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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윤 Feb 11. 2021

어떻게 아이의 감정, 요구를 양육자는 알 수 있는가?

딸둥이 상담사 아빠의 심리이야기

두 눈_조 헌 윤딸의 눈망울을 바라보면 투명한 검은 연못에 비친 내 얼굴이 떠오른다.그 연못 아래로 내려가니무지개 붓을 든 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한 눈으로는 나의 겉을다른 한 눈으로는 나의 마음을 보고 있다.새하얀 도화지에 나의 표정과 감정을 그리며 말한다.아빠는 나예요.위의 시는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교류에 대해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고자, 필자가 시의 형태로 자작해 본 것이다. ‘눈은 왜 두 개로 창조되었을까?’ 대학원 재학 시절 도서관에서 뚱딴지 같이 떠올려 본 생각이다. 그때 직관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은 ‘하나는 외면을, 하나는 내면을 보도록 지어진 것은 아닐까?’였다.     하나의 눈으로 세상의 외현을 보고, 다른 하나의 눈으로는 상대의 심연 속에 가리어진 감정, 정서,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확장된 사유는 지금 쌍둥이 육아 돌봄을 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들어맞는듯하다. 아이들은 나의 표정, 감정, 느낌, 촉감, 분위기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몇 번 언급했지만 영아 때에는 자아경계가 없다. 양육자인 부모와 자기를 하나처럼 경험하고 느낀다. 나와 타인의 경계가 불명확하다 보니, 생의 초기 부모의 감정과 반응을 자기의 것으로 인식하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불안 반응을 마음에 잘 담아서, 다시 명료한 언어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의 감정은 서서히 차분해지고, 낯선 환경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도 낮아지게 된다.


반대로 아기들의 불안한 감정을 잘 반영해 주지 못하고, 부모도 함께 안절부절못한다면 아이의 불안은 더 증폭될 것이다. 필자도 지금 아기들 수유할 때, 기저귀를 갈 때, 목욕을 시킬 때, 책을 읽어줄 때 다정한 톤과 다정한 표정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뼈가 녹는 육체적 고통 가운데 아이들을 대 할 때면 늘 마음의 자세를 다시 잡는다.


필자와 상호 교감을 나누며 아이들은 내 입모양을 따라 하기도 하고, 웃음과 미소로 동일한 표정의 거울 반응으로 화답해 온다. 이러한 순간은 목마른 순례자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벅찬 환희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양육자의 따뜻한 말, 표정, 어투 하나하나는 아이의 단단한 내면을 닦아주는 주춧돌이 될 것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내. 외면을 잘 가꾸어야 한다.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소통되는 ‘감정적 연결’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감 속에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자기의 것으로 흡수한다. 그렇다면 양육자는 아기의 정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시 언어화해 되돌려 줄 수 있을까?양육자는 어떻게 아이의 감정, 요구를 알 수 있을까?윌프레드 비온(Wilfred Ruprecht Bion)이라는 영국의 정신분석학자는 설명할 수 없는 내면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특한 알파요소와 베타요소라는 용어를 창안해 사용하였다.


먼저 알파요소(α)에 대해 살펴보면 그것은 정서적 경험들의 원자료가 마음에 수용되어 사고, 감정, 꿈과 같이 정신적으로 소화된 내용을 정신 요소로 변형시키는 기능을 말한다. 베타요소(β)는 정서적 사건들에 대한 감각적 자료의 조각들로서, 의미 없고 조야한 감각 자료가 여기에 해당된다. 알파 기능에 접근하는 것이 부인되어 경험 이전의 요소로 남아있는, 아직까지 정신적 요소로 변형되지 못한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슨 말이지? 지금 독자들의 표정이 필자의 마음에 스친다.)

좀 더 쉽게 다시 설명하자면, 부모와 아기의 관계를 어미 새와 아기 새의 관계로 대응해 생각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는 낯설고 불분명한 감정을 양육자에게 투사하면, 양육자는 α기능을 통해 아이로부터 투사 받은 것을 소화하고, 그것을 자신 안에 잠시 체류시킨다. 그 후 다시 좀 더 먹을 만한 것으로 아이에게 되돌려준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반쯤 소화시킨 먹이를 입속에 넣어주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양육자와 유아, 담는 것과 담기는 것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는 공동-창조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된다. 베타요소들이 의미 있는 요소들이 되려면 변형의 과정이 필요하다. 윌프레드 비온은 우리의 생각은 생각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표현하였다.


생각은 생각되어지기 위해 존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생각되어짐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려면 베타요소들은 이것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컨테이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매일 우리의 아기들은 양육자의 마음속에 절규와 울음으로 무언가를 집어넣는다(투사). 아기는 지금 날(raw)것 같은 자신의 감정과 사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필자의 아기들도 멀쩡히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울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때 아기 가슴에 손을 차분히 얹고 부드럽게 두들겨 주며 부드럽고 차분한 톤으로 언어화해주었더니, 이내 다시 평안히 잠들었다.


“아...우리 아기 주변에 아무도 안 보여서 놀랬구나.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빠 엄마가 옆에서 지켜줄게. 함께 늘 있을게.”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은 모호하고 불편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이런 아기의 날것의 요소들을 양육자는 알파요소로 변환시켜 아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화된 감정을 받아먹고 점차 안정화된다. 이러한 순환 과정을 위해서는 양육자에게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양육자가 직관적으로 아기의 욕구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온은 이 능력을 “레브리(reverie)-몽상”이라고 하였다. 레브리는 환상적인 직관 능력이다. 의식적 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멍하니 듣다 보면 스며오는 어떤 그 무엇이다. (이 기능은 현대정신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상호주관성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소이기도하다.) 이런 양육 돌봄의 과정을 통해 유아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으로 되돌려 받게 되고, 이제부터 혼란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영유아기는 부모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미분화 상태이다. 그러다 조금씩 아장아장 걸으며 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각도 그만큼 부모와 거리를 두게 된다.


조금씩 불안을 견디며 분리-개별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자아의 탄생의 길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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