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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정숙 Jul 08. 2016

소리의 안쪽

소리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능력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바람의 안쪽'이 있다는 것을 안게 얼마 전이다.
바람의 안과 밖이라....
어떤 바람이 안쪽이고 어떤 바람이 바깥쪽일까.

도통 바람의 안과 밖을 구분할 재간은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리의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다.  


사무실에 환자 민원 전용 전화기가 들어오면서부터다. 녹취 프로그램을 자랑하듯 다른 일반 전화기와 다르게 별별 기능 버턴이 있고 시커먼 게 묵직하게 생겼다. 팀 수장인 팀장 자리에 버젓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전화기가 중저음의 "데르르르~"소리가 울릴 때는 직원들 자세가 바짝 말라있는 북어 같다.


팀장이 '데르르르' 전화를 받는 순간 1분 정도 묵언수행을 할 때가 있다. 분명 전화기 너머 민원인이 육두문자 융단폭격을 하고 있음이다. 무엇을 죄송했는지 알 수는 없어도 일단 "죄송합니다"를 전화기 그 너머의 누군가에게 전한다.


불편하거나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는 민원과 행정상 민원 처리 절차를 기다리는 분들은 참 고맙다. 나 같아도 충분히 불편했겠다 싶고 빨리 시정해야겠다 싶은 민원도 아주 많다. 민원처리는 '성장을 위한 채찍'이고 '엄중'그 자체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원전용 전화기에서 울리는 '데르르르'는 일단 울리기만 하면 정신이 아득하다가도 두 번 이상 울리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게 한다.


팀장이 자리를 비웠는데 갑자기 저 너머 자리에서 '데르르르'가 울린다.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시선은 컴퓨터에, 손은 키보드를 토닥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귀는 확성이 되어 공명현상이 일어나 귓속에서 "떼떼 떼떼 우르르 쾅쾅" 메아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데르르르르" 한번

"데르르르르" 두 번


바로 이때다.
세 번째 "데르르르르"

개와 늑대의 시간도 아니고 소리의 안쪽과 바깥쪽을 가르는 이 찰나

그 누군가 더 견디지 못하고 '데르르르'전화기를 당겨 받는다. 결국 소리의 안쪽과 바깥쪽을 가르는 것이다.


"사랑합니다... 팀입니다."
"사랑 같은 거 필요 없고요.. 어쩌고저쩌고 뭐가 안되고 뭐가 잘못됐고~~"
"네 죄송합니다. 많이 화가 나셨겠어요. 어쩌고 저쩌고"


대신 전화받아서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욕이라도 듣고 나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그 민원인 이상이다. 오늘 전화를 당겨 받았던 그 혹은 그녀는 랜덤이던, 복불복이던, 성미가 급했던, 혹은 의협심이 강하였든 간에 나른한 일상 속 삶의 체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생살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들 한다. 멀리서 저기 바깥에서 들리는 전화 벨소리가 풍경이 될 수 있어도 가까이서 내 영역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것이다.

어디선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나만 아니면 돼~~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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