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지는 밤, 나는 가장 안전한 죽음인 '잠'을 청한다
아이를 낳으면 죽고 싶지 않을 줄 알았다. 내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겼으니,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얼마 전 남편에게 고백했다.
나, 종종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솔직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남편은 그 말을 아주 무겁고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사실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단어를 쓰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내 힘듦을 그저 투정으로 여겼을까 봐. 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를 표현할 단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나는 매일 밤 그 말을 입 안에서 굴렸다.
밤마다 찾아오는 이 마음의 정체는 ‘불안’이다.
불안은 마치 거대한 장군 같고, 나는 그 발아래 놓인 미물처럼 느껴진다.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체급 차이. 그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나는 자주 무력해진다. 다툴 필요도 없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면 그냥 기권하고 싶어지는 마음. 말하자면, 그게 ‘죽고 싶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죽지 않으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 죽음을 선택할 용기가 없어서 필연적으로 불안을 떠안고 산다. 그냥 불안하기로 마음먹는 즉시 삶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지만, 나는 안다. 이 마음 또한 파도처럼 지나갈 거라는 사실을.
이토록 약해진 마음을 붙들기 위해, 나는 또다시 몸을 쓴다. 이번에는 격렬한 수영도, 버티는 요가 동작도 아니다. 가장 정적인 몸의 움직임, 바로 ‘잠’이다.
요가 강사로 일하며 수년 동안 회원들에게 “어깨에 힘을 빼세요, 미간을 펴세요, 호흡을 바라보세요”라고 명상을 지도했던 나다. 하지만 정작 밤이 되면 나는 불안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초보자가 된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며칠 전부터 명상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꽤 우스운 풍경이다. 명상을 업으로 삼았던 아내가, 명상과는 거리가 먼 남편에게서 숨 쉬는 법을 배우다니.
남편은 내 손을 잡고 나직하게 말한다.
검은 화면이 있습니다.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그냥 검은 화면을 떠올려 보세요.
다짜고짜 ‘검은 화면’이라니. 그 투박한 단어 선택이 웃겼지만, 오히려 '화면'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단순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내 감은 눈앞에 비로소 검은색이 칠해진다.
남편의 손을 잡고, 나는 기꺼이 그 검은 어둠 속으로, 작은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 매일의 잠은 매일의 죽음과 다름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죽음에 굴복하는 법을, 아니 죽고 싶은 마음을 데리고 살아내는 법을 배운다.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온갖 감정을 다 겪고 삶의 끝에 도달한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내게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은 희망이라기보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났다는 체념에 가깝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만 겨우 잠들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만 5세인 아이가 먼 훗날 “엄마, 죽고 싶어?”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싶다. 아이의 세상에는 아직 지켜주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정말 싸워야 하는 대상은 ‘죽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삶에 대한 회의’인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가장 처절하게 살고 싶다. 내 불안을 사랑하고 싶다. 삶에 대한 불안함이 죽고 싶은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 삶에 대한 배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삶이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 삶이 드리우는 짙은 그림자일 테니까. 그림자가 있다는 건, 어딘가에 강렬한 빛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죽고 싶다고 말한다. 찡찡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 말을 뱉어냄으로써 내 안의 어둠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더라도, 죽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내 몸이, 나의 잠이, 다시 나를 내일 아침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몸이 단단해져야 마음이 마음껏 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밤,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가장 안전한 죽음인 잠 속으로, 검은 화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사실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우울할 때는, 그냥 자자.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이제는 그냥 외웠다고 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떤 아침에는, 정말 나아져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