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라는 이름의 작은 섬
수영장이 락스 냄새와 거친 숨소리가 뒤섞인 ‘삶의 현장’이라면, 20대의 나를 살게 했던 곳은 조금 다른 냄새가 났다. 은은한 인센스 향과 고요한 침묵이 흐르던 곳. 내 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는 요가가 있었다.
20대의 나는 매일 아팠다. 마음이 물이라면 몸은 그릇이라는데, 그때 내 그릇은 이미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빚을 갚느라 일에 치여 살던 시절이었다. 통장의 숫자를 메우기 위해 내 시간과 체력을 땔감처럼 태워 먹던 날들. 어느 날 찾아온 어깨의 통증은 단순한 근육통이 아니었다. 학생 때 오래 앉아있어서 뻐근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고, 누군가 양 어깨를 짓누르는 공포마저 느껴졌다.
그때의 나에게 운동은 생존 수단이 아니었다. 그저 사치이거나,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런 나를 요가원으로 이끈 건 은행을 다니던 언니의 무심한 한마디였다.
“요가를 하면 몸이 좀 덜 아파.”
아픈 게 낫는다가 아니라 ‘덜 아파진다’니. 그 현실적이고 처절한 처방에 이끌려 집 앞 요가원을 찾았다.
요가원의 문을 열자,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수영장이 ‘함께’ 파도를 넘는 곳이라면, 이곳은 철저히 ‘혼자’ 견디는 곳이었다.
바닥에는 네모난 매트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섬들 같았다. 매트 밖의 바닥은 깊고 어두운 바다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무인도인 매트 위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우리를 굽어살피는 신처럼, 혹은 등대처럼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타인의 시선도, 세상의 속도도 침범할 수 없는 가로세로 한 평 남짓한 섬. 나는 그 섬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요가의 흐름은 인간의 생애와 닮아 있다. 두 발로 단단히 서는 자세로 시작해, 척추를 곧게 펴고 앉는 자세를 지나, 마침내 온몸을 바닥에 맡기는 누운 자세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발바닥에 있던 무게중심이 엉덩이로, 마지막에는 등 전체로 옮겨간다.
잔뜩 긴장해 떨리던 근육들이 서서히 이완되고, 힘을 주어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배우는 시간. 그 끝에 찾아온 건 ‘사바아사나(Savasana)’, 송장 자세였다. 불을 끄고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 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에 따라 발가락 끝부터 힘을 툭, 하고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주르륵, 눈꼬리를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슬픈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20대의 내가 흘리지 못하고 삼켜왔던 울음이던 것 같다. 단단하게 굳어있던 어깨가 바닥에 닿아 녹아내리자, 금 간 그릇 틈새로 찰랑이던 마음이 넘쳐흘렀다.
몸과 마음, 둘 다 나 자신이지만, 몸이 마음에게 위로를 보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동안 버티느라 고생했어. 이제 좀 내려놓아도 돼.” 하고 말이다.
그날 나는 요가원에 등록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작해서 몇 년간 지속한 첫 번째 운동. 수영이 나를 단단하게 굽는 과정이라면, 요가는 깨진 나를 보수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몸과 첫사랑에 빠졌다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