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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l 18. 2019

22.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 들의 꿈이기도 하고, 참 설레는 말이다. 특히, 미국 유학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가까운 예로, 아빠가 대학교 때,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 준비를 오랫동안 하였으나, 집안의 사정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을 미국 대학원 지원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10일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지원해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나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박사과정", "취업" 등의 목적 없이, H1B(워킹) 비자가 안되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대학원이라는 선택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비록 아이비리그는 아니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매달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그 어디에서 석사과정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겨졌고, 내 삶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지원에서 입학, 장학금까지 모두 기적 같은 상황들이어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10명이 넘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입학했고, 함께 석사과정을 시작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Graduate office라는 30명이 넘는 석박사 학생들이 있는 곳에 공부할 수 있도록 나의 자리를 주었다. 미국에 와서 20명의 한국 사람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2년 가까이하다가, 갑자기 4층 건물에서 유일한 한국 사람이 되었다. 95%의 여자 동료 선생님을 만나다가, 거의 처음 보는 또래의 남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전공 특성상 남자가 많았고, 나는 어색하기만 했다. 백인들은 백인들끼리, 중국인들은 중국인들끼리, 인도인들은 인도인들끼리 삼삼오오 어울렸고,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참 막막하기만 했다. 또한, 모두 자신만의 연구 혹은 공부로 지나치게 바빠 보이는 공간 속에서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웠다. 만약 내가 미국에 처음 온 거였었더라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했었겠지만, 나도 2년 넘게 미국에 살았으니,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었고, 서먹서먹한 거리를 두었었다. 그리고 극과 극으로 바뀐 나의 환경에 대해 참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다. 크게는 들어오는 돈이 6분의 1로 줄어들었고, 더 이상 선생님이 아니었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Teaching assistant로 써였다. Mineralogy의 실험 수업을 오전 오후로 나뉘어 가르치게 되었다. 강의보다는 랩에 훨씬 많은 무게를 두는 수업이라 주로 현미경을 보거나, 광물들이 무엇인지 맞추는 수업이었다. 15년 이상의 경력의 교수가 매년 하는 수업이라 정말 체계적이었고, 꼭 서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프렉티컴(실습) 때가 생각이 나며, 속으로 끙끙 앓으며 괴로웠었다.

                     

                                                                                                                                                  

 


내가 듣는 수업으로는 Academic writing, Advanced marine geology, Earth system 총 9학점이었다. 라이팅 수업은 주로 인터내셔널 석사 학생들 중심의 수업이라 어렵지 않았고, 라이팅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었는데, APA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라이팅 워크숍, 어떻게 라이팅 센터를 이용할지 등 을 배워 유익했다. Earth system은 아프리칸 교수님께서 하시는 수업이었는데, 억양이 처음 접해서 익숙하지 않았지만, 내용이 생소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텍스트북이 있어서 책을 읽으면 이해가 갔고, 과제도 수학 문제들이 많고, 상식을 묻는 문제가 많아서 시간이 걸릴 뿐, 어렵지 않게 해결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Advanced marine geology였다. 나를 입학시켜주고, 장학금까지 준 Graduate advisor인 네덜란드 S 교수의 수업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S 교수님은 학과에서 가장 깐깐한 분이셨고, 많은 학생들이 가장 터프하다고 뽑은 분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읽기 능력, 컴퓨터 능력, 글쓰기 능력, 수학 능력, 과학 능력, 발표 능력 등 정말 다양한 방식의 숙제가 매주 주어졌다. 수업 도중 질문을 하지 않으면, 출석 점수의 일부를 깎는다는 사실도 점수가 깎인 다음에서야 알았다. 깐깐한 교수님의 수업이기도 하지만, "marine"은 내게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분야였고, 그중에서도 "Advanced"과정이니 따라가려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2년 넘게 지질학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지질학은 마치 새하얀 도화지 같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풀타임 학생답게 공부에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생각하였다. 그렇게 매 수업이 끝나고 수업자료를 정리해서 노트를 만들고 공부한다고 시간의 80%를 투자했지만, 아주 나중에서야 참 엉터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자료에는 대부분 간략한 용어들만 나와있고,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설명을 해주시는데, 영어가 부족한, 전공지식이 부족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일부분이었고, 복습에 내가 하는 것은 겨우 용어 정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새로운 내용에 대해 30장이 넘는 논문은 글자만 보일뿐,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첫 번째 과제도 두 번째 과제도 변함없이 70점 최하점에, 항상 꼴등이었다. 주말도 없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한 과제들의 결과에 눈물은 그 자리에서 쏟아졌고, 좌절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될 거 같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버텨야 했다. 다른 학교로 트랜스퍼를 하더라도 이번 학기만은 끝마쳐야 했다. 정말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너무 수월하게, 쉽게 쉽게 간 이 길이 나의 길이였을까? 하늘은 무심하지 않으셨고, 기적같이 수호천사를 보내주셨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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