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물이라면 몸은 그릇이라서

나는 울기 위해 근육을 만듭니다

by 서나연

마음이 물이라면 몸은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날의 마음은 잔잔하게 찰랑이고, 어떤 날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소용돌이치니까. 이 불안하고 투명한 것들을 온전히 담아내려면 그릇은 단단해야만 한다. 그릇이 깨지면 소중한 물은 바닥으로 쏟아져 버리니까 말이다. 물이 귀할수록, 내 안의 슬픔이 함부로 새나가지 않게, 혹은 너무 쉽게 증발해 버리지 않게 나는 몸을 굽는다.

수영하는 사람. ⓒ Pixabay

그릇을 빚는다고 하면 고요한 도자기 공방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릇을 굽는 현장은 조금 다르다. 락스 냄새가 코를 찌르고, 거친 숨소리가 오가는 오전의 수영장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아한 백조가 아니라, 살기 위해 퍼덕이는 물고기에 가깝다.


특히 접영을 할 때가 그렇다. 접영은 팔다리뿐만 아니라 골반, 허리, 고개 순으로 온몸을 웨이브 하듯 꿀렁거려야 앞으로 나아간다. 흔히 ‘인어 수영’이라 불리지만, 현실은 헉헉대는 숨소리의 향연이다.


우리 반에는 접영만 하면 유독 얼굴이 빨개지는 언니가 있다. 보통 나는 그 언니 바로 뒷 순서라, 가쁜 숨을 몰아쉬는 언니의 얼굴을 1열에서 직관하곤 한다. 언젠가 언니는 수모 안으로 땀인지 물인지 모를 것을 훔쳐내며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접영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 받나 봐. 나 진짜 얼굴 빨개졌어? 팔이 왜 이렇게 안 돌아가지?"


젊은 강사님은 열정적으로 자세를 설명하고, 우리는 제자리에서 뻣뻣하게 그 동작을 흉내 낸다. 심각해진 언니의 표정을 보다 문득, 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언니, 저 꿀팁 있어요. 스스로가 인어라고 생각하는 거. 몸에 꼬리가 달렸다고.”

언니는 내가 귀여운지 그냥 웃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덧붙였다.


“나한테 붙은 게 다리라고 생각하면 다리랑 골반이 따로 노는데, 이게 통째로 꼬리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그냥 꼬리 가진 동물이 헤엄치는 걸 상상해 봐요.”


비록 우리에겐 아가미가 없지만, 웨이브를 타는 그 순간만큼은 인간임을 잊어보는 거다. 상상은 힘이 세다. 뻣뻣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유연한 상상이니까.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권태기에 빠지곤 한다. 수영을 시작하고 첫 3개월은 매일이 축제 같았다.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하지만 중급반으로 올라오고 몇 개월이 지나자 정체기가 찾아왔다. 배웠던 영법은 헝클어지고, 교정해야 할 자세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 즈음, 또 다른 언니가 탈의실 사물함 앞에서 툭 내뱉었다.


“아, 수영 재미없어질라 그래.”


그 순간 나는 마치 내 글쓰기 수업 수강생을 달래듯, 아니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언니에게 쏟아냈다.


“아니에요, 언니. 저 뒤에서 봤는데 진짜 많이 늘었어요. 폼이 잡혔다니까요? 뭐가 돼도 될 것 같아요. 진짜로.”


진심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엉성한 몸짓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증인들이니까.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접영을 해보라고 부추겼다. 나는 물속도 아닌 맨바닥에서 발차기를 몇 번 하며 꿈틀거렸고, 멈춘 후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었다. 나는 크게 웃었다.


단단한 그릇은 혼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님을 깨닫는다. 차가운 물속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빨개진 얼굴로 서로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그 마음들이 모여 나의 그릇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마음이 찰랑거려 불안한 날이면, 나는 근육을 쓰러 간다. 물이 쏟아지지 않게, 나라는 그릇을 단단하게 빚는 시간.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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