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단편소설 습작
구청에서 새로 발급한 여권을 받아 나서려는데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구청을 나서니 언제 모였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구청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확성기 볼륨을 조정하는 거슬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확성기를 통해 중년 남성의 거센 목소리가 퍼졌다.
임대주택 웬 말이냐
임대주택 결사반대
남자가 확성기로 소리치자 무리가 같은 구호를 복창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무리는 구청 앞 작은 광장에 일렬종대로 서서 구청 건물과 그 앞을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구호를 외칠 때마다 주먹 쥔 팔을 높이 들거나 커다랗고 붉은 글씨가 쓰인 노란 피켓을 위로 한껏 치켜 들었다. 선창을 하던 남자는 붉은 점퍼에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몸통에 사선으로 굵은 노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노란 띠에는 역시 붉은 글씨로 피켓과 비슷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임대주택 취소하라
구청장은 각성하라
무리는 모두 비슷한 차림이었고 중년의 나이대로 보였다. 원색의 겉옷에 챙이 긴 선캡을 쓰고 있었고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그들의 외침은 마스크를 뚫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들은 임대주택 건립을 반대하고 있었다.
M동에 청년을 위한 민간 임대주택이 생길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반대하는 주민 일부는 구청 앞에 모여 시위를 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오는 M동 주민들의 반대 시위 현장을 본 적이 있었다. M동은 바로 옆 동네였음에도 뉴스를 통해 본 시위는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침착하게 혹은 과격하게 표출하기 위해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뉴스에서 거의 매일 다루는 익숙한 소재였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그들이 알아서 조율하고 푸는 수밖에.
막상 눈앞에서 현장을 보니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광장에서 서서 나는 잠시 그 생생함에 압도되어 시위 현장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전에도 그보다 규모가 큰 집회나 시위를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마주쳤던 적은 있지만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깊은 것은 아니었다. M동 주민들의 시위는 더 이상 뉴스 영상 속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외침은 너무도 가까이서 들렸고 그들의 요구도 나와 너무 가까웠다. 이제 그들은 가난한 청년들이 M동에 모이면 동네 질은 물론 집값도 떨어진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 시위는 ‘으레 시위를 다루는 채널’이라 익숙한, 뉴스나 광화문을 통해서 보이고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거리감이 제거된 현장의 생생함은 나를 압도했다. 점점 커지는 소음과 시위대가 뿜어내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에 아연해져서 이내 귀를 틀어막고 구청 앞 광장을 지나쳐야 했다.
지난 해, 지역 내 공립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개최한 토론회에서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은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침밥을 먹으며 신문을 읽다가 그 기사를 봤고 거기에 실린 사진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여서 머리카락이 쏟아져 보이지 않는 얼굴. 꿇은 무릎을 절박하게 붙잡고 있는 두 손. 그녀 주변으로 빙 둘러서서 삿대질을 하고 있는 하반신만 보이는 사람들. 기사는 그녀를 두고 ‘무릎 엄마’라고 명명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그녀의 표정을 그려보자 그만 먹먹해져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구청 앞 광장에서 쏟아지던 소음들이 점차 희미해졌다. 원색적인 색과 감정이 난무하는 곳에서 멀어지자 왜인지 ‘무릎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 없는 청년인 나는, 그들 앞에서 간절하게 무릎을 꿇어야 했을까. 내가 무릎 청년이 되어야 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젊음을 임대해 편히 누울 곳을 갖고 싶은 청년들이 무릎을 꿇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꿇어야 할까.
집으로 돌아와 여권을 복사해 서류 파일에 챙겨 넣었다. 비자를 신청하려면 아직 준비해야할 서류들이 많았다. 노트북을 켜고 습관처럼 유학원 온라인 카페에 접속했다. 유학원에서는 일주일마다 그 해 워킹 홀리데이 선발 인원 중 남은 자리를 공지해주었다. 선발 인원 대비 신청 인원이 매년 몰리고 있어서 경쟁률도 덩달아 오르고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 선발이 되지 않을 경우도 같이 대비해야 했다. 코업 비자는 워홀 비자보다 더 비싼 방법이었지만 어쨌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길이었다. 워킹 홀리데이 남은 자리를 확인하고 후기 게시판으로 향했다. 유학원 카페에 올라온 후기를 읽고 팁을 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후기는 거칠게 나누면 이랬다. ‘탈조선’에 완벽히 성공했거나 ‘탈조선’을 했지만 결국 떠나서도 실패한 이야기.
오늘 새로 올라온 후기가 있었다. ‘여기서도 적응하기 힘드네요.’ 제목은 때문인지 새 글임에도 조회수가 높았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끌리는 법이다. 힘내라는 짧은 댓글을 달고 글을 개인 블로그 비공개 게시판으로 스크랩했다. 후기를 읽고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비밀 게시판에 모아 정리해 놓고 있었다. 이번 글은 ‘이렇게 되지 말자’ 게시판으로 옮겼다.
스크랩을 마치고 카페 창으로 돌아가려는데 블로그 공개 게시판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공개 게시판의 글들은 정보를 제공하는 용도는 아니었고 사사로운 일상이나 영화 리뷰 같은 것을 적는 일기장 수준이었다. 자기 위안을 위해 쓰면서도 누가 훔쳐보라고 굳이 온라인에 ‘공개’로 올리는 일기였다. 당연히 방문자가 많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씩 댓글이 달리곤 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랜선을 타고 와서 전해지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어 퍼펙트 데이’라는 영화를 추천할게요. 지금은 우물에 갇힌 시체 같은 신세라고 느껴지겠지만 분명, 어떻게든 거기서 떠오를 때가 올 거예요.
포털 사이트에 영화를 검색해보았다. 줄거리는 이랬다. ‘보스니아 내전을 겪은 한 마을의 우물이 오염되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호단체요원이 투입된다. 우물에는 거대한 남자의 시체가 빠져 있었다. 구호단체요원들은 우물에서 시체를 꺼내려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이에 협조하지 않고 지원을 요청한 유엔은 황당한 이유로 시체를 꺼낼 수 없다고 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24시간, 구호단체요원들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을까?’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아보니 그 영화가 올라와 있었다. 유학원 상담 예약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댓글이 달린 글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몇 달 전에 써놓은 일기였다.
[호모 사케르의 슬럼프]
이 사회의 최약체가 있다면 그것은 연두부 같은 마음가짐의 소유자일 것이다. 더럽혀지기도 쉽고 한 번 뭉개지면 다시 쓸 수도 없다. 연두부가 아닌 척 포장만 번듯하게 하면 무엇 하나. 어제는 지독한 꿈을 꾸었다. 뭉개진 두부 같은 꿈.
구덩이 속에서 외줄을 타는 신세였다. 외줄 아래는 컴컴하고 아득한 無의 영역이거나 그대로 소멸하는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떨어져 보니 생각과 달랐다. 아래엔 물컹하고 질척한 땅이 있었고 나는 그 진흙 속에 두 발이 박힌 상태로 정신을 차렸다. 외줄타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주변으로 툭툭 빠르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떨어진 이들은 어리둥절 주변을 살피다가 이내 머리 위 외줄을 쳐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발밑은 아득했는데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니 외줄 타는 사람들이 가까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맨발로 외줄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에 보였다. 그 위로는 누군가 튼튼한 다리가 놓인 길을 건너고 있었다. 더 위에는 시멘트로 만든 다리도 있었다. 전깃줄에 위태롭게 앉은 병든 새처럼, 맨발로 외줄 타는 사람들은 얇은 줄 위에서 휘청대다가 새똥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외줄에서 떨어졌지만 죽지는 않았다.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때쯤 정강이까지 왔던 진흙이 어느새 차올라 내 오금을 덮고 허벅다리를 덮고 있었다. 이곳은 밑바닥이 아니라 늪이었다. 새똥들은 붙잡을 것을 찾아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잡을 것이 없었다. 가까이 빠진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조금이라도 상대를 딛고 올라서려다 함께 늪 속으로 사라졌다.
늪 아래는 온통 물이었다.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시커먼 구정물이 가득했고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탁한 빛만이 조금 비칠 뿐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질척한 흙으로 거대한 지붕처럼 덮여있다. 더 아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침착하게 밑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수압이 강해서 버티기 힘들었다. 늪 아래로 갓 떨어진 사람들은 당황하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발버둥 칠 때마다 물방울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물방울을 손으로 게걸스럽게 채내서 제 코에 들이밀고 있었다. 공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발버둥치는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발버둥 치던 사람이 상황을 파악하고 발길을 멈추면 인파는 새로 떨어지는 사람을 찾아 흩어졌다. 늪 아래는 그렇게 계속해서 얇은 목숨을 연명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수면에 가까이 가보니 늪의 진흙은 썩은 흙이기도 했지만 썩어 뭉개진 시체들이 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해 쓴 글이었다.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그 모임의 장면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 결혼을 서두르는 친구와 성과급을 받아 차를 샀다는 친구, 이번에 승진해서 연봉이 올랐다는 친구, 대기업에 막 취업해서 자존감이 치솟은 친구, 그들의 회사 이야기, 주식 이야기, 결혼 이야기. 그 가운데서 나는 공감을 할 수도 맞장구를 칠 수도, 새로운 주제를 꺼낼 수도 없었다. 그들이 속한 성공적 인생 궤도에 나는 속하지 못할 까봐 불안했다.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구호단체요원들은 마을의 식수를 정화하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본인들은 임무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결말을 보니 결코 실패한 임무가 아니었다. 영화가 건네는 위로 덕분에 다시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좋은 영화를 추천해준 이에게 고맙다는 답글을 쓰고 싶었다. 익명의 누군가가 써준 댓글 하나가 이토록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진창 같은 블로그 글을 읽어준 것도 감사한데 좋은 영화도 추천해주셔서 고맙다고, 그렇게 쓰려고 했다.
댓글을 다시 열어 보니 영화 추천 글 아랫줄에 마침표가 하나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줄마다 마침표 하나를 하나씩 찍으면서 아래로 쭉 줄바꿈을 해놓은 것이었다. 댓글을 보자마자 영화 검색을 하느라고 끝까지 못 읽은 건가? 스크롤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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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고, 그렇게 쓰려고 했었다. 그렇게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유학원에 가야할 시간이었다. 댓글을 삭제하고 노트북을 닫고 집을 나섰다.
독립문예지 <영향력> 9호에 실을 예정인 단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