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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Feb 08. 2023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욕조에 들어간 날

마음의 여유와 진심

어제의 하루를 보내며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은, 아이와 욕조에 들어갔을 때이다. 원래 작은 아기용 목조에서 목욕을 하는 아이가, 웬일로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옷을 벗겨 욕조 안으로 넣어 주었더니, “엄마 옷 빼” 하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평소에 아이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란 정말 많다. 방울토마토라도 몇 알 먹으면 “엄마 같이 냠냠” 하면서 입에 넣어 주고, 컵에다 물을 마시면 "짠” 소리를 내면서 건배를 해야 하는 식이다.

나는 이미 샤워 후였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굳이 아이와 함께 욕조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냥 들어갔다. 옷을 훌러덩 벗고 아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 아이는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웃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말을 많이 한 건 아니다. 내 다리 사이로 작은 아이가 들어와 있었고, 그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살을 맞댄 상태에서 기분 좋은 거품이 물에 점점 퍼져갔다. 나는 욕조에 보글보글 생기는 하얀 거품을 손으로 떠서 선물이라며 내밀었다. 아이는 거품의 물성을 잘 아는 것처럼 능숙한 듯 손바닥으로 거품을 펼쳤다. 작고 하얀 거품은 다시 물로 떨어졌다.

이런 시간을 보낼 때 나는 공연히 묻는다. 해월이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 했어? 나는 하루 대여섯 시간 아이와 떨어지는 것에 마음의 불편감을 아직도 조금 가지고 있다. 오늘 뭐 먹었냐고 물으면 "딸기 케이크 냠냠" 정도는 말할 줄 알게 되었지만, 감정이나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서는 아직 잘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떨어진 시간 동안 내가 모르는 아이의 표정이 쌓이는 것 같아서, 아침 시간에는 조금이라도 아이의 반응을 더 살펴 주고 들어주고 싶다. 내가 “옷 입자” 말하면, 아이는 못 들은 척 레고를 계속 만지거나 복도 끝에 있는 피아노방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쫓아가서 입히기보다 우선은 기다리는 편이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아이의 행동을 살피고 멀리 떨어졌던 아이가 다시 쫄래쫄래 돌아오면, “우리 노란색 티셔츠 입고 친구 만나러 가자”처럼, 말을 조금 바꿔서 제안하고, 그래도 협조가 안 되면 "해월이 뭐 하고 싶어?" 말하면서 놀아주곤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늦어진다. 결국 가끔은 지각생이 되고, 어린이집에 늦게 됐다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하면서도, 목소리로 인사드리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나는 금방 또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에 매료되고, 선생님 목소리 한 번 더 들으려고 늦었나, 해월아 선생님 만나면 사랑한다고 말해줘, 선생님 너무 좋지, 하면서 지각생이 느끼는 사소한 근심이나 죄송함보다, 또 다른 부풀어 오르는 마음이 생기고야 만다.

나는 만지는 것이 좋다. 욕조에 아이와 단둘이 들어가 같은 물속에 들어있는 것. 나와서 로션을 바르라고 하면 아이는 꼭 싫다고 한다. 그럴 때 아이를 간지럽혀 웃게 만들고, 마음의 빈틈으로 손을 밀고 들어가 얼굴에 로션을 문지르는 순간이 좋다. 나는 사회성이 높은 사람도, 친구가 많은 사람도 아니지만, 아이를 대할 때는 마음의 여유와 진심 정도만 있으면 꽤 괜찮은 대화가 된다고 느낀다.

마음의 여유와 진심. 그 정도가 있으면 온몸에 물을 묻힐 수 있다. 방울토마토를 다섯 알 나눠 먹으면서 다섯 번 웃을 수 있다. 물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짠 한 번에, 웃음 한 번을 주고받을 수 있다. 아이를 기르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 중 하나도 대화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화가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두 돌이 넘은 아이와 어떻게 소통하고 사랑하겠는가. 다만 아이의 눈빛을 더 바라보는 하루를 가지고 싶다고 매일매일 바랄 뿐이다.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아이와 욕조에 들어간 내가 좋았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이 거품을 만지고 내 품에 꼭 들어온 아이가 얼마나 작은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씻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머리카락이 젖고, 샤워를 다시 해야 했어도, 그런 작은 용기를 낸 내가 좋았다. 그런 용기가 반복되는 하루, 그런 하루는 유독 잘 지나간다. 하루의 끝에 그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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