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밍 Nov 15. 2019

[여행일기] 금지된 욕망이라는 이름의 로케트

비행이 끝난 후 한숨 자고 중동 최대 쇼핑몰이라는 두바이몰에 나갔다. 사실 딱히 살 물건은 없지만 할일도 없고 바깥은 40도가 넘으니 그냥 쇼핑몰 안을 어슬렁 돌아다닌다. 루이비통, 스타벅스, 맥 등의 최신 브랜드가 즐비한 쇼핑몰 안에서 몇 시간에 한번 씩 기도 시간이 되면 울려 퍼지는 '알라~~~후 아크바르~~~~~~~~' 로 시작하는 아잔이 최첨단 우주선 안에서 타령을 듣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보그 패션 두바이라는 두바이몰의 슬로건과 어울리지 않게 오늘도 유령 언니들이 많다. 까만색 아바야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휘적휘적 다니신다. 눈만은 대부분 내놓는데 강경한 언니들은 심지어 눈까지 까만 시스루 천으로 가려버리신다.

유령 언니들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이집트에서 일할 때 사무실 동료였던 이집트인 카림이 떠올랐다. 훗날 나에게 콜라 마시러 가자고 (무슬림은 술을 못마시니까) 데이트 신청을 했었던, 나와 동갑이었던 카림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 간적이 있었다. 운전 하면서 아랍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리를 떨던 산만한 카림에게 내가 히잡과 아바야의 목적에 대해서 묻자 그는 "여자의 머리카락은 너무너무 섹시해서 드러내면 안돼."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머리카락이 섹시하다고? 하루종일 먼지 뒤집어쓰고 다닌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이? 이집트에서 현지인 친구들 집에 초대 받아 몇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여자 앞에선 자유롭게 히잡을 벗어도 되기에 내 앞에서 히잡을 벗은 그녀들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떡져 있었다. 어차피 히잡으로 가릴테니 자주 감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샴푸향이 풍기는 막 샤워실에서 나온 것 같은 촉촉한 머리카락은 섹시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히잡 속의 머리카락은 카림 니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닐텐데..?

보지 못하게 하니 자꾸만 보고 싶고 그러다보니 머릿속에서 아마 그녀들의 떡진 머리카락은 라일락 꽃내음이라도 날 것만 같은 환상을 키웠나보다. 어쨌든 그 날 나는 카림과 떡진 머리카락의 섹시함과 히잡의 필요성에 대해 꽤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것 같다.

가려지고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과 욕망.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 금지된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똑같나보다.

11시가 통금이었던 대학교 시절, 11시가 다 되어 가면 계속 울리는 아빠의 전화에 전전긍긍 하면서도 11시를 넘겨 노는 그 짜릿함이 너무 좋았다. 통금시간이 없어진 지금은 오히려 노느라 11시 넘어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이건 늙어서 그런가? 그렇지만 시계를 자꾸 쳐다보며 놀 때의 그 짜릿함이 없어져버리자 꾸역꾸역 11시를 넘겨 노는 것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것이다.

하지마라 하지마라 하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인간의 심리.
욕망이라는 이름이 전차라면 금지된 욕망이라는 이름은 로케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훗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 새로운 육아방식을 적용해야할까 싶다. "오늘은 독서 금지야!" "숙제 하지 말라고 엄마가 몇번이나 말했니?!" "저기 저 찬장에 있는 유리컵 지금 당장 가져오지 말아라" 뭐 이정도의 육아방식이라면 아이들의 금지된 것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자극할 수 있으려나?
 

이전 19화 [여행일기] 아키바 할아버지와 멋진 보너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