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쓴 초단편
을지로에서 열린 무역산업 포럼에 부장님과 함께 참석한 날이었다. 오전부터 열린 포럼은 정오를 훌쩍 넘겨 끝이 났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을지로 거리를 나섰다. 마침 부장님이 근처에 잘 아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그리로 향했다. 차를 끌고 가기에는 너무 가깝기도 하고 골목길도 복잡해서 을지로 지하상가를 가로질러 걸어가기로 했다.
항상 차를 타고 다녀서 지하철 역사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상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폐점 세일’이나 ‘점포 임대’라고 커다랗게 적은 종이를 문 곳곳에 붙인 상가가 많았다. 그런 상가들을 흘겨보며 지나가는데 오래된 엘피판을 파는 상점이 시선을 붙잡았다. 지하상가 모퉁이에 위치한 레코드 가게였는데 엘피판을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해서 가판대 상자에 늘어놓고 있었다. 상자마다 알파벳이 크게 쓰여 있었다. 그 앞에는 종이상자 한쪽을 찢어 만든 것 같은 오래된 가격표도 있었다.
ㅡ 세 장에 오천 원! 점포 정리!
'만 원'이라는 글자를 검은 매직으로 북북 지워 그 위에 ‘오천 원’이라고 다시 쓴 티가 났다. 레코드 가게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깥에서도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한때 수많은 엘피판을 품었을 커다란 책장이 텅 빈 채로 허망하게 서 있었고 거기엔 아직 분류되지 않은 엘피판 몇 개가 듬성듬성 뉘여 있었다.
앞서가던 부장님이 엘피판 앞에서 멈춘 나를 불렀다. 그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엘피판 세 장을 손에 집히는 대로 골랐다. 가게 주인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만 원짜리 지폐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자리를 떴다.
문득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턴테이블에 엘피를 올려 놓고. 습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도 그리웠다. 무엇보다 고립된 것 같은 그 지하 세계의 느낌을 다시 만져보고 싶었다. 경쾌하게 고갯짓을 하면서.
*
뮤직바에 처음 가게 된 것은 졸업을 앞둔 여름이었다. 전역 후 바로 복학을 하는 바람에 학기가 엇갈려서 8월에 코스모스 졸업을 하게 됐다. 졸업 유예를 신청하는 기간도 놓치는 바람에 직장도 잡지 못하고 졸업식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동기들은 사회인이 되어 이미 학교를 떠났거나 졸업을 유예하고 각자 취업 준비에 전념하고 있었다. 부모님 눈치가 보여서 마지막 방학에도 아침 일찍 학교로 나와 이력서를 쓰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저녁 늦게 귀가하곤 했다.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과 가끔씩 모여 술을 마시곤 했지만 만나는 빈도는 자연스레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누군가의 취업 성공 소식이 들려왔다. 함께 푸념하며 술을 마시던 친구들도 자신의 길을 찾아 하나둘 학교를 떠났다. 그럴수록 남은 아이들의 초조함은 짙어졌고 만나도 빠르게 술잔만 비우고 각자 할 일을 하러 가기에 바빴다.
도서관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혼자 밥을 먹고 학교 안을 잠시 산책하는 것이 그시절 나의 '저녁 코스'였다. 해가 지고 뙤약볕이 가신 캠퍼스에는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여름밤 공기는 한낮의 습기와 더위를 치우고 연인들을 무대 위로 올려주는 묘한 힘이 있다. 중요한 장면을 찍기 위해 큐 사인을 준비하는 능숙한 연출가 같다. 그 묘한 힘은 그래서 마음을 선득하니 들뜨게 한다. 그러나 나는 달뜬 마음을 누릴 처지가 아니었다. 다음주면 졸업식이었고 졸업과 동시에 공공연한 백수가 될 터였다. 성인이면서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어떤 울타리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 무소속에 무소득자.
내 처지를 새삼 짚어보자 캠퍼스의 공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나를 학교 밖으로 이끌었다. 학교 앞 로데오 거리에는 형형색색 네온사인과 쿵쿵 대는 음악소리, 그리고 한껏 꾸민 젊은이들의 열기까지 시끄럽게 뒤섞여 있었다. 술집이며 옷집이며 상점마다 문밖에 스피커를 내놓고 최신 가요를 틀어댔고 그 가운데 술 취한 누군가의 뜻모를 고성까지 들려왔다. 입대 전까지만 해도 나도 이 거리를 뻗대고 쏘다니며 술을 마시곤 했었다. 고작 몇 년 만에 혼자 처량히 걷고 있자니 이 거리의 소음들이 문득 낯설어졌다. 거리를 걷다 말고 학교로 되돌아가려는데 문득 재즈 선율이 들려 걸음을 멈췄다. 스피커가 쿵쿵 울리는 최신 가요의 기계음 틈에서 이질적인 생음악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오고 있었다. 소음에 거의 묻혀 있었지만 아주 나지막이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니 여성복을 파는 옷 가게와 액세서리 판매점 사이에 아주 좁은 건물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앞에 먼지 쌓인 작은 스피커가 놓여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소리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옆쪽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와 엘피판 표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빛바랜 포스터에는 색소폰을 불고 있는 풍채 좋은 흑인 남자도 있었고 곱실거리는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상의만 탈의한 채 기타를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남성 락밴드도 있었다. 퀸, 비틀즈, 롤링 스톤즈 같은 밴드의 유명한 앨범 표지도 있었다. 입구에서 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니 이렇다 할 간판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수많은 포스터와 표지들 사이에 역시 빛이 바래고 모서리가 해진, 손바닥 만한 라임색의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거기엔 ‘뮤직바, 포그’라고 아주 작게 적혀 있었다.
계단 아래는 유리문이 하나 있었고 문 너머로 뮤직바 안이 들여다보였다. 꽤 어두웠고 아무도 없이 음악 소리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거리에서 들었던 그 재즈 음악 소리였다. 술만 마시는 술집만 가봤지 이런 형태의 뮤직바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로 돌아가기도 집으로 향하기도 싫었다.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지하 특유의 습한 냄새와 도서관 보존서가 같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곳에는 기다란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었고 양 옆에는 둥근 테이블과 소파로 된 자리가 서너 개씩 있었다. 그리고 사방은 전부 책장이었는데 거기에는 엘피판과 씨디 케이스가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족히 수천 개는 되어 보였다. 기둥과 천장에는 입구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포스터와 표지들이 붙어 있었다. 안쪽에도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바 테이블 뒤에 턴테이블 두 개와 각종 음향기기가 놓인 것이 보였다. 턴테이블 바로 앞 바 자리에 앉았다. 한쪽 턴테이블 위에 엘피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재즈는 거기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음악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이내 오른쪽 엘피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턴테이블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것을 처음 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책장 구석진 곳에서 갑자기 천막이 열리더니ㅡ거기에 비밀 공간이 있을 줄이야ㅡ키가 작고 몸이 단단해 보이는 남자가 내가 앉은바 건너편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나를 보더니 눈이 살짝 치켜떴다.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은 티셔츠를 입은 약간은 과묵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학생인가?”
목소리도 묵직한 남자는 왼쪽 턴테이블에서 엘피판을 꺼내면서 말했다.
“예,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남자는 책장에서 엘피판을 하나 꺼내더니 왼쪽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핀을 조정했다.
“맥주?”
그는 조촐한 메뉴판을 건넸고 나는 병맥주를 하나 시켰다. 그는 천막 뒤로 가더니 병맥주와 견과류가 담긴 작은 접시를 내왔다. 땅콩과 피스타치오, 김 과자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말없이 음악을 들었다. 턴테이블 앞에서 남자는 고개를 까딱이며 팔짱을 낀 채 음악을 듣다가 다른 쪽 책장으로 가서 엘피판을 꺼내와 턴테이블에 올려놓곤 했다. 남자는 나를 신경 쓰며 신중히 음악을 고르는 것 같았다. 스티비 원더 말고는 잘 모르는 음악들이었지만 모두 듣기 좋았다. 맥주를 절반쯤 마셨을 때 남자는 내 앞으로 작은 메모지 하나를 내밀었다. ‘리퀘스트 송즈’라는 글자와 음표가 작게 인쇄된 하얀 메모지였다. 남자는 볼펜을 건넸다.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하면 틀어줍니다.”
듣고 싶은 음악이 뭐든 간에 여기에 다 있다는 말인가?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너바나와 프린스, 빌 에반스의 음악을 적어서 내밀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책장으로 돌아서더니 금방 엘피판 몇 장을 들고 왔다. 신청곡을 받아 엘피판이 꽂힌 책장에서 찾아와 틀어주는 게 그에겐 큰 재미인 것처럼 보였다. 신청한 세 곡이 끝나자 그의 추천곡이 재생되었다. 음악 취향을 이미 파악했다는 듯 그에 맞게 선곡해 틀어주는 것 같았다. 까딱이는 그의 고갯짓이 경쾌했다.
그와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음악만 들었다. 턴테이블로 듣는 음악은 이어폰이나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는 질감이 달랐다. 음악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음악이 공기 속에 가득 차 나를 감싸 안고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그 느낌에 취해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나만의 지하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여기서는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지도에도 없는 미지의 세계 같은 곳. 가야 할 방향을 알 필요가 없는 안개 속.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값을 치른 뒤 자리를 떴다. 그날 저녁에 계획했던 공부는 결국 하지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졸업식 이후에도 나는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 나갔고 별일 없는 저녁이면 뮤직바 포그로 향했다. 사장님과 나는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간단한 것을 묻고 간단한 대답을 하곤 했다. 포그 운영시간은 저녁 일곱시부터 자정까지였다. 손님이 많지 않았고 가끔 보이는 손님들은 사장님 또래로 보이는 중년 남성들이었다. 그들도 대부분 혼자 포그를 찾거나 둘이 와서 말없이 음악만 듣다가 갔다. 젊은 사람들이나 학생들은 없었다. 그래서 포그는 음악 속에서 조용했고, 시끄러운 지상의 로데오거리와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학교 근처에 술을 마시려고 가면 꼭 한 번은 후배들 중 하나를 마주쳤다. 졸업을 하고서도 학교 근처를 맴도는 선배. 후배들은 나를 보면, 선배니까 안부를 묻긴 물어야 하겠는데 뭘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무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포그는 어색함을 지우려는 인사치레가 없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서로의 사연을 묻지 않았고 말없이 음악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사장님은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간간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가 뮤직바를 운영한 지는 십 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 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으며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여행을 마친 뒤에 왜 뮤직바를 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 나누는 짧은 이야기를 엮어서 그의 과거를 추측할 뿐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자유분방한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말투부터 자세, 태도까지 다부지고 근엄하며 묵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양복을 차려입으면 한 회사의 간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그에겐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걸까. 그와 나는 개인적인 신상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병맥주를 부딪쳐 건배하고 턴테이블에서 흐르는 음악 박자에 따라 말없이 고갯짓을 하는 걸 더 즐겼다. 나 역시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와 죽이 잘 맞았고, 취업으로 불안한 내 상황을 그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포그에서 여름과 가을을 그렇게 보내고 나는 그해 초겨울에 취업했다. 목적지가 어디이고 거기에 언제 도달할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이 드디어 끝나는 것 같았다. 안개 속을 나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다져진 길이 놓여있었고 역시 그 길을 갔던 누군가 만들어놓은 울타리에 안전하게 소속될 수 있었다. 회사는 무역업을 하는 중견 기업이었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가 먼데다 해외 출장도 잦았다. 그래서 한동안 포그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그곳을 소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 남은 후배들에게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학생티를 벗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보다 상사나 동료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귀찮은 일은 모두 돈으로 처리해버렸다. 택시를 탔고 차를 샀다. 부모님 안부 전화는 영상통화로 해결했고 친구들은 모바일 청첩장을 주고받을 때나 연락을 해왔다. 집안일은 필요할 때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일일 가정부를 불러 해결했고 음악도 정기 결제권을 끊어서 스트리밍으로 들었다. 음악 사이트에는 없는 곡이 없었다. 원하는 것은 모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잘 닿지 않으면, 그저 돈을 더 많이 내면 됐다.
“교재예요, 교재.”
언젠가 사장님은 내게 빈 레코드판을 내밀면서 말했다.
“레코드판을 자세히 보면 미세한 선이 빼곡합니다. 그중에서도 두꺼운 줄 몇 개가 좀 더 선명히 보이는데 그게 곡을 나누는 표시예요. 레코드판 한쪽 면에는 보통 네 곡 정도가 실려 있습니다. 그 이상을 담으면 곡 간격이 짧거나 턴테이블 바늘이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다른 곡이 재생되는 거고.”
사장님은 굵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레코드판의 촘촘한 선을 가리키며 레코드판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게 우리가 가장 길게 나눈 대화였다. 어딘가에 소속됐다는 우월감에 홀딱 빠져서 그에게 취업 소식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그 소식을 전했다면 그는 고개를 끄덕 하고 끝내주는 음악을 말없이 틀어주었을 것이다.
*
퇴근하자마자 학교로 차를 몰았다. 을지로에서 산 엘피판 세 장을 챙겨 로데오거리까지 걸으며 여름 밤 공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후텁한 공기가 안개처럼 나를 감쌌고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로데오거리는 여전히 유행가로 쿵쿵 대는 소음이 가득했고 어린 학생들로 붐볐다. 그 거리에서 홀로 이질적인 선율을 연주하고 있을 포그를 찾아 귀를 기울였다. 상점들이 많이 바뀌어 있어서 포그가 있던 곳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디저트 가게와 휴대폰 판매점을 몇 개 지나치니 익숙한 건물 입구가 보였다. 포그에는 간판이 없었는데 이제 거기엔 커다란 글씨가 적힌 거대한 간판이 달려 있었다. 현란한 불빛에 촌스러운 디자인을 한 복고풍 나이트 클럽 간판이었다.
포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지하 계단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스피커는 지나간 유행가에 트로트 박자를 섞은 산만한 음악을 거리로 쏟아내고 있었다. 포그는 지도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곳이었는데 이제 그 자리에는 ‘고고 복고 나이트를 검색해보세요!’ 같은 문구가 어지럽게 적힌 전단지들이 사방에 붙어 있었다. 지하로 계단을 내려가서 그곳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포그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 붙어 있던 빛바랜 포스터와 엘피판 표지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건물 입구 앞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포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을지로에서부터 들고 온 엘피판을 살펴보았다. 엘피판의 종이 판지 모서리가 닳아서 해져 있었다. 오래된 종이의 낡은 촉감을 손끝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보고 엘피판 세 장을 그대로 가지고 거리를 떠났다. 그 엘피판에 어떤 곡이 담겨 있을지 알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내가 겪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영화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분위기를 엮어보았다. 잠실 인근 대학가에는 신청곡을 받는 뮤직바가 있다. ft.MS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