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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Mar 24. 2021

담는 자와 담기는 자

딸둥이 상담사 아빠의 심리이야기

아기들을 돌볼 때 가장 힘든 시간대는 새벽 3-5시 경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이 시간대는 마라토너들의 마의 2시간 벽처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게 느껴진다.


설상가상 우리 아기들이 설 잠을 자서 계속 뒤척이거나, 자지러지게 울며 심하게 칭얼거리면 부모의 영혼은 안드로메다로 탈출해 소위 말하는 멘붕을 겪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은데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따라주지 않을 때 속상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책, 비난을 하기도 한다.


아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뭔가 불편해 칭얼대고 심하게 울 때 부모는 아래 2가지 중 한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만 울어! 지금 몇 시니! 엄마도 하루 종일 너랑 힘들었잖아... 제발, 엄마 아빠도 자자! 제발! 도대체 왜 우는 거니~”


“에구, 아빠가 분유 늦게 줘서 많이 배고팠겠구나. 늦어서 미안해. 자~ 이제 아빠랑 같이 맛있게 먹고 다시 코 자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당연히 2번이다. 장성한 성인이라면 스스로 불쾌한 감정을 조절, 통제하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 아기들에게는 그러한 조절 능력이 없다. 언어를 사용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아기의 감정 조절 주체는 부모가 된다.


아기가 엄마 아빠에게 투사한 불쾌한 감정을 마음에 담아낸 부모가 아이들을 대신해 감정 조절의 주체가 되어 주는 것이다.


육아 중 부모는 늘 아기들과 감정적인 충돌. 부대낌을 경험한다. 물론 아이와 함께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 환희의 순간처럼 긍정적 정서를 경험할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궤도를 이탈한 열차처럼 아이가 부모 뜻대로 안 따라 줄 때 양육자의 마음은 어렵게 된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마치 부모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정적 격변을 경험할 수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자신의 내면에 알 수 없는 불편함과 괴로움이 가득 차올라 넘치기 직전에 엄마와 아빠에게 그러한 감정을 떠넘긴다(투사). 엄마 아빠에게 심하게 칭얼거리는 것으로 자신처럼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부모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동일시).


이러한 아이의 원시적 대응 방식을 부모가 민감하게 캐치하지 못하면 1번의 반응처럼 격하게 응수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영. 유아 사고 중 일부는 아기들의 원시적 ‘투사적 동일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격분한 감정을 참지 못해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격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다시 돌이 킬 수 없는 치명적인 범죄 사건이 된다.


부모와 아기는 서로가 서로를 담는 자(컨테인)와 담기는 자(컨테이너)의 관계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상호 교류를 통해 제3의 요소가 탄생되는데, 그것은 바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부모의 주요 기능은 아가들이 겪는 혼란스럽고 참을 수 없는 감정들을, 부모 자신이 내부에 잘 수용하여 그것을 다시 알파 요소로 변형시켜 아가들에게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최초의 의사소통의 순환 과정은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내재화(Internalization)를 통해 정서적 교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투사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것이고 동일시는 외부의 대상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의 대상관계 정신분석학자 로널드 페어베언(Ronald D. Fairbairn)의 주장에 따르면, 만일 아이가 부모를 의지할 수 없거나, 부모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면 아이는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과 실제적인 교류를 갖기보다는 내면세계로 후퇴하여 환상적인 내적 대상들과 관계를 맺는 다고 주장하였다.


혹시 “미워하면서 닮아 간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상황을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영유아와 부모 관계의 맥락에서 심리적 렌즈로 다시 본다면 아이는 부모의 반응 없는 측면들과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그러한 측면을 내면화시키고 그러한 측면이 자기 존재의 일부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부모의 나쁜 모습을 내면화 시키게 되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인간 행동의 기본 동기를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으로 페어베언은 주장하였다. 어린 시절의 양육자들과 가졌던 상호작용으로 내면에 건설된 내적 대상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서생활을 건설해나간다는 것이다.


상담. 심리 전공자로서 지금 쌍둥이 두 딸을 키우며 부모가 되는 것은 녹록지 않은 과정임을 몸으로 배우며 느끼는 나날들이다. 다음 글에서는 '관계'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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