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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Jan 30. 2021

정서의 교환은 어떻게 이뤄질까?

딸둥이 상담사 아빠의 심리이야기

영화 ‘모던타임즈’ 찰리 채플린처럼 육아 일상은 반복적으로 돌아간다.
공장의 멈춤 없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두 영아를 돌보는 일은 숨 가쁘게 돌아간다.

누적된 피로로 뼈는 녹아내리고 영혼이 탈탈 털리듯 한 경험을 육아 유경험자들은 알 것이다.
육아는 긴요한 집중력, 민첩성, 강인한 체력을 요함과 동시에, 마더 테레사처럼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유지해야 하는 극한직업이다.   

육아의 여러 고된 리스트 중 ‘목욕시키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엄마의 안전한 배 속에서 심장소리를 느끼며 모든 것이 저절로 채워지는 환경에서 벗어난 유아는 모든 게 낯설고 불안하다.

필자의 아가들도 지금은 물속에서 스르륵 잠이 들 정도로 편안해하고 목욕을 즐기는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처음 목욕시킬 때만 해도 아이들은 공포에 질린 포효로 애간장을 태웠었다. 아마도 피부에 와 닿은 뜨거운 물의 촉감과 환경이 불안을 자극했던 거 같다.
 
아가들이 이렇게 자지러져 경기 내듯 우는 상황은 육아 중 시시각각 발생한다.
이러한 돌발 사태가 벌어지면 양육자의 머리는 새 하해 지고, 영혼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지친 양육자들은 아마도 아이의 이러한 격한 반응에 불안해 안절부절못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반응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급기야 다그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만일 양육자 자신이 출산이라는 급작스러운 환경, 정체성 변화로 혼란을 겪는 중이라면, 온갖 부정적 생각과 감정들로 압도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면의 가혹한 비판자는 이미 산후우울증 상태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너는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구나,   아는  뭐니?’


너는 준비가 너무 안됐어!  부모 맞아?’

내면의 비판자는 죄책감, 무기력, 수치심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메시지로 자존감을 짓밟고 있을 것이다. ‘자기감(sense of self)’이 취약한 양육자라면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깊은 늪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런 돌발사태로 마음이 무너질 때 가장 현명한 대응은 무엇일까?
어떻게 반응해 주는 것이 좋을까?

우선 아이의 불분명한 감정을 구체적 언어로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평온을 유지한 양육자의 반응으로 아이의 불안은 내려가게 되고, 과한 반응은 서서히 누그러질 것이다.

양육자의 안정적 반응을 통해 아가는 옹알이도 활발해지고, 특정 소리를 반복해주면 비슷한 소리를 모방하기도 할 것이다. 옹알이는 아기가 구체적으로 언어를 구사하기 전에 내는 소리로써 말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아이들의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일관성 있게 충족시켜 주면서 신뢰감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도 지금 쌍둥이를 돌보며 대학원에서 공부한 상호 정서적 교류의 실제와 공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초기 유아와 양육자의 상호관계가 심리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 동주 뜨거운 물에 놀랐지? 깨끗하게  씻어야 기분도 상쾌해지고 밥맛도 좋고  꿀잠   있을 거야~ 키도 쑥쑥  자라고.”

우리 한주 물속에서도 씩씩하게  견디고 용감하네, ~ 대단한대! 감사해요

아이의 불안 반응을 양육자가 잘 담아서, 다시 명료한 언어로 되돌려주면 아이의 감정은 서서히 내려앉고 차분해진다. 점차 낯선 환경에 익숙해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도 낮아지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아가들의 불안한 감정을 양육자가 잘 반영해 주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가들이 안절부절 반응하는 양육자 모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면, 아이 마음의 스크린은 점차 회색빛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세상은 두려운 곳이야. 이곳에서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무지개처럼 다양한 정서와 접촉하기 전. 어두운 정서적 톤으로 마음의 음조가 형성되게 될 것이다.
점차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과 환상에 갇혀 살 수도 있다.

대본 이론(script theory)으로 유명한 이야기 심리학자 실반 톰킨스(Silvan Tomkins)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선택에 의해 매우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이라 밝혔다.
인간은 생존을 원하고 죽음을 멀리하고, 성적 경험을 원하고, 지루함을 멀리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타인과 소통하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기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각 감정은 특정 얼굴 표정과 태생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Ekman, Friesen, Ellsworth의 실험에서도 밝혀졌듯이, 12개 나라 사람들이 특정 표정과 감정을 연결시키는 실험에서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생애 초반 유아는 서서히 양육자의 표정과 반응에 적응함으로써 자기만의 정서적 기반을 다지게 된다. 결국 유아들은 느끼는 것에 좌우되어 세상을 선과 악, 좋고 나쁨으로 나눠 보게 된다.

아가들이 마주하는 생애 초기의 사람, 공간, 시간, 행동, 느낌은 장면을 구성하고, 다양한 장면들이 모여서 인생의 대본(script)이 작성되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경험을 장면으로 구성한다. 그런 다음 감정, 과거의 경험 및 행동 지침을 포함한 스크립트. 대본을 구성한다. 스크립트는 서로 연결된 장면을 해석하고 창조하고 이해하는 데 활용된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대본을 가지고 인생의 많은 장면들을 정리해 살아간다. 인생 전체의 맥락에서 잊히지 않는 특정 경험과 장면은 장기적 핵심 대본으로 자리 잡는다.

한 인생의 이야기 음조, 대본의 틀이 잡히기 시작하는 유아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양육자로부터 유아가 차갑고 무섭고 불안한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면 아이는 서서히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심리치료에서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 심리학자 레스 그린버그(Leslie S. Greenberg)가 밝힌 ‘정서 도식(emotional schema)’은 개인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반응 레퍼토리’와 함께 자신이 과거에 ‘경험’ 한 것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도식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고 독특한 것이다.
삶의 의미와 정체감, 개인의 이야기 서사는 바로 이러한 정서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상담의 현장에서도 정서를 다루지 않고는 온전한 치유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정서로부터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내담자의 삶이 지금까지 어떻게 펼쳐졌는지, 앞으로의 삶의 방향과 비전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 개인의 정서가 조망되어야만 그 사람이 가야 할 길이 명료해지게 되는 것이다. 정서가 다져진 후 이성과 인지의 두 바퀴도 비로소 삶의 의미와 새로운 이야기를 창의적으로 생산해 낸다.

지금 아이에게 보내주는 방긋 미소는 한 우주를 살리는 위대한 일이다.

아이의 불편함을 읽어 담아주고, 아이에게 밝은 미소, 다정한 표정을 선물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최선의 선물이다. 아이가 세상을 주도적으로 탐험하고 건강한 삶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정서가 그라운딩이 조성되는 순간들이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후 1년. 양육자의 정서적 조율, 공감의 중요성은 백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님을 상담사로서 양육자로서 다시 한번 체감하며 배운다.

다음 편에서는 아이의 감정을 담아주는 투사적 동일시, 알파 기능에 대해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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