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아닌 근육으로 나를 지탱하는 법 : 낑낑대며 버티는 당신에게
요가 강사가 되고 나서 입버릇처럼 하게 된 말이 있다.
"관절에 기대지 말고, 근육의 힘으로 버티세요."
인터넷 강의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잔인한 구석이 있다. 근육이 충분한 사람은 근육으로 버티면 되지만, 근육이 없는 사람은 별수 없이 뼈와 관절에 기대어 간신히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삶도 그랬다. 내 마음의 근육이 단단할 때는 시련이 와도 스스로의 힘으로 지탱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흐물흐물해져 버틸 힘이 없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거나, 술에 기대거나, 혹은 '운명'이나 '팔자' 같은 앙상한 관절에 기대어 겨우겨우 서 있곤 한다.
관절에 기대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엔 뼈가 상하고 통증이 찾아온다. 그걸 알면서도 당장 힘이 없으니 기댈 수밖에 없는 비애.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무릎을 조금 접으면 관절이 편안합니다" 같은 타협의 멘트를 덧붙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틴다. 누군가는 다리가 아닌 팔로, 누군가는 턱을 악물며,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리 수업에는 유독 몸이 뻣뻣한 중년의 아저씨 회원이 있었다. 그는 맨 뒷자리 구석에서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깊은 신음 소리를 냈다. "으어억, 끄응." 내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힘을 빼세요'라는 말을 수없이 해도, 그는 온몸에 힘을 잔뜩 준 채 사투를 벌였다. 타고난 근력과 유연성으로 우아하게 힘을 빼고 동작을 해내는 앞줄의 회원들과는 딴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회원님, 오늘 수업 많이 힘드셨죠? 괜찮으세요?"
그러자 땀범벅이 된 그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할 만하던데요? 시원합니다.
다음 수업 시간에도 그는 여전히 낑낑대며 괴상한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굳이 교정하려 들거나 안쓰럽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미 '알아서 잘' 하고 있었으니까.
동작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요가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니다. 뻣뻣한 몸으로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매트 위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 그 아저씨는 자신만의 근육을, 자신만의 그릇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요가를 하는 이유는 예쁜 동작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절이 아닌 내 근육으로 삶을 지탱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