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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답 Jan 10. 2021

산림으로 캐나다 이민하기 6편 <끝>

산림으로 캐나다 이민하지 않은 이유

여태 내가 아는 한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았는데, 사실 나는 학교 두 학기 다니고 여름 인턴 한 뒤에,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 진로를 틀었다. 캐나다서 산림 분야로 커리어를 새로 쌓아 이민을 도전하는데 관심이 있는 이들이 객관적으로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앞선 글들을 적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나는 딴 거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 마무리 하면 왠지 뭔가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드는지라... 내가 그만두었다는 게 산림 분야가 못할 만한 일이라는 인상을 줄까 걱정도 되지만 그것은 읽는 이들이 스스로의 적성과 선호를 잘 생각해서 판단하시리라 생각한다.


현재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다시 다른 캐나다 학교를 다니고 있다. COVID-19 때문에 강의실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컴퓨터과학은 이민자에게건 현지인에게건 인기가 높은 분야지만 그런만큼 그에 비하면, 산림 분야 공부나 취업이 훨씬 간단한 일이고 분야 사람들의 성정이랄까 하는 것도 많이 다르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훨씬 적은 일임을 더 확실히 알게 됐다. 예상 못하고 진로를 튼 것도 아니고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그때의 평화와 안정감이 그립긴 하다. 산림인이 되겠다고 오래 떠벌리고 다니다 캐나다에 가놓고 1년만에 마음을 바꾼 것에 대해 지인들이 에? 하면,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보통 일이 지루해서 그랬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것도 사실인데, 좀 더 자세한 경위를 적어보자면.


어느 날인가 태블릿까지 작동이 잘 안될만큼 비가 꽤 내렸던 날이었다. 많이 젖어서 차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면서 파트너랑 서로 보면 그저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던 그런 날, 고생스러운 날이었다는 이야기다. 돌아가는 길에 "그래도 최소한 우리 일을 로봇한테 뺏길리는 없을 테니 다행이야",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Ummm... not actually...?" 였다.

드론과 로봇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드론이 계속 화두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일을 해보니 이 일은 드론이나 로봇으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왠지 갖게 됐던 거였다. 각종 서베이할 때 꽤 꼼꼼하게 나무를 자세히 살피고 벗겨도 보고 삽질도 하고 해야 하는데 드론으로 그만큼 섬세한 데이터 수집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도 장애물도 많고 우거진 숲에서 드론이 완전히 사람을 대체하기란 어렵고, 아직 드론이나 로봇을 쓰는 비용이 사람 쓰는 비용이 훨씬 비싸고 또 기술 저항이 있기 때문에, 상용화가 많이 된 단계는 아니긴 하다.


어쨌든 신뢰하는 동료의 이야기에 왠지 뼈를 맞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테크놀로지는 내 생각의 한계를 앞서 가고 있었다. 마침 그 달인가 BC 산림협회지를 살펴보니까 드론을 이용한 silviculture 조사와 실제 데이터 정확치가 얼마나 차이나는지 그런 관련 기사가 있었는데, 드론 조사 결과가 꽤나 정확한 걸 보고 다시 충격을 먹었다.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30대에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입장이니, 이건 나중에 로봇에게 뺏길 분야인가 아닌가는 당연히 진지하게 고려한 요소였다. forester나 technician이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사실 대다수의 직업보다는, 그리고 산림 분야 안에서도 예를 들면 로거라거나 좀 더 단순노동 분야보다 당연히 기계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건 맞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신기술들을 조종하고 사용할 능력들을 차근히 준비해야겠다는 위기 의식이 들었다. 앞서 글들에서 technician에 그치기 보다 forester, 그리고 GIS 등 최대한 높은 자격 요건과 기술을 갖춰 놓는 게 좋겠다고 강조한 것도 그래서다. 


당시 나는 Forester 자격 요건을 위한 석사를 다음해에 시작할 계획이었고 그 전까지 다니던 BCIT 2학년을 이수하기보다 GIS 디플로마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면서 알아보게 됐다. FNAM 프로그램 중에도 GIS 관련 과목들이 두서개 포함되긴 했는데, 본격 GIS 디플로마에서는 기본 프로그래밍 언어들을 꽤 사용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 원래도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었는데 이 기회에 공부하게 된다니 좋네? --> 어, 그런데, 나 보니까 쭉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어서 40대엔 그 길로 새로 가볼까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 어차피 그럴 거라면 왜 굳이 40대까지 기다려야 하지, 지금이 아니라?? --> 일단 산림으로 이민을 하고 컴퓨터과학은 그 이후에 해도 되잖아... 근데 나이들수록 가장 귀한 게 시간인데?? --> 그럼 좀 해보고 정하자, 예상보다 너무 재밌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같다.. 라는 착각이.... 그땐 들었고ㅎㅎ 무튼 대충 이런 의식의 흐름이었다.


딴 생각이 들게 된건 당시 일한지 석달째 되면서 적응하고 익숙해지면서, 물론 넉달 인턴 기간동안 주어지는 업무나 책임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보니, 더이상 크게 challenging하게 느껴질 게 없어서 약간 따분해지고 있어서였을 테다. 앞선 글들에서 적었던 이런저런 면들이 단점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분야를 그만둔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바쁘고 스트레스도 컸지만 그만큼 새로 배우는 즐거움이나 성취감이 상쇄했고 선택에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이제 왠걸 드디어 '이게 내가 진짜 원하는 거 맞나...?', 하는 누군가 말하길 인생 말아먹는 그 생각이 들어버렸다. 내가 산림을 택한 건 나는 원래 자연이 좋고 자연 다큐 만드는 게 꿈일 때도 있었고, 기후변화 등 관련해 여러가지 지식 가치가 있을 것 같고, 그 업계 사람들이 나랑 잘 맞을 것 같고 뭐 그런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산림 분야에 새로 도전하는 것보단, 산림이 드넓은 캐나다가 이민자일지언정 기회고 많고 수입도 많고 한국살이가 이래저래 답답한 것도 많고, 그래서 이민을 결심하고 왔는데. 정확히 세부적인 일이 내 적성에 맞을까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해보진 않았었다. 이민 생각하면서 IT 분야도 주요하게 고려했지만, 당시 손목 통증이 너무 심할 때였고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사는 생활보다는 밖으로 나도는 게 더 나에게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때 사실 평생 처음으로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집요하고 치열하게 따져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평생 진로나 전공이나 기타 선택할때 세세히 따져보기보다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편이었다. 30대에 이미 커리어 바꾼다고 유학 온 처지에, 사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거기서 또다시 전환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동안엔 나로서 살며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회사에선 나를 좋게 봐줘서 졸업 후에나 계획대로 석사를 하고 돌아오건 풀타임 오퍼는 확정된 상황이라 영주권이 대략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고, 당시 사이 좋은 애인과 미래를 하나 하나 그려보고도 있었고, 취미 생활에도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기고, 어쨌든 신분과 일자리 걱정이 없어지니 모든 게 대략 안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나는 애써 얻은 걸 왜 깨트리고, 다시 또 굳이 새로 뭘 시작하려고 나서는 것인가... 사는 게 뭐 얼마나 다르고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대체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가, 이것은 정신병적 증상이 아닌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 해도 거기서 또 금방 싫증낼 인간이 아닌가? 자책감도 들고 많이 고민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 커리어 전환과 이민을 결심할 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또 어렴풋이 평화롭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다시 제대로 돌아본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지루할 때 가장 무기력해지고 지루함도 또 잘 느낀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것보다 좀 불안해도 새로운 자극이 낫다. 평생 배우고 싶다. 일이 내 삶 전부만큼의 의미는 아니지만 일이 많이 중요하고, 좋은 동료나 안정적인 소득이나 취미만이 아니라 일 자체에서 내 기준에 충족하는 성취감과 의미를 찾고 싶다는 마음을 타협하기 어렵다. 뭔가 내 것이 남는 일이면 좋겠다. 성격이 좀 급하고 변화에 관심이 많다. 건강만 허락되면 은퇴 같은 거 없이 70~80대까지도 의미있는 걸 위해 일하고 싶다. 


본인이 위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면 산림 기술직보다 다른 직종을 고려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산림 쪽은 있는 걸 잘 관찰해서 정리하고, 법 테두리 안에서 (아마도) 최소한 환경을 파괴하며 최대 효율을 뽑아낼 계획을 세우고, 물론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냐에 따라 결과의 질이 다르겠지만, 뭐랄까 '내'가 크게 끼어들 게 없는 일인 건 맞다. 세대를 넘어 긴 호흡을 보는 근사한 일이지만 나는 성격이 너무 급하다. 나중에 공부를 더 해 연구자가 되는 것도 고려했던 길이긴 한데, 연구자가 되기엔 나는 어떤 발견이나 학문 자체보다 사회와의 관계에 얄팍하게 더 관심 있고 아무래도 학자 타입은 전혀 아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야 떠오른 기억인데 나는 8살 때 MS-Dos 쓰던 시절에 장래희망을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적어 내고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면 왠지 자랑스럽게 컴퓨터 프로그래머요! 라고 대답하곤 했다. 닷컴 열풍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니 무슨 영향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초딩 때 컴퓨터 뜯어서 이것저것 넣다가 뺏다가 업그레이드도 스스로 하고 RPG 게임 중독도 심했고, 게임 잡지 사보는 게 낙이었고, 중딩 땐 홈페이지(라기보다 아카이빙이지만)도 재미로 두어개 만들었다. 대단한 일들은 아니지만 내게 그런 흥미가 있었다는 걸 고등학교를 간 뒤로부턴 아예 까맣게 잊었다. 7살 때 꿈은 작가였으니, 결국엔 어릴 적 생각대로 비스무리하게 살게 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20대 내내 글쓰기를 좋아했고 그걸로 밥 먹고 살았는데, 어느 새 관심 없는 일이 된 것처럼 앞으로 또 관심사나 진로가 어떻게 튈지는 모르는 일이다. 자연스러운 거라고 인정하고 뭘하든 열정적으로만 하면 커리어를 바꾸더라도 과거는 의미있는 시간과 경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정 뒤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입학을 준비하는 동안 기존 스터디 퍼밋을 째고 배수진을 쳤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 새 학교 오퍼를 받기 전까지는 이모저모 불안한 상태였으나 다행히 입학할 수 있게 돼서 별 걱정 없이 공부하고 있다.


처음 계획보다 유학 기간이 길어지고 코로나까지 취업 시장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별로 불안하지 않다. 이게 나이듦의 여유인가 하하... 입시하던 10대부터 20대까지 평생 뭐 그리 불안한 게 많았는지. 30대에 들어 한해 한해 사는 곳도 일하는 곳도 다르게 떠돌고 있는데, 나는 그 이후부터 인생은 참 살만한 것이구나, 앞으로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생각하는 게 재미있다고 진정으로 처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공부는 어렵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좋고 몰입하는 느낌이 좋다. 늦깍이 유학을 하면서 시간과 건강이 금이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게 돼서, 내 몸도 시간도 내 나름대로 금이야 옥이야 아낄 수 있게 됐다. 건강 관리 잘해서 오래 많은 것들을 해보며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산림과 컴퓨터과학 분야 취업을 간략히 비교하자면, 앞서 적었든 취업 기회나 과정 등이 산림 쪽이 훨씬 간단하다. 테크니컬 인터뷰라거나 포트폴리오라거나, 그럴 거 없이 과외 활동 좀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시엔 물론 빡셌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편했다. 산림 분야서 인턴 준비할 땐 한 학기 동안 조금 걸러서 10군데쯤 지원하고 3곳 인터뷰 봤는데, 컴퓨터 과학 분야는 학교 코업 오피스 발 통계상 첫 코업 오퍼를 받을 때까지 평균 50곳 지원 + 인터뷰 3번이라고 한다. 일 시작하고 난 뒤 요구되는 자기계발의 양과 경쟁도 컴퓨터과학 분야가 훨씬 크다. 평생 Impostor syndrome에 시달리기 딱 좋은 분야다. 또 나는 10년 전보다 지금이 더 건강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한창 산림에서 공부하고 일할 때보다는 컴퓨터 과학 공부를 하는 지금이 여기저기 몸이나 눈이나 관절이나 덜 건강하다. 기타 산림 분야의 단점들은 이제까지의 글들을 통해 그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과학 분야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느끼는 매력은 이렇다. 학교에서 코딩 과제를 받아들 때마다 대부분 수 번을 보고 또봐도 이건 해독이 안된다, 이걸 내가 해내는 건 진심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에는 매일 조금씩 어찌어찌 프로그램이 짜지고 버그 없이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신기하고, 최종 완성할 때의 희열과 성취감이 엄청나다. 그 과정이 너무 지칠 땐 덜 기쁘기도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실제로 구현했을 때도 짜릿하다. 이런 기분은 산림에서 일하면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또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일할 수 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software development가 지겨워진다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테크 분야가 업계 내에 많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컴퓨터과학 분야는 관련 정보가 이미 온라인에 많고 자가격리도 끝나가므로 글은 이걸로 마무리.    <끝>



1편 - 산림인으로 캐나다 이민하기 

https://brunch.co.kr/@nood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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