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것들
6월 마지막 주, 초여름이 지나가고 장마철이 시작될 즈음에 이 책을 읽었다.
매일 아침 한 번씩 먹던 약을 아침약과 저녁약으로 나눠서 먹기 시작했을 즈음에 이 책을 읽었다.
하고 많은 책들 중에서 공교롭게도 이 책을.
<슬픔을 아는 사람은> 시인이자 영화인인 유진목이 수년간 고통과 불행 속에서 다친 마음을 한여름 세 번에 걸친 하노이 여행으로부터 회복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한 여행에세이다. 저자가 하노이에 가서 하는 일은 단순하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분짜를 먹는 일. 그것을 하러 삼사십도 넘나드는 더위 속에서 오토바이로 빼곡한 거리를 걷는 일. 그 단순한, '무엇-없음'에 이끌려 그는 6월부터 8월까지 한달 상간으로 하노이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하노이에 갔을 당시 그는 자신의 상태를 "수년간 차곡차곡 들어앉은 분노가 마음을 채우고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모두 깨부수고 싶고 빨래를 널다 말고 옷을 전부 찢어버릴 것만 같았던 상태"였다고 말한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그는 일단 멈추고 하노이로 떠났다. 맛있는 것들이 잔뜩 있는 하노이로.
시인 유진목은 2016년 손해배상 소송을 겪는다. 그는 지나온 수년 동안의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의 보복성 고소에 조사를 받았던 사람, 허위 적시 명예훼손 고소에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던 사람, 가십으로 입에 오르내린 사람, 가해자의 허위적시물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승소한 사람, 포기하지 않은 사람, 끝가지 버틴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사람.
수년의 걸친 소송으로 유진목의 몸과 마음은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찼다. 그는 "언제든 죽으면 된다고, 그러면 다 끝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사람"이었다. 아침-저녁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소송에서 이겼을 당시, 너무 오랜 시간 소송과 싸워왔기 때문에 싸움이 끝났을 때 주어진 시간이 당혹스러웠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실체가 없는 싸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니. 홀가분함보다는 당혹감이 밀려왔다. 지난 싸움으로 남은 건 도대체 무엇인가. 이제 나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삶의 무기력감 속에서 그는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지금 하노이에 가면 그때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까.
고통을 이고 지고 떠났던 하노이 여행에서 유진목은 계속 가라고 다그치는 불행과 희망 속에서 수년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오랫동안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묶여 있던 사람. 과거의 분노와 불행으로 현재의 죽음을 생각하던 사람. 분노에 잡아 먹히는 자신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 유진목은 좋아하는 분짜를 먹고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서도 호텔방에서 잠에서 깼을 때 등 뒤로 번지던 슬픔을 느낀다. 길을 걷다 문득 발목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느낀다. 분노와 슬픔과 동행하던 하노이 여행은 마지막 세 번째 여행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저녁이 오면 막대기를 거두어들이며 빨래를 걷는 사람, 설거지, 밥 먹기, 잠자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고백하기 등등 살아있는 사람이 해야하는 일들을 보면서 그는 삶의 자연스러움, 삶의 감각을 되찾았을까. 세 번째 여행에서 돌아왓을 때 그는 더이상 피로하고 무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진목에게 세 번에 걸친 하노이 여행은 고통과 분노, 정말 속에서 허덕이던 그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 두 번째 여행 때만 하더라도 피로감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던 그는 세 번째로 하노이에 왔을 때 분명한 변화를 느낀다.
"마음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던 화가 풀어지며 몸 밖으로 스며나오는 것을 느낀다. 울분이 기어이 버티지 못하고 몸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마지막 하노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오랜시간 싸움이 가져다준 불행의 사슬을 끊고 생의 일상적인 감각을 되찾으며 저녁약 없이도 잠들 수 있는 변화를 느끼게 된다. 시인 유진목이 바라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 "사는 것과 죽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싸웠고 더 이상아무와도 싸우고 싶지 않은 유진목은 말한다. "밝은 곳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싶어 하노이에 왔다"고. "단지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온 것"이라고. "그저 그늘이 아닌 밝은 곳에서 더 이상 화내지 말고 분노에 차 있지 말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