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을 잠재우는 건 낭만이 아닌 생활이었다
결혼도 하기 전, 아이도 없던 시절.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던 20대의 끝자락,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님의 이혼, 잦은 이사와 전학. 그 불안정한 삶을 설명하기에 ‘역마살’만큼 적당한 핑계는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부적처럼 믿었다. 삶이 꼬이면 언제든 짐을 싸서 떠나버리면 그만이라고. 도망치는 건 비겁한 게 아니라 내 운명이라고 합리화하면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마살을 믿던 내가 직업으로 택한 곳은 도망칠 곳 없는 가로 60cm, 세로 180cm의 좁은 매트 위였다. 자취를 시작했기에 어떻게든 내 생활비는 벌어야 했다. 요가원은 앞으로 치고 나가는 곳이 아니다. 그저 제자리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고통과 대면하며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어느 날, 이별 후유증으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나는 회원들에게 불쑥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저는 요즘… 버티는 삶을 살고 있어요.”
회원들이 고요하게 나를 응시했다. 나는 짐짓 담담한 척 말을 이었다.
“근력을 키우는 자세들은 대부분 ‘버티는’ 동작이잖아요. 몸의 근력이 그렇듯, 마음의 근육도 무언가를 해결하거나 성취하는 게 아니라, 그저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때 회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말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요가로 다져진 내 마음이 제법 단단해졌다고 착각하면서.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는다. 지금 내가 도망치지 못하는 건, 그때 길러둔 마음의 근육 덕분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건 훨씬 더 질기고 무거운 현실의 밧줄들이다. 남편과 나는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라기보다, ‘가계 경제’를 함께 굴려가는 경제적 공동체이자 육아 동지에 가깝다. 대출금의 무게를 나눠 지고, 생활비라는 전선에서 함께 싸우는 전우. 그리고 내 목숨보다 소중하지만, 동시에 내 자유를 거의 완벽하게 박탈해버린 아이를 함께 길러야 하는 동지.
남편과 싸우고 꼴도 보기 싫은 날에도, 아이가 밤새 울어 제껴 정신이 혼미한 새벽에도 나는 짐을 싸지 못한다. 아니, 짐을 쌀 수 없다. 내게 역마살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마음은 이미 수십 번도 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내일 가져갈 유치원 가방을 싸고, 냉장고에 식재료가 얼마나 남았나 확인한다.
너무 멋진 말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이 집에 머무르는 건, 숭고한 사랑이나 요가로 다져진 인내심 때문이 아니다. 그저 얽히고설킨 책임감 때문이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 비루하고 찌질한 현실을 버티는 감각이 6년 전 매트 위에서의 감각과 묘하게 닮아 있다는 것이다.
허벅지가 불타는 것 같아도 정해진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자세를 풀지 못했던 그때. ‘그만하고 싶다’고 비명을 지르는 뇌를 무시하고, 덜덜 떨리는 다리로 기어이 버텨냈던 그 시간들. 지금의 나는 그때 배운 감각으로 버틴다. 또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 같지는 않으니까. (사랑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일찍 결혼했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몇 년 해보고 결혼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이 부분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져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아우성칠 때, 나의 몸은 기억한다. 싫어도, 아파도, 도망치고 싶어도 일단은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생 호락호락하지 않다. 삶에는 거창한 목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하루, 도망치지 않고 내 몫의 매트 위에, 아니 내 몫의 부엌과 거실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
역마살 낀 내 마음은 여전히 창밖을 서성거린다. 하지만 나의 몸은 이 집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있다. 그것은 유연함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음에서 오는 근력이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이 지루하고 구질구질한 ‘버티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 떠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그러나 기꺼이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