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public)에서 공(空)으로
"공공(public)이 아닌 공(空)의 개념으로" 12년 전 학부생 때 건축학개론 수업 기말 리포트로 냈던 제목이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을 걷다가 문득 그때 썼던 내용들이 생각났다.
공공(public) : 개인에 대한 대치되는 개념으로, 사회적으로 두루 관계되는 것을 말한다.
공(空) :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상을 가리키는 불교 교리
공공이라는 단어는 그 모호성 때문에 굉장히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특히 어디까지를 개인과 구별된 공공의 범위로 봐야 하는지, 사회 구성원중 가장 약한 사람과 다수를 구성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들을 그 기준으로 봐야 하는지와 같은 해묵은 질문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다.
나는 공공의 본질적인 모습은 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공의 대표적인 장소는 광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자 한다. 없는 것을 만들고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들면서 공공의 역할론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형태는 누군가에게는 좋음을 누군가에게는 나쁨을 만들고, 새롭고 편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불편한 것이 된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장소는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 때로는 혁명을 일으키는 장소가 되고, 때로는 시민을 위한 콘서트장이 된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영속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공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땅의 경제성을 포기하고 비워버리는 결정은 공공에서만 할 수 있다. 공공의 정치적인 의미에서 공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공의 가치의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