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 버거운 날에는 물속으로

러닝은 극복이고, 수영은 위로다

by 서나연

한때는 나도 땅 위를 달리는 사람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런 장비도, 기술도 필요 없었으니까.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시작되는 그 간편함이 마음에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 때 계주 선수로 뽑혀 나쁘지 않은 폼으로 트랙을 돌았던 기억도 있다. 비록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어떤 시절의 영광은 삶 전체를 지탱하는 작은 자부심이 되기도 하니까.


봄바람이 부는 날이나 낙엽이 지는 가을에는 집 근처 호수 공원을 뛰었고, 볕이 따가운 여름이나 살을 에는 겨울에는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를 다람쥐처럼 달렸다. '기울기 조절' 버튼 하나로 오르막을 만드는 러닝머신도 좋았고, 공원을 뛸 때면 세상 풍경이 온전히 내 것 같아 좋았다.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나면, 온몸의 세포가 새것으로 갈아 끼워진 듯한 개운함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리고 싶다고 해서, 내 몸까지 달릴 준비가 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발목을 다쳤다. 3년 전에는 왼발, 2년 전에는 오른발, 그리고 1년 전에는 다시 왼발.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번갈아 가며 발목이 꺾였다. 정형외과 의사는 매번 "인대가 늘어났네요"라며 익숙하게 붕대를 감아주었고, 나는 절뚝거리며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남들은 잘만 뛰는데, 왜 나는 걸핏하면 삐끗하는 걸까. 거울 속의 내 발목과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뼈대가 얇아 여리여리해 보인다는 말을 칭찬처럼 듣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이 넘어가니 그 '가녀림'은 '부실함'의 다른 말일 뿐이었다.


예전에는 옷태가 잘 받는 마른 몸이 예뻐 보였지만, 이제는 안다. 건강하지 못한 몸은 결국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툭하면 삐고 부러지는 관절은 내 삶을 지탱하는 데 하등 쓸모가 없었다. 30대의 아름다움은 얇은 발목이 아니라, 어떤 울퉁불퉁한 길바닥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단단한 종아리에서 나온다는 걸, 깁스를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결국 러닝을 멈추고 수영장으로 돌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중력' 때문이다.
러닝은 정직하다 못해 가혹하다. 달릴 때마다 내 체중의 3배에 달하는 하중이 고스란히 저 가냘픈 발목으로 쏟아진다. 마음의 무게도 버거워 죽겠는데, 땅의 중력까지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일. 그것은 약해진 내 관절이, 그리고 내 마음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한 형벌 같았다.


흔히들 수영장엔 몸매가 좋은 사람들만 올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물은 땅 위보다 훨씬 너그럽다. 관절이 약해 걷기 힘든 할머니도, 체중이 많이 나가 무릎이 아픈 아저씨도 물속에서는 자유롭다. 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첨벙, 하고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마법처럼 내 몸무게가 가벼워진다. 부력(buoyancy). 물이 가진 이 기특한 성질은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절반쯤 덜어준다.

margaretd-buoy-2334245_1920.jpg ⓒ Pixabay


네가 무거운 거 다 알아. 내가 좀 들어줄게.

물이 내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며 엉덩이와 허리를 슬쩍 들어 올려주는 것만 같다. 땅 위에서는 내 발목이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나의 육체를, 물속에서는 물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함께 떠받쳐준다. 나는 그 안온함에 기대어 물고기처럼, 때로는 인어처럼 물살을 가른다.


물론 수영이라고 해서 늘 평화로운 건 아니다. 의욕이 앞서 평영 발차기를 뻥 차다 보면 골반이 뻐근해지기도 하고, 좁은 레인에서 역영하다 옆 사람과 부딪혀 손목이 시큰거릴 때도 있다. 집에 돌아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손목에 든 푸르스름한 멍을 발견하곤 "아, 아까 레인 줄에 부딪혔나 보네" 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생채기는 견딜 만하다. 땅 위에서 중력과 정면승부 하다가 인대가 늘어나는 것에 비하면, 물속에서의 충돌은 애교 수준이니까.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두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든 날이 있다. 5화의 밤처럼 죽고 싶은 마음이, 삶의 무게가 나를 바닥으로, 지하로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날. 그런 날엔 억지로 땅 위를 달리지 않는다. 대신 물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그릇이 약해져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을 때, 물은 내 그릇을 둥둥 띄워준다. 깨지지 않게, 가라앉지 않게.

러닝이 내 힘으로 땅을 박차고 나가는 '극복'의 행위라면, 수영은 물에게 내 무게를 맡기는 '위로'의 행위다.


발목이 약한 나는, 마음이 약한 나는, 그래서 오늘도 물속을 달린다.

중력이 절반이 되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롭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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