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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4. 담론 원리는 법적으로 제도화될 수 있을까?

논증적 의견 형성과 의지 형성을 위한 법적으로 제도화된 절차들

by Sui generis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법의 합법성 그 자체에서 법의 정당성이 발생할 수 있는 법규 내 법적 타당성의 본성을 밝히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법의 타당성을 단순한 강제력이 아닌, 시민들의 합리적 수용 가능성 위에 두고자 했고, 이를 위해 근대법 속에서 전통적으로 대립해 온 두 자율성 -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혹은 인권과 국민주권) - 의 상호 근원성(Co-originality)을 법의 권리 체계 안에서 통합하는 기획에 착수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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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tro

살펴볼 것처럼, 하버마스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간의 내적 관계가 “논증적 의견 형성과 의지 형성의 법적으로 제도화된 절차들 (legally institutionalised procedures of discursive opinion- and will-formation,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1996, 131)”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인권과 국민주권 모두가 동시에 권리 체계 속에 새겨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와 함께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버마스는 (i) 동등한 자유를 향한 보편적 권리가 단순히 통치적 입법자들을 외적으로 제약하는 도덕적 권리로써 부과되어서는 안 되는 한, 그리고

(ii) 입법자의 목적을 위한 기능적 요구조건으로 도구화되어서도 안 되는 한,

이 체계는 “인권의 도덕적 독해 (a moral reading of human rights)”나 “국민주권의 윤리적 독해 (an ethical reading of popular sovereignty, Ibid., 104)”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인권과 국민주권을 포괄하는 권리 체계를 법의 정당성 속에 토대화 하는 이 규범적 직관을 구체화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법의 저자이자 수신인인 우리를 “권리 체계의 담론-이론적 독해 (the “discourse-theoretic reading of the system of rights, Ibid., 417)”로 초대합니다.

하버마스는 우리가 이 독해를 채택할 때 만이, 국민주권이 결속적 특성 (binding character)을 가정하는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의 논증적 과정의 법적 제도화를 위한 형식적 조건들 속에서 인권의 실체가 놓여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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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의사소통 행위의 법적 제도화

하버마스에게, 이성과 의지를 통합하고 모든 개개인이 "상호 이해를 지향하는 언어 사용의 발화적 결속력 (the illocutionary binding forces of a use of language oriented to mutual understanding, Ibid., 103)”"을 통해 강제 없이 동의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입장을 창출하는 의견형성 및 의지형성의 논증적 과정이 법에 정당화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법의 정당성은 결국 의사소통적 제도에 의존적 (the legitimacy of law ultimately depends on a communicative arrangement, Ibid., 104)”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실, 이 지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논의하는 것은 또 다른 상당량의 공간을 요구합니다. 저는 우리의 논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다시 여기로 돌아가지는 않겠습니다. 그 보다, Chapter 1에서 소개되었던 의사소통적 행위에 관한 하버마스의 기본 개념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다소 간 상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당한 법의 기원에 필수적인 의사소통 형식 자체의 법적 제도화를 위한 조건들은 공적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도를 표명할 수 있는 개개인의 권리 체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의사소통 행위자들이 자신의 관점과 입장을 타인에게 밝힐 때, 이들은 공적 맥락에서 공동의 심의자에게 좋은 이유들과 함께 자신의 관점과 입장을 실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 과정은 이 행위자들이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이유로서 무엇이 중요할지를 숙고하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법적 주체로써, 이 행위자들은, 하버마스의 권리 체계의 담론-이론적 독해, 나아가 그의 법의 담론-이론적 개념 속에서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모두를 보장받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더욱이, 이 해석은 이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행위자의 자유로운 선택 (free choice of rationally deciding actors)”을 통해 사적 자율성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동시에, “윤리적으로 결정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선택 (existential choice of ethically deciding persons, Ibid., 451)”을 통해 공적 자율성을 행사하는 것으로 간주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자신이 확립한 '담론 윤리(discourse ethics)'를 법적 주체들의 정치적 의사소통에 직접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담론 윤리에 관해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해 보자면, 그의 담론 윤리는 이후 우리가 보게 될 담론 원리와 보편화 원리를 “도덕적 판단 능력의 발전을 묘사할 때 규범적 참조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의 특징 (characteristics of moral judgment that can serve as normative points of reference in describing the development of the capacity for moral judgment, Habermas,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122-123)"으로 규정합니다.

하버마스는 담론 윤리를 통해 문제시되어 왔던 행위 규범과 행동 양식에 관한 상호주관적 합의를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 합리적 담론의 의사소통적 구조, 타당성을 향한 규범적 주장들, 절차적 합리성 등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하버마스의 담론 윤리에 관해, Ibid., 그리고 Habermas, Justification and Application: Remarks on Discourse Ethics, 1993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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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이 제도화의 두 가지 함의

담론 윤리를 정치적 의사소통에 직접 적용하는 것 대신, 하버마스는 법적-정치적 맥락에서 법적 (혹은 정치적) 담론을 민주주의 원리와 함께 새롭게 형식화합니다.

이는 우리를 두 가지 함의로 인도하는데요. 그렇게 할 때,

첫째, 하버마스는 앞서 살펴보았던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를 법에 관한 그의 절차주의적 이해를 통해 보다 정교히 합니다. 그리고,

둘째, 그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틀속에서 자유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 간 역사적 대립을 극복하면서, 우리를 인권과 국민주권이 상호 근원적으로 구성된(co-originally constituted) 민주주의 원리 속 권리 체계를 식별하도록 인도합니다.


먼저 하버마스는 실정법 틀 속에서 둘로 나뉘게 된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 간 상호 전제를 확립하기 위해, 법적 규칙과 도덕적 규칙 간 상호 보완관계를 주장합니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도덕적 질문과 법적 질문은 모두 동일한 문제와 관련되는데요.

이 문제들은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하는, 즉 상호 간 갈등을 조정하고 정당한 상호주관적 관계, 그리고 행위 조정을 위한 정당화된 규범들을 확립하는 것 주변을 선회합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도덕과 법이 이러한 공유된 관심에 다른 방식에서 접근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역사적으로 실증법의 정당성 원천에 있어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자연법 혹은 도덕성을 그 정당성 원천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노력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는 자연법 혹은 도덕을 향한 실정법의 의존성을 수정하고, 실정법 내 고유한 정당성의 원천을 밝히고자 하고자 하는데, 이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자율성의 상호 근원성(co-originality)을 구성하기 위해 필수적이게 됩니다.


정당화의 탈-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하버마스는 우리가 법적 규칙과 도덕적 규칙을 “전통적인 윤리적 삶으로부터 동시에 분화된 (simultaneously differentiated from traditional ethical life)” 것으로, 그리고 “다르지만 서로를 보완하는 두 종류의 행위규범으로써 나란히 (side by side as two different but mutually complementary kinds of action norms, Habermas, 1996, 105)” 나타난 것으로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이 제안이 우리가 자유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이 저지른 오류를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즉, 그렇게 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우리가 인권에 법을 넘어서는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고, 실정법을 자연법의 모방으로 보면서, 결과적으로 법적 담론을 도덕적 담론에 종속시키는 칸트적 자유주의가 저지른 오류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공동 선과 시민적 덕성을 위해 "한 공동체가 실재적 가치와 전통을 숙고하는 (a concrete community reflects on its substantive values and traditions, Ibid., xxvi)” 국민주권의 구성에 초점을 맞추는 루소적 공화주의와 달리, 우리는 또한 법적 담론을 윤리적 담론으로 환원하는 위험을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자율성에 관한 칸트와 루소의 시각에 있어 하버마스의 해석을 위해, Ibid., 100-103을 참조하세요. 하버마스는 담론의 종류와 이러한 담론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의 논리에 따라, 실용적 담론, 윤리적 담론, 도덕적 담론, 그리고 법적 담론을 구분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Ibid., 157-168을 참조하세요. 하버마스가 “정치적 의지형성의 절차적 모델 (a process model of rational political will-formation)”로 명명한 이 담론들의 네트워크에 관해, Figure 2를 살펴보세요).


하버마스는 서로를 보완하는 두 종류의 행위 규범으로써 법과 도덕은 쟁점이 되는 규범의 종류에 따라 원리들로써 다른 의미를 가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정당화에 요구되는 근거들은 각각의 경우에 제기되는 질문의 논리에 따라 도덕적 원리나 민주주의 원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모든 행위 규범들의 정당화는 도덕적 근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맥락에서, 그는 우리가 법과 정치적 정의가 “제도적으로 매개된 상호작용 영역 (institutionally mediated spheres of interaction)”에서 효력을 갖는 반면, 도덕을 “누군가 사적으로 책임을 가지는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ships for which one is personally responsible, Ibid., 109)”에 한정하는 오랜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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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각 개인이 도덕적 원리의 보편주의적 주장을 제창할 때 이상적인 역할을 사적으로 가정하는 도덕성에 관한 칸트의 독백론적 이해와 달리, 하버마스는 도덕성을 상호주관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어지는 챕터들에서 하버마스가 민주주의 원리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도덕성에 관한 그의 담론이론적 해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전에 법과 도덕 간 구분, 이들의 상호 보완적 관계, 그리고 법의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특성에 관한 하버마스의 설명을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설명은 하버마스가 도덕, 윤리, 법 각각의 담론을 구분하면서도, 이를 절차적인 민주주의 원리 속에서 상호 조율 가능한 질서로 구성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에 관해 하버마스가 윤곽화 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일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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