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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dgemaker Oct 25. 2020

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2)

SNS 재판소의 새로운 특징과 위험성

SNS 재판소의 새로운 특징


중립기어를 박다 : 자동차 기어 조작 상태에 빗대어진 말인데, 첨예한 이슈나 잘잘못이 걸린 사안이 제기되었을 때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말고 관망하라는 뜻이다


요즘 SNS 재판소에는 "관망을 통한 중립성 유지"와 "도덕적 엄격함"이라는 새로운 특징이 관찰된다.

먼저 이야기할 "관망을 통한 중립성 유지는" 인터넷상에서 중립기어를 박는다는 말로 종종 표현된다. SNS 재판소 때문에 마녀사냥이나 인민재판 형식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들이 생기다 보니 이슈몰이에 쉽게 선동되지 않기 위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고 개인이 재판관이 되어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나서 자신의 입장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인터넷에서는 이를 중립기어 박는다는 용어로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 관계는 기다리면 언젠가 도착하는 택배나 배달음식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진실은 관망의 자세를 유지한다고 누군가 입에 넣어주지 않는다. 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특히 SNS에 돌아다니는 사건에 대한 정보들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이는 이전에 공유한 썩은 사과 이야기에 나오는 가공된 정보의 유통과 유사하다.


도덕적 엄격함 :  정보의 신뢰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본인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기준을 요구하려는 경향


다음으로 이야기할 "도덕적 엄격함"은 정보의 신뢰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본인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도덕기준을 요구하려는 경향을 이야기한다. SNS 재판소가 생겨난 초기에는 하나의 사건만을 가지고 인물을 평가했다면 이제는 누군가 이슈화 되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직업, 인성, 가치관, 국가관 등 청문회 수준의 도덕적 검증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을 일반인이 통과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SNS 재판소에 한 번 올라간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쉽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도덕적 엄격함"을 요구했음에도 또 다른 자극적인 소재가 이슈화되고 관심이 떨어지면 대중은 금세 이 모든 걸 망각한다. 


참고 : "그들이 자살하게 댓글 달라"…고대생 죽음 부른 디지털 교도소... 

참고 : "온라인 공간에서의 사적 제재 좌시해서는 안 돼"

참고 : '중립 기어'라는 신조어는 무엇을 반영하나





SNS 재판소의 한계와 위험성

사실상 살아남을 수 없었던 중세의 마녀시험
SNS 재판소는 아니면 말고 식의 인터넷 여론몰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법의 한계 때문에 사람들은 SNS 재판소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불완전하고 아주 위험한 시스템이다. 주류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이슈화 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이 자극적인 이슈에 치중되기 쉽고 이슈화된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히 빈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같은 프레임을 씌워지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하지만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영향력 있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SNS 재판소는 정보의 객관성, 가치판단의 공정성, 언론의 중립성을 가지지 못하는 유사언론이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한계와 위험성을 좀 더 파 해쳐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때문에 흥미도, 유명세, 이미지, 개인의 기호 등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그 사람의 유명세나 자산에 따라 더 관대해지고 더 엄격해질 수 있다.


둘째,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도덕관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나뉜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세상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판단을 위한 다양한 근거를 수집하고 이를 사회 규범 위에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SNS 재판소의 대중은 이러한 복잡함을 견딜 수가 없다. 일방적인 악의 축과 선의 축을 나누고 선의 축을 지지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셋째,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으킨 교통사고처럼 가까운 미래에 발생하게 될 사건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과 다른 새로운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가치판단 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할 것이고 이다. 사회적 처벌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규범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담론으로 충분히 숙고되어 사회규칙과 도덕으로 정립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넷째, 군중의 심리가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공식적인 사법기관은 다양한 조절장치를 통해 법의 형량을 판단하지만 SNS 재판소를 통한 사회적 매장은 한번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되면 사회적 처벌 수위를 누구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대중을 통해 굉장히 가혹한 처벌을 받고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  


다섯째, 변론의 대상이 불명확하다. 재판에 들어가면 원고(검사)/피고(피고인) 간 소를 재기하고 변론하는 과정을 통해 심판하게 된다. 하지만, SNS 재판소에서는  의혹을 재기하는 사람과 이에 동조하는 수만 명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피고인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항변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설령 의혹을 씻고 무고를 입증했다고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수만 명의 사람들 모두에게 이를 이해시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SNS의 영향력은 기존 언론보다 빠르다. 미국 언론협회(API)의 리서치 결과 가짜 뉴스의 확산속도는 일반 언론 뉴스보다 9배 빠르게 전파된다고 한다. 지루하고 복잡한 뉴스에 비하면 자극적이고 악의 축이 명확한 가십거리는 이야기 나누기도 간편하고 머리 아플 일 없이 개인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1편에서 이야기했듯이 법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마지막 3편에서는 법의 신뢰를 되찾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그리고 시민들이 납득할만한 공평하고 공정한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굉장히 무겁고 어려운 담론이니 만큼 3편은 시간이 좀 거릴 것 같다. 




참고 : 자율주행차는 승객과 보행자 중 누구를 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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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1),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법의 역사 그리고 SNS 재판소의 탄생

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2), SNS재판소의 새로운 특징과 위험성

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3), 공평하고 공정한 가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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