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타당성과 실정성 사이의 긴장 - 자유와 강제의 구조
이 연재글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저서 사실성과 타당성(영어명-Between Facts and Norms/독일어명-Faktizität und Geltung)을 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철학을 위한 두 번째 작업으로써, 하버마스 저작에 관한 이 해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꼭 Prologue부터 순차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회에서 우리는 하버마스가 합의 형성 과정에 내재한 사실성과 타당성간의 긴장 속에서, 사회 통합을 위해 요구되는 행위 규범들의 정당성을 근대법 속에서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한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참조: https://brunch.co.kr/@2h4jus/55)
이와 관련하여, 하버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따라서 누군가 근대법을 상호이해를 달성하는 과제에서도 이미 힘겨운 상태에 있는 의사소통 행위자들에게 제약 없는 의사소통의 원리를 철회하지 않는 가운데 사회 통합의 과제를 면제 시켜주는 메커니즘으로 간주한다면, 법의 두 측면 모두 이해 가능하게 된다: 법의 실증성, 그리고 합리적 수용 가능성을 향한 법의 주장."
> "If one thus views modern law as a mechanism that, without revoking the principle of unhindered communication, removes tasks of social integration from actors who are already overburdened in their efforts at reaching understanding, then the two sides of law become comprehensible: its positivity and its claim to rational acceptability" (Habermas, Between Facts and Norms, 38).
쉽게 말해, 하버마스는 근대법이 우리가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사회 전체를 유지시켜주는 장치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은, 한 편으로 '있는 그대로의 규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규칙'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버마스는 지금까지 신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그리고 윤리적 삶의 관습적 형태와 뒤섞여 있었던 법의 완전한 실증화가 “행위 기대의 안정화를 위한 적절한 수단(a suitable instrument for stabilising behavioural expectations, Ibid., 460)”으로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복합적인 사회 속에서 사회적 학습 과정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실정법에 대해 '여느 기능적 등가물(any functional equivalent)'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법은 종교나 도덕의 그림자 속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도덕이나 종교가 사회 통합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이들에게 그 역할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에서 법이 그 자체로, 이 사회를 안정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장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에게, 사회 통합을 위해 실정법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가능한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버마스는 근대법이 “사회 통합의 문제와 관련하여 과도한 짐을 지고 있는 사회질서의 기능적 공백(the functional gaps in social orders whose integrative capacities are overtaxed, Ibid., 42)”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의사소통에 관한 하버마스의 분석 속 고유한 법적 특징들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심의 민주주의 이론은 또한 입법의 논증적 과정에 관한 광범위한 해설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적 입법 절차에 관한 그의 담론 이론적 해설로 향하기 전, 법의 타당성에 관한 그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버마스에게 이 논의는 여느 입헌 국가에 필수적인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를 분명히 규명하는데 있어 필수적이기 때문이지요.
강제력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타당한 것으로 승인되어야 하는 합법성(Legality)에 관한 칸트적 이상이 근대 입헌 국가에서 실현될 수 있는방식에 관한 하버마스의 응답을 관찰하면서 이 논의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홉스로 부터 확장되어 로크, 루소, 칸트를 거친 혈통을 추적하면서, 우리는 재차 법 일반에 내재한 사실성과 타당성 간의 긴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긴장은 이제 법적 타당성 차원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여기서 “법 집행의 사실성(the facticity of the enforcement of law)”은 자유를 보장하는 그 역량 때문에 자신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법 기원의 정당성(the legitimacy of a genesis of law, Ibid., 28)”과 얽히게 됩니다.
하버마스는 법치와 민주주의 간 내적 관계를 관찰하면서 이 긴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 자연권, 혹은 주관적 권리의 보장에서 시작해서 (Hobbes의 '계약과 소유의 자유', 혹은 칸트의 'Rechtslehre'를 떠올려보세요) 이후 법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실천을 뒷받침하는 전제들에 뿌리내린 관계.
쉽게 말해, 하버마스는 법은 그 자체로 사람들이 강제로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이들에게 법이 정당하게 만들어졌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 이론가들처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법의 성격을 다시 묻기 시작합니다.
'합법성'이라는 칸트의 개념화를 따라, 하버마스는 강제를 통해 시행 가능한 법이지만, 동시에 자유의 법이기도 한 법규 내 법적 타당성의 이중적 본성을 해명합니다.
즉, 그는 근대법에 내재한 강제와 자유 사이의 고유한 관계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 관계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새겨져 있습니다: '법은 애초부터 힘을 시행하는 권한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 권한은 오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 자유를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로부터 보호할 때에만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법은 개개인을 제어하는 힘을 가졌지만, 이 제어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정당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은 강제인 동시에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라는 이중성을 하버마스는 어떻게 해명하고 있을까요?
하버마스에 따르면, “법의 사실상 유효성 또는 수용성(de facto validity or acceptance of law)”으로 지칭될 수 있는 법의 강제적 힘은 사법적 절차를 통해 법적으로 정의되고 시행 가능한 제재의 잠재적 시행 속에서 명백한 “인위적으로 설립된 사실성(the artificially produced facticity, Ibid., 29-30)”위에 확립됩니다.
반면, “법의 정당성 혹은 합리적 수용가능성(the legitimacy or rational acceptability of law, Ibid., 29)”으로 명명될 수 있는 법령의 정당성은 특정 조건들에 의존적입니다.
이는 법령의 규범적 타당성 주장들이 논증 가능성(redeemability)을 통해 검증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고, 궁극적으로는 이 주장들이 '합리적 입법 절차'를 통해 발생한 것인지, 혹은 적어도, '실용적,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법적 타당성은 다음의두 가지 측면들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평균적 준수로 측정되는 de facto validity (행위의 합법성),” 그리고 둘째, “규범적 인정에 대한 주장의 정당성 (규칙의 정당성).”
> "de facto validity as measured by average acceptance (the legality of behaviour),” and secondly, the “legitimacy of the claim to normative recognition (the legitimacy of the rule)," Ibid., 30.
하버마스에게, 법은 '사람들이 잘 따르는가' 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이 법이 '합리적인 절차로 만들어졌는가'라는 관점에서도 반드시 조명되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이 잘 따른다'라는 사실적 타당성, 그리고 '사람들이 정당하다고 본다'는 규범적 타당성, 이 둘 모두가 법의 핵심적 요소인 것이지요.
하버마스가 보기에, 법적 타당성의 이중적 성격은 법의 수신인들이 자신들의 선택지에 따라 동일한 법규에 상이한 태도를 취할수 있게 합니다.
왜냐하면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법규는 선택의 폭을 외적으로 제한하는 사회적 사실의 차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의사소통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법규는 법적 공동체들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동의 받았다고 가정되는 의무적인 기대의 차원을 차지합니다.
하버마스의 말을 빌려, "그러므로 행위자는 각각의 경우 다른 관점을 취하면서 법적으로 타당한 규정을 예측 가능한 결과라는 사실의 지위에 귀속하거나 (객관화적 태도), 규범적 기대의 의무론적 구속성에 (수행적 태도) 귀속"하게 됩니다.
> "Thus the actor, taking in each case a different point of view, will ascribe to a legally valid regulation either the status of a fact with predicable consequences (an objectivating attitude) or the deontological biding character of a normative expectation (a performative attitude), Ibid., 31 (괄호는 제가 첨언했습니다).
쉽게 말해, 현실에서 동일한 법을 두고, 누군가는 '이건 그냥 법이니까 지켜야지'라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건 우리가 동의한 약속이니까 따르는거야'라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버마스는 이 둘을 구분하면서도, 결국 법은 이 두 가지 입장을 모두 함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맥락에서, 하버마스는, 강제를 통해 시행될 수 있는 법 이자 자유의 법으로써, 법규를 향한 행위자의 이중적 이해와 태도가 '사적 권리개념'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누군가의 법규 준수가 행위의 합법성에 기반하든 규칙의 정당성에 기반하든 간에, 이러한 규범들을 따르고자 하는 동기는 개개인에게 맡겨 지기 때문이지요.
또한 규범적으로 타당한 법규들은 그 수신인들이 강요될 수 없는 의무감에서 이들을 따르도록 인도하는데, 이 의무는 법적 공동체의 의해 만들어진 이 규범들에 관한 합리적 인정을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법 질서는 “법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규칙들을 따르는 것(to obey its rules out of respect for the law, Ibid., 31)”을 항상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개개인이 자유의지와 함께 법규를 따를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하버마스에게, 법 질서는 각 개인의 권리가 다른 모든 이들에 의해 승인되도록 보장해야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권리들의 상호 호혜적 인정 역시 각자의 선택의 자유가 모두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게 하면서, 오직 만인에게 동등한 자유를 부여할 때 만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법을 기초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법'을 지키는 이유는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이 '법'은 내가 동의한 것이야"라는 점에 합의한다면, 이 실정법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버마스는 근대법이 개인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절묘한 구조라고 보는 것이지요.
요약해 보면, 하버마스는 근대법을 강제력과 정당성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이해하며, 이 법이 시민들에게 단순히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의하고 수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사회 통합의 정당한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법의 정당성이 우리 시민 각자가 법의 수신인인 동시에 저자가 될 수 있을 때 비로서 완성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적 입법자에 의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규칙의 정당성을 어떻게 근거 지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법의 수신인인 동시에 저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위해 하버마스는 어떤 논증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 다음 회차에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