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정숙 Jul 18. 2016

수영 예찬

수영 배우기는 숫자를 세는 일

'물을 잡는다'는 표현, 수영을 배우는 이들에게 와 닿는 말이다. 물을 잡는 것은 암벽 등반할 때 돌조각 잡는 것과 다르다. 물은 돌조각처럼 고체가 아니라 액체이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공기에 비해 밀도가 장난 아니다. 물속에서 무엇을 하던 공기보다 800배 더 끈적한 저항을 다스려야 한다. 


허리가 아우성을 치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와서 시간 쪼개어 수영장 물을 잡기 시작했다. 한 십 년 전이었나. 아침 출근하기 전 새벽 수영장에 몇 개월 들러 겨우 푸파 호흡하고 물에 동동 뜰 줄 아는 정도에서 수영 배우기를 끝낸 적이 있었다.


이번 수영 배우기는 재활치료라 접영 같은 건 꿈도 안 꾸었다. 욕심내지 않고 근육통, 요통, 관절염만 사그라들어도 된다 싶었다. 막상 수영장에 가면 그 소소한 바람은 없어지고 펄떡거리는 상급반의 돌고래들(?)에게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여 상급반으로 월반하려면 10바퀴는 쉬지 않고 레인을 돌아야 한다. 한번 왔다가 25미터니 갔다 까지 하면 50미터, 10 바퀴면 500미터이다. 죽다 살아나도 10바퀴는 ㅠㅠ. 두어 바퀴는 그나마 숨 할딱거리면서 갔다 올 수 있는데 다섯 바퀴쯤 돌면 심장이 납작 만두 같은 가슴 밖으로 툭 튀어나올 듯이 쿵쾅대고 콧구멍 입구멍은 커질 대로 커져 벌렁벌렁~ 멈출 도리밖에 없다. 강사는 숨이 터질 것 같을 때 참고 더 가야 실력이 는다고 쉬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 물속에서 한번 죽어보자 싶어 휘저어지지도 않는 팔을 휘적거리고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앞뒤로 허우적거린다. 


바로 그때부터 난 숫자 세기를 한다. 물속에서 왼팔을 휘저을 때마다 하나~ 둘~ 셋~ 열쯤 셀 때 되면 도착지점이 다가온다. 다시 되돌아오는 턴 지점에서 물속으로 잠영을 한다. 물 밖으로 떠오르면서 하나~~ 둘~~ 셋~~ 살아보려고 숨 쉬어보려고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입을 한껏 벌려 숨을 들이마신다. 바로 고개를 물속으로 처박아 오른팔을 휘젓는다. 하필 물속에 부유하는 알 수 없는 분비물과 누구의 몸에서 떨어졌을지 모를 밴드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속에서 미간이 일그러진다. 숨이 찬다. 다시 넷~~ 다섯~~ 여섯~~ 아이고 아직 열까지 남았네.


숫자 10까지 세면서 그나마 일곱 바퀴를 돌았다. 나머지 세 바퀴를 어떻게 도나. 그쯤 되면 단순히 숫자 세기를 넘어선다. 아라비아 숫자 1을 그린다. 1은 참 강직하군. 어떻게 한 끗으로 끝을 보냐. 푸파 하고 숨 쉰 다음 다시 2를 그린다. 흠, 역시 2가 참 아름답단 말이지. 까지 생각하다 보면 또 숨이 찬다. 아직 2까지밖에 못 그렸는데 ㅠ.  3……. 3은 곡선이 섹시하단 말이야. 4는 왠지 날카로워. 군인이 무장하고 옆으로 두른 총 같아. 5라~~ 외유내강 같은? 흠 나도 5 같은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가지면 좋겠어. 6? 선 끝이 붙지 않는 미완의 에로틱. 내가 숫자로 태어난다면 뭐로 선택할까. 7이 왠지 맘에 든단 말이야. 숫자에 별별 상상을 보태면서 겨우겨우 한 바퀴를 돈다. 때로는 볼드체로 두껍게, 때로는 포르테체로 부드럽게 숫자를 그리면서 겨우 한 바퀴를 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며칠씩 수영을 가지 못했을 때는 몸이 무거워 숫자 세기는 엄두도 못 내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싶다. 하지만 수영장 갈 때 마음과 수영장 나올 때 마음이 180도 다르다는 것은 수영해 본 사람은 안다.


내게는 수영 배우기가 숫자를 세는 일이다. 어쩌면 똑같은 자세로 반복적인 운동들이 모두 숫자 세기 같다. 누가 더 오래 숫자 세기를 할 수 있느냐가 지치지 않고 오래 운동할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끝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를 때 나는 어김없이 숫자 세기를 한다. 100까지 세다 보면 웬만한 산속 계단은 지루하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산다는 것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고 수영처럼 푸파 푸파 숨쉬기의 연장이고 단조로운 도미솔도 음계의 도돌이표가 달린 악보이지 않을까. 숨이 막혀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지겨울 수 있는 수영처럼, 어떻게 음계를 바꾸느냐에 따라 화음이 달라져 소음이 되거나 아름다운 변주도 될 수 있다.


수영이 힘을 빼고 물을 타야 하듯 무릇 삶도 힘을 빼고 의미를 부여한 숫자 세기일지도 모른다. 그 숫자가 로또 대박을 맞으면 더 멋들어지겠지만……. 미꾸라지처럼 매끄럽게 물의 저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날까지 힘 빼기와 숫자 세기의 배움은 끝이 없다. 삶도.



작가의 이전글 하이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