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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3. 나는 법의 저자이자 수신인이 될 수 있을까?

법적 타당성, 그리고 시민의 자율성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법의 합법성에 관한 논의를 통해, 하버마스가 근대법의 이중 구조 - 법의 실정성(사실성)과 정당성(타당성) - 를 밝히고, 법에 사회 통합으로써 역할을 부여하는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서술과 함께, 하버마스는 법이 강제력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수용 가능한 체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56).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물음이 제기됩니다.

우리가 잘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법은 고정된 절대 상수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법은 사회적 정합성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제도적 질서이고, 그 정당성 역시 고정불변이 아닙니다.

실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입법자는 시민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해서 언제든지 새로운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이러한 법안은 입법 절차를 통해 공식적으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 가능한 근대법 속에서, 우리는 어디서 그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변동 가능한 법 규칙은 어떻게 하버마스가 언급한 법의 이중 구조 - 사실성과 타당성 -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규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규칙'이 될 수 있을까요?

하버마스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도덕법과 근대법을 구분하면서 논의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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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덕법 vs. 근대법

하버마스에 따르면, 도덕 법칙은 권리와 의무 사이에 고유한 대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규범을 만드는 사람과 이 규범을 따르는 사람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도덕법의 저자와 수신자는 동일인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다"라고 해 봅시다.

내가 이 도덕 법칙을 지켜나가는 한, 이 법의 저자와 수신인 모두 '나'입니다.

내가 만든 규범을 스스로 따르기 때문이지요.

이와 관련한 하버마스의 진술을 살펴봅시다.



“칸트적 관점에서 도덕적 자기 결정은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공평 무사한 판단에 따라 가정한, 혹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합의된 판단에 따라 가정한 규범들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한 통합된 개념이다.”

> "Moral self-determination in Kant’s sense is unified concept insofar as it demands of each person, in propria persona, that she obey just those norms that she herself posits according to her own impartial judgment, or according to a judgment reached in common with all other persons" (Habermas, "On the Internal Relation between the Rule of Law and Democracy," 1995, 15).



하지만, 근대법에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떤 법을 따라야 할 의무를 가지는 것은 단지 우리 안의 도덕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컨대, 우리는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가진 시민이기 때문에, 동시에 그 권리를 행사할 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도 함께 지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법적 의무는 '자격(entitlement)'의 결과로써만 발생합니다.

이 의무는 오직 “개인적 자유에 대한 제정적 제약(statutory constraints on individual liberties, Ibid., 14)”에서 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법적 의무는 각 개인이 법적으로 승인된 권리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제도적 자격'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권리에 대한 상호 호혜적 인정은 오직 정치적 입법자에 의해 충족되고 보완됩니다.

이는 법의 영역에서 법의 저자와 수신자 간의 구별이 등장한다는 점을 의미하는데요.

도덕법과 달리, 근대법은 내가 직접 만든 규칙이 아닌, 입법 기관 (또는 정치 공동체)이 만든 규칙입니다.

나는 그 법을 '받아들이는 사람', 즉 법의 수신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 구분과 함께, 그리고 법이 사회 통합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면 규범적으로 타당한 규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하버마스는 이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절차가 입법 과정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버마스는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은 사적 주체로서 역할을 너머,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민들로서, 이들은 “자유롭게 연합된 법적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관점(the “perspective of members of a freely associated legal community,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32)”을 채택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사회적 삶을 관장하는 규범적 원리에 관해, 이 공동체 속 합의는 전통을 통해 이미 확립되어 있거나 규범적으로 인정된 절차들을 따라 상호 이해를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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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법치와 민주주의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는 법치(the rule of law)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를 식별합니다.

그에 따르면, 입법 과정이 법 일반에 내재한 사실성과 타당성 간 통합을 달성하는데 공헌해야 한다면, 정당한 제정 과정은 정치적 참여와 의사소통에 대한 권리를 필요로 합니다.

이는 이러한 권리들이 “의사소통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태도 속에서(in the attitude of communicatively engaged citizens, Ibid.)”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을 함축하는데요.

권리 위에 확립된 법적 질서를 위한 정당성 주장은 오직 “모든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들의 합치된, 그리고 통합된 의지의 사회 통합력(the “socially integrative force of the ‘concurring and united will of all’ free and equal citizens,” Ibid.)”을 통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법의 실정성이 '입법의 민주적 절차가 성문화된 규범들의 합리적 수용 가능성이라는 신념을 위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사고'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단순히 “임의적인, 완전히 우발적인 선택의 사실성(the “facticity of an arbitrary, absolutely contingent choice," Ibid., 33)”이 아닌, “정치적으로 자율적인 시민들의 합리적 자기 결정(the “rational self-legislation of politically autonomous citizens," Ibid.)”에서 나타나는 정당한 의지(the legitimate will)가 법의 실정성 속에서 표현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하버마스에게 시민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치는 “오직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이 합리적 담론에 참여한 이후 이에 동의할 수 있을 때 만이("only if all those possibly affected by it could consent to it after participating in rational discourses," Habermas, 1995, 16)”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결론은 자연스럽습니다.

즉, 법의 수신인이자 저자로서, 우리는 법적 자율성을 자기 결정 (혹은 자기 입법)이라는 사고 속에서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후 하버마스는 법적으로 구성된 이 정치적 의사소통의 함의를 자신만의 민주주의 원리와 함께 보다 정교히 하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이 연재글의 말미에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버마스에게, 근대법은 시민의 가치 지향성에 집중된, 그리고 궁극적으로 의사소통 행위와 심의로부터 나오는 연대성을 통해 번성합니다.

(여기서, 하버마스가, 고도로 복합적인 사회 속에서, 근대법의 통합적 성취가 단지 규범적 합의 혹은 연대성의 의사소통적 원천의 전적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에 관해 직관적인 해설을 일반 독자들에게 얼마나 제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이후 기회가 된다면 이 점을 다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다음과 같이 법의 합법성에서 법의 정당성이 발생할 수 있는 법규 내 법적 타당성의 본성을 해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복합적인 사회의 기능적 요건들( the "functional requirements of a complex society," Habermas, 1996, 83)”을 충족하는 것을 너머, 법은 또한 의사소통적으로 행위하는 주체들 간 상호 이해를 통해, 즉 “타당성 주장의 수용가능성(the “acceptability of validity claims," Ibid.)”을 통해 궁극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통합의 불확실한 조건들(the “precarious conditions of a social integration,” Ibid.)"을 충족해야 한다.

그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자율성의 행사를 보장하는 권리들(the "rights that secure for citizens the exercise of their political autonomy," Ibid.)"을 강조함으로써 법적 타당성의 양가적 본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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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두 개의 자율성 -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그러나, 흥미롭지만, 다소 간 혼란스럽게도, 하버마스는 법의 실증적 특성이 개인적 자율성을 특정한 방식에서 쪼개지도록 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덕법과 달리, 법의 영역에서는 법의 수신인과 저자 간 구분이 분명합니다.

개개인의 자율성 실행은

(i) “개인적 자유의 사적 사용( the "private use of individual liberties,” Ibid., 451), 즉, 법의 수신인이 향유하는 사적 자율성, 그리고

(ii) “의사소통적 자유의 공적 사용(the "public use of communicative liberties,” Ibid.), 즉, 법의 저자가 시행하는 공적 자율성으로 각각 나뉘게 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는 법질서 내 견고한 권리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이러한 자율성의 두 가지 형태가 상호 간 서로를 전제해야 하고, 상호 기원적(co-original)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역사적으로 이 둘 간의 연결은 법 체계 속에서 분명하게 해명되지 않았고, 그리고 사회-계약 이론 속에서 서로 대립해 왔습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으로써, 인권(human rights)과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 개념은 오늘날까지 입헌적 민주국가의 규범적 자기 이해를 규정해 왔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닌데, 각각의 개념은 법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자율성의 서로 상이한 형태에 상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마스는 (i) 독일 민법 교리 속에 새겨진 주관적 권리가 19세기 도덕적 자율성 개념에서 유래한 객관적 법에 종속되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ii) 사회 계약에 관한 칸트 해석 속에 제시된 것처럼, 도덕적으로 근거 지어진 동등한 자유를 향한 기본적인 인권과 국민주권 원리의 결합을 통해 이 두 가지 자율성의 구분을 분명히 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Ibid., 84-94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하버마스는, 은유적으로 말해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통 속에 뿌리내리고 있던 에토스의 규범적 본질이 탈인습적 정당화과정에 종속된 후, 이 두 가지 이념은 다른 형태의 자율성을 가정하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즉, 도덕적 자기 결정의 표현으로써, 사적 자율성은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인권으로 발전해 왔고, 반면, 윤리적 자기실현의 표현으로써, 공적 자율성은 공화주의 전통 속에서 국민주권으로 변모해 왔던 것이지요.

이는 두 개념 사이의 상호보완보다는 경쟁 관계를 함축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폭정적 다수의 잠재성에 관해 우려해 왔고 개개인의 전정치적 자유를 보장하고 정치적 입법자들의 통치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인권의 우선성을 가정해 왔습니다.

반대로, 공화주의자들은 인권이 정치 공동체의 의식적으로 전유된 전통 속에 통합될 때 만이 이 공동체 안에서 구속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민적 자치 조직의 내재적이고 유기할 수 없는 가치를 강조해 왔습니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실천이성과 통치 의지를 통일할 수 있는 방식에서 자율성 개념을 형식화하고자 했던 루소와 칸트 조차도 인권과 국민주권을 완전히 통합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난제와 관련하여 하버마스의 직접적인 서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성적 의지가 오직 개별적 주체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면, 모든 개인들의 사적 자율성을 자연법적으로 미리 보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이 만인의 통합된 의지의 정치적 자율성을 속속들이 관통하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이성적 의지가 오직 하나의 국민 혹은 민족이라는 거대 주체 속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면, 정치적 자율성은 구체적 공동체의 인륜적 본질을 자기의식적으로 실현한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 "If the rational will can take shape only in the individual subject, then the individual’s moral autonomy must reach through the political autonomy of the united will of all in order to secure the private autonomy of each in advance via natural law. If the rational will can take shape only in the macrosubject of a people or nation, then political autonomy must be understood as the self-conscious realisation of the ethical substance of a concrete community.” See Ibid., 103.



법의 합법성에서 그 정당성이 도출될 수 있는 법규 내 법적 타당성의 본성을 포괄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시도는 이제보다 집중된 접근을 취하게 됩니다.

즉, 그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혹은 인권과 국민주권 간의 이 이분법을 극복하고 이들을 법의 권리 체계 속에서 내적으로 얽히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는 인권과 국민주권을 둘러싼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간 대립을 극복하고 이를 통합하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이론적 야심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어떻게 법의 권리 체계 속에서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긴밀한 내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할까요? 이 기획의 성취를 위해 하버마스는 어떤 논증 구조를 따르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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