확인 후, 믄옵씨는 새벽 내, 자잘한 자갈부터 꽤 큼지막한 자갈까지 모조리 항아리 입구에 담을 쌓았다. 아침이 되고 아버지는 얼굴 앞까지 꽉 막힌 벽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빠져나오려 지느러미를 흔들어 보지만 속수무책이었고, 믄옵씨를 찾아 소리쳤지만 믄옵씨는 밖에서 방관하며 바라보고만 있다. 그렇게 아버지는 자갈로 쌓인 항아리에 갇혀 며칠을 보낸다. 먹을 것이 없어 자갈에 붙은 산호초 찌꺼기를 먹어가며 연맹했지만 소용없었다. 허망한 눈으로 입만 뻐끔거리다 이내 그마저도 멈춘다. 믄옵씨는 자갈 틈 사이로 흔들던 지느러미의 미동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다. “그러게, 잘 좀 하시지 그랬어요.”



2021.04.01

적요한 어항 속엔 산소 공급기의 ‘뽀글뽀글’ 소리만 들린다. 믄옵씨가 눈은 껌뻑, 입은 뻐금 이며 잠을 깼다. 늘 슬픈 눈이었지만 믄옵씨 앞에선 기꺼이 웃어 보이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모든 점을 질타하던 할머니와 방관하던 아버지도 보이지 않는다. 큰 어항 속을 홀로 유영하고 있던 그때, 거센 물살이 일더니 뜰채가 들어와 믄옵씨를 들어 올린다. 물 밖의 산소를 마시고 잠깐 기절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다. 믄옵씨의 뻐끔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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