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몸과 마음을 다시 빳빳하게 말리는 법
어린이집 참관수업이 끝나고 빗길을 걸었다. 선생님이 챙겨주신 간식 꾸러미가 든 종이 가방이 빗물에 젖어가고 있었다. 집에 다 와갈 즈음, 물을 잔뜩 머금은 가방 밑바닥이 툭, 하고 터져버렸다.
그냥 가방이 터졌을 뿐인데, 과자, 우유, 사탕 몇 개가 빗물 웅덩이로 와르르 쏟아졌을 뿐인데,
내 몸 어딘가가 터진 것 같았다.
절대로 떨어트리지 않으리라 두 팔로 꽉 안고 걷던 가방이었다. 한 손에 우산을 든 채로는 찢어진 종이 가방을 지킬 도리가 없었나 보다. 내가 걸어온 길에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누군가 보기에 완벽하게 짐을 들고 나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강박처럼, 나는 허둥지둥 떨어진 과자 봉지들을 주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젖은 옷을 벗어 던지는데, 온몸의 전원이 툭 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당연히 긴장을 한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은 집에 돌아왔을 때뿐인데, 그 이완의 과정은 늘 심한 몸살처럼 찾아온다.
내가 왜 힘이 빠진 것인지, 왜 혼자 있어야만 충전이 되는 건지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나는 그저 '자주 아픈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는 아침이 오는 것만으로도 배가 아팠다.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학교에 가면 어지러웠다. 병원에서는 혈관의 좌우 넓이가 달라서 그렇다고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그건 혈관의 문제라기보다, 학교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 섞여야 한다는 긴장감이 내 얇은 몸을 짓눌렀다는 것을. 마음의 습기를 견디기에 내 몸은 너무 얇은 종이 가방 같았다는 것을.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자주 젖고, 자주 찢어진다.
아무래도 타고나길 마음이 약한 사람이 있나 보다. 나도 아직, 마음이 약해서 몸이 아픈 건지, 몸이 아파서 마음이 더 나약해지는 건지 잘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남편은 침대에 늘어진 나를 보며 "체력이 약해서 그래, 운동 좀 더 해"라고 말하지만, 이건 근육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짐이 무거우면 몸이라는 바닥이 찢어지는, 지극히 물리적인 현상인 것 같을 때도 있다.
몸도 마음도 '제로'에 가까워진 상태. 예전 같으면 이럴 때 '영혼의 음식'을 찾았을 것이다. 가만히 누워서 남편에게 종아리를 주물러 달라고 조르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몸이 방전될 때까지 유튜브만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앞에 돌봐야 할 아이가 있다.
그리고 내 안에도, 돌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할머니가 푹 조려주신 비린내 없는 고등어조림, 엄마가 갓 지은 밥에 버터를 넣어 비벼준 간장계란밥 같은 것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걸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부르며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날에는, 그 소울 푸드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할머니는 이제 안 계시거나 너무 멀리 있고, 엄마의 밥을 먹으려면 몇 시간을 가야 한다. 내가 직접 해 먹자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내가 가장 아플 때, 정작 나를 가장 위로해 줄 음식은 내 곁에 없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몸은 더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너무 '고급 위로'를 찾아 헤맸던 건 아닐까. 완벽한 위로가 아니면 위로가 아니라고 믿으면서, 스스로를 더 춥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 나는 영혼의 음식 대신, '몸의 음식'을 택하기로 했다.
부엌으로 가서 전기밥솥을 연다. 다행히 아침에 해둔 밥이 남아 있다.
굳이 추억이 깃든 음식이 아니어도 된다. 엄마의 손맛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면 충분하다.
국그릇에 밥을 덜고, 전자레인지에 데운 3분 카레를 붓는다. 혹은 김치 하나만 놓고 물에 밥을 만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따뜻함'이다.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다.
뜨끈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차갑게 식어버린 위장을 데운다.
마음이 물이라면 몸은 그릇이라고 했다.
오늘 빗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나의 종이 가방 같은 몸을 다시 빳빳하게 펴주는 건,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뱃속으로 들어가는 탄수화물의 온기다.
씹는다. 꾹꾹 눌러 담는다.
영혼까지 위로받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텅 빈 몸을 채우는 일에 집중한다. 신기하게도 배가 따뜻해지면, 찢어졌던 마음의 밑바닥도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다.
이제 이 마음으로, 내 아이를 보러 갈 힘이 생긴다.
어떤 날의 위로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굶지 않는 것.
귀찮아도 나를 위해 밥통을 여는 것.
차가운 세상에서 돌아온 내 몸에게 따뜻한 것을 먹여주는 것.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면, 나는 남편에게 말할 힘이 생긴다.
나 오늘 컨디션 나쁘지 않아. 아까는 비 맞아서 그랬지.
젖은 종이 가방은 말리면 된다. 구겨진 자국은 남겠지만, 테이프를 붙여 다시 쓰면 그만이다.
오늘 나는 나의 찢어진 구석을 깁는 심정으로 밥을 먹었다.
내일은 다시 빳빳한 몸으로, 빗속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