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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 '말'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과 사회 통합의 조건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넓은 의미에서, 하버마스의 심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는 담론을 통한 참여자들 간 합의(consensus)를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 목표 속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집합적 삶을 형성하고, 준수하며 살아가야 할 절차적 규범들을 확립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맥락에서, 하버마스가 자신의 의사소통 행위이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에서 구체화 한 '의사소통적 전환(communicative turn)'은 그의 민주주의 이론의 근원적 요소로써 지속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의사소통에 관한 그의 분석이 “더 나은 논증을 위해 합리적으로 동기화하는 힘 (the “rationally motivating force of the better argument,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82)”과 같은 일련의 실용적 전제들을 통합하긴 해도, 하버마스의 심의민주주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적입니다.

이 의사소통적 특성은 정치적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논의될 필요가 있는 다양한 규범, 태도, 그리고 가정들을 식별하게 하는 주요한 역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의사소통적 행위'로 하버마스가 의미하는 바를 간단히 언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버마스가 주체들을 “이들 언어 공동체의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생활세계 (the “intersubjectively shared lifeworld of their linguistic community, Habermas, On the Pragmatics of Communication, 219)” 속에서, 혹은, Deranty의 용어로, “언어로 구조화된 초-주관적 상징 세계 (supra-subjective symbolic world structured by langauge, Deranty, 2011, 63)”안에서 파악할 때, 그는 의사소통적 행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의사소통 행위 개념은 발화와 행동 가능한, 상호 간 관계를 확립하는 (언어적 수단이든 언어 이외의 수단이든 간에) 적어도 두 주체의 상호작용을 가리킨다. 행위자들은 합의에 의한 자신들의 행위를 조정하기 위해 행위 상황과 행위 계획에 관한 이해에 도달하고자 한다."

> "The concept of communicative action refers to the interaction of at least two subjects capable of speech and action who establish interpersonal relations (whether by verbal or by extra-verbal means). The actors seek to reach an understanding about the action situation and their plans of action in order to coordinate their actions by way of agreement" (Habermas,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 I,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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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간 언어적 표현의 맥락에서 하버마스가 의사소통적 행위를 통한 "이해 도달과(Verständigung)" "합의 도출을 (Einverständnis)" 지칭할 때, 중요한 요소는 의사소통 행위자들 간 타당성 주장의 수용 가능성에 놓여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화자는 자신이 말한 것에 관해 청자와 이해에 도달하고자 할 때, 자신의 발화 행위에 대해 적절한 이유와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 청자에게 타당성 주장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의 형식 속에서, 이러한 타당성 주장의 수용 가능성은 이후 청자의 yes/no 반응과 함께 평가됩니다.

결과적으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발화 대상에 관해 합리적으로 동기화된 승인에 의존 (depends on rationally motivated approval of the substance of an utterance, Habermas,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134)”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에게,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상호 간 승인된 타당성 주장의 전제된 토대를 배경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 (the “process of bringing about an agreement on the presupposed basis of validity claims that are mutually recognised, Habermas, On the Pragmatics of Communication, 23)”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의사소통 행위는 “상호 간 이해를 지향하는 언어 사용 (the “use of language oriented to mutual understanding, Habermas, Betwen Facts and Norms, 18)”에 의존하고, (행위) 조정 효과를 갖습니다.



이 맥락에서, 저는 우리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 개념에 관해 좀 더 진중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내 민주주의적 담론을 포함한 거의 모든 발화 행위에서 우리는 상대방에게 타당성 주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는지 말이지요. "우리는 의사소통 행위에서 서로의 타당성 주장에 관한 합리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많은 경우, 매우 자극적인 주장에 좀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우리는 내 주장에 추가적 정당성을 제시하는데 다소 간 소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타당성 주장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전해 듣거나 떠도는 이야기들, 그리고 다수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례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최근에는, 좀 더 심각하게, 유튜브 영상 등이 그 주요한 근거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 속 '말'의 의미가 점차 그 무게감을 잃어가면서 혼탁해지고 있는 주요한 원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엄령은 계몽령이다"와 같은 사례처럼 말이지요. 이 주장이 통용된다는 사실은, '계몽'이라는 말의 쓰임과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두 명사들을 연결할 때 그 기저의 의식 흐름의 관점에서, 정치 철학 전공자인 저에게 매우 치욕스럽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조만간 글로 정리해 둘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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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국지적 기준을 너머 확대되고 무제약적 해석 공동체를 포괄하는 무제한적인 타당성 주장이 생활세계의 사실성 속으로 스며들 때,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이상적 긴장'이 유발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재생산되는 수많은 사실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타당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요.

하버마스 역시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이 긴장을 다루는 것이 행위 조정과 사회 통합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형성을 따라 행위 조정이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들을 통해 발생 (takes place through processes of reaching understanding,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35)”하는 한,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확신은 사회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하버마스는 상호작용 참여자들이 타당성 주장에 따라 각자의 행위를 지향해야 하고, 사회적 사실은 이들 간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이상화된 혹은 정당화된 타당성 주장에 의존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논증적 교환은 타당성 주장을 비판에 붙일 수 있는데, 이는 사회 통합이 공유된 신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근거들의 탈안정화 효과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1) 타당성 주장들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검토할 수 있는 논증적 과정을 통해,

(2) 우리가 공유하고 있던 기존의 신념들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은,

(3) 사회 통합이 결국 이러한 공유된 신념들의 안정성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셈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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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버마스의 관심은 합의 형성 과정에 내재한 “사실성과 타당성 사이의 폭발적 긴장 (explosive tension between facticity and validity, Ibid., 21)”으로 표현되는, 위태로운 이 과정으로부터 사회 질서가 발생할 수 있는 방식에 관한 질문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에 따르면, 한 편으로, 생활세계는 “의사소통 참여자들이 해석의 협력적 과정 속에서 끌어올리는 당연시되는 것들, 확고한 확신의 저수지 (reservoir of taken-for-granteds, of unshaken convictions that participants in communication draw upon in cooperative processes of interpretation, Habermas,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 II, 124)”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배경 지식의 “직접적인 확실성 (unmediated certainty,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22)”을 제공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 확실성은 생활세계 내에서 사실성과 타당성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문화적으로 전승되고 습득된, 그리고 명시적인 지식으로 포장된, '권위의 양식'으로써, 고대 제도들 역시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긴장을 융합해 왔습니다.

생활세계와 달리, 이러한 제도들은 강제력을 가진 동시에 유대 형성적인 권위에 맞선 위반을 처벌함으로써 집합체의 사회 통합을 보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버마스에 따르면, 사회가 점차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자기 민족 중심의 관점들이 확대될수록, 사회적 분화과정은 더욱 가속화 되게 됩니다.

'생활세계의 합리화'에 관한 하버마스의 서술은 이 진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의사소통 행위이론 2권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 생활세계의 구조적 분화가 합리화로 묘사될 수 있다면, 삶의 역설적 조건들에 관한 비은유적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사회 병리들은 '생물학적' 목표 상태가 아닌, 의사소통적으로 얽힌 상호작용이 빠질 수 있는 모순과의 관계 속에서 측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만과 자기모순은 타당성 주장들의 사실성에 의존하는 일상적 실천 속에서 객관적인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it is possible to speak in a nonmetaphorical sense of paradoxical conditions of life if the structural differentiation of lifeworlds is described as rationalization. Social pathologies are not to be measured against ‘biological’ goal states but in relation to the contradictions in which communicatively intermeshed interaction can get caught because deception and self-deception can gain objective power in an everyday practice reliant on the facticity of validity claims” (Habermas,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 II, 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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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하버마스가 보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러한 조건들 말입니다.

한 편으로, (i) 사회의 다원화가 공유된 정체성의 파편화, 그리고 합의를 촉진하는 생활세계 속 실질적 자원의 하락을 야기하는 조건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ii) “물질적 재생산의 기능적 요구가 개개인이 목적 합리성의 명시에 따라 각자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영역의 확대를 요구하는 (functional demands of material reproduction call for an increasing number of areas in which individuals are left free to pursue their own ends according to the dictates of purposive rationality,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xix)”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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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건들은 의사소통적 행위가 점차 자율화되고 전략적 상호작용과 분리될 때, “사회 질서의 타당성과 수용이 안정화될 수 있는 방식(how the validity and acceptance of a social order can be stabilised, Ibid., 25)”에 관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마스의 직접적인 언급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따라서 규범으로부터 중립화된 행위를 요구하는 근대의 복잡한 사회라는 조건 아래에서는, 제약에서 풀려난 의사소통 행위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회 통합의 짐을 벗어던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담당할 수도 없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 "Under the modern conditions of complex societies, which require self-interested and hence normatively neutralised action in broad spheres, the paradoxical situation arises in which unfettered communicative action can neither unload nor seriously bear the burden of social integration falling to it" (Ibid., 37). <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이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자 할까요?


그는 (i) 행위자들이 상호 간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규범적으로 규제된 전략적 상호작용을 강조함으로써, 그리고 (ii) 이러한 양식을 실증화해 온 근대법으로 초점을 향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가 보기에, 사적인 성공 지향 행위와 상호이해 지향 행위를 포괄할 수 있는 이러한 규정들은 사회 통합을 위한 두 가지 (모순적인) 조건들을 요구하게 되는데요.

첫째, 이 규정들은 전략적 행위자가 객관적으로 선호되는 방식에서 자신의 행위를 조정하는 의무감을 갖도록 하는 범주까지 관련된 정보를 수정하는 실천적 제약을 부과해야 합니다.

둘째, 이 규정들은 동시에 수신인들에게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통합적인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러한 의무들은 규범적인 타당성 주장이 상호 간 승인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버마스에게, 사회 통합의 요구들을 충족하는 이러한 (행위적) 규범들은 "사실적 강제와 적법한 타당성을 동시에 따르고자 하는 자발적 의지 (willingness to comply simultaneously by means of de facto constraint and legitimate validity, Ibid., 27)”를 통해 산출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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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해 보면,

다층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가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과 (전략적 행위)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전략은 (의사소통적 행위) 필연적으로 갈등상태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대화로 잘 풀어가보자"는 접근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사실성과 타당성 속 하버마스의 주요한 기획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주의 속 법적 구조의 정당성 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의 제안을 좀 더 친숙한 용어로 바꿔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전략적 행위자들에게도 특정한 제약이 필요해. 하지만, 이 제약을 따르는 것이 단지 처벌을 두려워해서가 아닌, 서로 수용 가능한 이유와 정당성을 기반으로 해야 하지. 왜냐하면, 이 제약이나 규칙은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한, 좀 더 윤리적으로는, 우리의 좋은 삶을 위한 사회 통합에 필수적인 것이니까."


이제 하버마스는 이러한 규범들을 “개인적 자유에 법의 강제력을 빌려주는 권리 체계 (system of rights that lends to individual liberties the coercive force of law, Ibid., 27)”의 틀 속에서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이 기획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이 기획을 위한 그의 제언은 무엇일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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