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도, 지금도 살고 있는 페미니스트 힙덕후의 일대기
※ 원래는 타 매체에 실었으나 더 보강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최종본에 추가로 설명하고 싶었던 부분들(=잘린 부분들),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더 넣었습니다.
※ 지극히 매니악하고 길고 주관적이고 사적인 일대기입니다. 힙합 컬처와 페미니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 원 글은 30여 개의 주석이 있었는데 과감하게 날렸고, 참고자료는 맨 밑에 적어두었습니다. 브런치에도 각주 기능과 유튜브 로드 기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힙합을 좋아해?
Don't worry about money 놀자 오빠가 무리할게
넌 그냥 옆에서 편하게 groove 타기만 해 alright
I’m a boy you’re a girl
I’m a boy but you’re a girl
아름다운 여자는 대접받아야 해
지코 – <Boys and girls> (feat. Babylon) 中
걍 가볍게 딸감 물론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처먹어 니 bitch는
걔네 면상 딱 액면가가 울 엄마의 쉰 김치
저스트뮤직 – <Too real> 中 블랙넛 파트 中
“힙합은 여혐 음악 아니야?”
“힙합은 가사들이 싫어서 안 듣게 돼.”
힙합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한 번씩은 꼭 듣게 되는 말이다. 2012년 <쇼미더머니>의 등장 이후로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래퍼> 등 힙합 예능들이 흥하면서 힙합은 '대세'가 되었다. 원래 힙합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쇼미더머니>의 음원들만큼은 알게 되었고, <고등래퍼>가 보여주듯 래퍼는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힙합의 거친 가사에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들 역시 많아졌다. 특히 <쇼미더머니>에 등장하는 래퍼들 대부분은 여성 혐오(이하 ‘여혐’)적 가사로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블랙넛의 경우에는 <쇼미더머니> 4는 물론이고, 위의 <Too real> 가사로 인해 여성 래퍼인 키디비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나는 <쇼미더머니>가 히트를 치기 전인 2000년대 중반부터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한 ‘여자’ 팬인 동시에, 2015년 하반기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기 전인 2014년부터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주변에서 “페미니스트면서 힙합 좋아하면 힘들지 않아?”라는 말하며 해주는 걱정은, 고마울 때도 있었지만 상처가 될 때도 있었다. 이는 걱정이기도 했지만,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그렇게 여성 혐오적인 문화를 좋아할 수 있는가?”라는 핀잔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쇼미더머니> 등 스웩/디스 문화에 치중된 힙합이 한국 힙합의 전부라고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것 역시 힙합을 오랫동안 좋아한 팬으로서 아쉽고 속상한 일이었다. 힙합의 여성 혐오적 면모를 부정할 수는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힙합은 그런 모습만을 가진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힙합이 어떤 존재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무나 마초적이고 단점을 잘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이고 경험이 풍부하며 함께 한 정이 오래되어 도저히 헤어질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오래된 애인과 같은 존재.”
그래서, 혼란을 안 겪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성 힙합 팬인 동시에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완전하지는 않아도 어느 순간 힙합과 화해했다고 답한다. 그래서 이 글은 <쇼미더머니>와 여혐 가사 이상으로 힙합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오래된 팬으로서 소개하는 동시에, ‘페미니스트’이자 ‘힙합 팬’인 내가 어떻게 힙합과 싸우고 멀어지다 결국 화해하게 되었는지를 털어놓는 글이기도 하다.
가리온, 소울컴퍼니, 오버클래스가 없는 10대는 상상할 수 없지
정확히 언제부터 힙합을 좋아하기 시작했더라?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빅뱅과 YG다. 나는 YG 소속 가수들이 유난히 취향에 잘 맞았다. 지금도 거미의 파워풀한 알앤비 보컬을 좋아하고, 당시에는 45RPM이 YG 소속이었다. 그중에서도 당시 빅뱅을 프로듀싱하던 스토니 스컹크를 좋아하게 되면서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스컬과 쿠시가 (좋은 의미던 나쁜 의미던) 유명해졌지만, 스토니 스컹크는 비운의 듀오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그룹이다. 빌보드 레게 부문 차트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당시에 그냥 힙합도 아니고 ‘레게 힙합’을 한국에서 듣던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
힙합을 알려준 또 다른 곳은 네이버 뮤직이었다. 지금도 네이버 뮤직은 주간 추천 음악 등의 포스트를 꾸준히 올리는데, 그때 처음으로 DJ Soulscape과 키비와 더콰이엇을 접했다. 더콰이엇의 <Love Vibration> 싱글 앨범을 듣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게 어느새 거의 10년 전 일이다. 당시는 소위 한국 힙합 2세대(200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의 시기였고, 그 외에도 다양한 뮤지션들의 노래를 들었다. 미국 힙합 씬에서는 당시 여성 래퍼 릴 마마(Lil Mama)가 데뷔 앨범을 냈는데, 그때 <리드머> 강일권 편집장의 이름을 처음 본 기억이 난다.
유독 힙합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는 특유의 리듬과 스토리텔링에 있었다. 당시 많은 레이블들을 제치고 소울컴퍼니를 가장 좋아했던 이유도 한글 가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소위 20대 감성을 가진 노래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잔잔한 비트에 첫사랑의 설렘을 담았던 더콰이엇의 <닿을 수 있다면>이나, 첩보물의 한 장면 같은 <의뢰인> 같은 곡들은 밤에 듣는 것을 좋아했다. <닿을 수 있다면>은 첫사랑의 풋풋함을 담고 있었고, <의뢰인>은 밤에 들을 때마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의도하지는 않았을지언정 현재 미국 힙합 씬의 Drake와 같이 맨 박스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지금 들으면 소울컴퍼니 소속 가수들도 여성 혐오적 가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몇 없다. 그랬음에도 빅딜 레코즈 등에 비해 '쎄지 않다'는 이유로 소울컴퍼니가 '힙합스럽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던 건 참 아이러니였지.
힙합은 친언니와의 몇 안 되는 접점이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였음에도 사이가 좋아 “언니 영향을 받아서 힙합을 좋아하게 된 거야?”라 물어본 사람도 꽤 되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미국에 살아 자주 볼 수 없던 언니와 우연히 잘 맞던 힙합 취향은 곧 서로의 연결점이 되었다. 집에는 언니가 한국에 남겨 놓고 간 소위 1세대 한국 힙합 앨범들이 남아 있었고, 언니는 자신이 아끼던 앨범들을 기꺼이 주었다. 언니가 윤미래(T)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사인이 있는 T 솔로 앨범을 비롯해 타샤니, 허니 패밀리, 듀스, CB MASS, 가리온 1집 등등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의 한국 힙합 1세대 웬만한 명반들이 다 내 소유가 되었다. 채 천 장도 팔리지 않았다던 마이노스 1집, 가리온 2집, 소울컴퍼니의 마지막 앨범, 키비, 버벌진트 등 한국 힙합 2세대의 앨범들을 모으는 건 나의 일이었다. 그렇게 집에 모아둔 앨범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면서 복잡 미묘하다.
그렇게 힙합은 청소년기에 나의 중요한 정체성 및 취향 중 하나가 되었다. 붓다 베이비, 무브먼트 등의 오버그라운드 레이블부터 시작해서 주로 듣던 소울컴퍼니, 소울커넥션, 오버클래스, 빅딜 등을 다 섭렵했고 미국 힙합도 장르 구분 없이 많이 들었다. (아참, 사우스는 싫어했다.) 적어도 힙합을 들을 때만큼은 행복했거든. 어두운 하굣길에 키비의 <백설공주>나 <Goodbye Boy>를 들을 때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들었다.
중학생 때 그렇게 힙합에 미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 살았기에 라이브를 간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지만, 콘서트를 갈 용기는 2011년 소울컴퍼니의 해체 콘서트 소식을 들었을 때에야 생겼다. 처음 소울컴퍼니 해체 소식을 듣고는 펑펑 울었다. 지금도 내 힙합 팬질 역사에서 소울컴퍼니를 대체할 크루/레이블은 없다. 현재의 한국 힙합은 당시 감성과 많이 달라졌고, 소울컴퍼니만큼 수많은 아티스트를 아우를 레이블이 한국 힙합 씬에서 다시 나올지는 여전히 의문이라서. 그래서 야자를 째고 취소 표로 들어간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더콰이엇을 1미터 거리에서 봤을 때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매드클라운과 화나가 같이 <Flow Down>을 부를 때 술렁이던 사람들의 열기. 마지막으로 <진흙 속에서 핀 꽃>과 <Still A Team>을 부를 때의 여운. 원래는 유튜브에 소울컴퍼니 해체 콘서트 영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 날은 무진장 씁쓸했지.
지금은 믿기 힘들지만, 당시에 힙합 콘서트를 가면 남녀 비율이 8-9:1 정도 됐다. 그래서 참 어울리지 않는 음악 취향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부모님은 학창 시절 때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숫자대로 앨범을 사주시곤 했는데, 열심히 공부하던 애가 시험 끝나고 Chris Brown, Akon, T.I., R.Kelly, J.Cole와 같은 가수들의 앨범을 사는 게 얼마나 웃겼을까. 그래서 그때는 “클래식 듣게 생긴 애가 힙합을 듣네?”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베토벤과 드뷔시는 좋아했지만, “범생이는 힙합 들으면 안 돼?”와 “언더 힙합이면 다 어두컴컴하고 거친 줄 아나”라는 생각이 들어 싫어했다. 확실히 힙합을 좋아하는 것은 ‘여자 범생이’에게 유리한 일은 아니었다. 또래 집단에서 공감대를 얻기 힘든 음악 취향이었으며, “그거 멜론에 있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오프라인에서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시 가장 큰 한국 힙합 사이트 힙합 플레이야에서 새로 나온 믹스테이프들을 온종일 듣고는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힙합이 현재처럼 대중화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쇼미더머니, 상업화, 그리고 소외
지금 생각해도 <쇼미더머니> 1이 등장한 시기는 정말 절묘했다. 그때는 한국 힙합 2세대가 저물어갈 때였다. 2011년 소울컴퍼니의 공식적 해체에 이어 오버클래스의 활동 역시 뜸해지면서, 한국 힙합 씬에서 잘 나간다고 말할 수 있는 힙합 레이블(기획사)은 더콰이엇과 도끼가 세운 ‘일리네어 레코즈’, 그리고 팔로알토가 세운 ‘하이라이트 레코즈’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리네어는 2011년, 하이라이트는 2010년에 세워진 신생 레이블이었기 때문에 역사가 오래된 레이블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도 전무후무한 한국 힙합 2세대의 유일한 지방 레이블이었던 ‘지기펠라즈’ 역시 바스코의 탈퇴 이후 활동이 뜸해졌다. 그래서 당시 힙합 플레이야 게시판을 들어가면 한국 힙합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식의 글이 많았다. 특히 일리네어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일리네어 레코즈는 지금까지도 머니 스웩이 가득한 트랩 힙합을 위주로 음반을 내는 레이블이라서 당시 힙합 팬들의 거부감이 강했다. 일리네어 레코즈의 스웩은 당시만 해도 신선했지만, 트렌디한 트랩 음악만이 계속 반복되면서 스토리텔링이 담긴 음악을 하는 힙합 뮤지션들은 점점 줄어들었기에 팬들이 아쉬워했다. 도끼와 더콰이엇의 스웩을 중화시켜주었던 빈지노가 그나마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고 있었다. 리스너들은 힙합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국 힙합이 이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모두가 한국 힙합의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하던 2012년, CJ E&M은 엠넷을 통해 <쇼미더머니> 1을 기획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 힙합에 대한 기대가 가장 낮은 시기에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최대로 끌어냈다.
그러나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나온다고 할 때 힙합 팬들의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쇼미더머니”라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소울컴퍼니의 주축 멤버였던 화나가 심사위원도 아니고 참가자 제의를 CJ에서 받았다는 소식에 분노했던 팬들이 대다수였다. 심사위원 중 한국 힙합 1~2세대의 주역들을 TV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반가웠으나 제작진들이 힙합에 대한 지식 및 이해도가 높지 않다는 게 팬들의 주된 의견이었다. 힙합 씬 안의 뮤지션들도 이에 대부분 동의했고, 언더/오버 구분 없이 사이먼 도미닉, 일리네어 레코즈 등이 <쇼미더머니>에 대해 보이콧 선언을 했다. 나중에 다들 번복했다는 게 함정이다
그나마 <쇼미더머니> 1은 취지에 맞게 진돗개, 로꼬와 같은 신진 래퍼들을 발굴해냈다. 이후 <쇼미더머니>는 시즌을 거듭해갈수록 인기가 치솟았고,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게 한국 힙합 2세대 언더래퍼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프로그램이 되어갔다. 매드클라운, 스윙스, 타이미, 바스코, 블랙넛 등등 예전에는 언더 힙합 팬들만 알던 이름들이 <쇼미더머니>를 통해 점점 유명해졌다. <쇼미더머니>가 단순히 힙합의 대중화를 끌어낸 프로그램이었다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씨잼처럼 <쇼미더머니>에 두 번 나오고, 망설임 없이 “돈 더 벌고 싶어서 나왔어요”라 말하는 래퍼들은 예사였다. <쇼미더머니>의 자극적인 편집은 유독 힙합의 디스/스웩 문화를 강조했고, 이는 마침 강세를 보이던 일리네어 레코즈/하이라이트 레코즈/AOMG와도 방향성이 맞았다. 세 레이블은 원래 ‘거대 자본 없이도 잘 산다’는 방향성의 레이블들이었는데, <쇼미더머니>에 시즌 4 이후에 주요 레이블로 참가하는 현상은 괴이했다. 그 후 2016년, 하이라이트 레코즈와 AOMG는 CJ에 인수 또는 CJ와 전략적 협력 관계가 되었다.
한국 힙합 3세대는 1, 2세대에 비하면 엄청난 대중화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쇼미더머니> 혹은 힙합 예능 프로그램의 출현만이 래퍼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되어버렸다. 트렌디한 트랩이 아닌 1~2세대의 향수를 간직한 래퍼들은 MC 메타처럼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만한 위상이 아니라면 ‘촌스러운’ 래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쇼미더머니> 세대에 들어 TV에 크게 출연하지 않고 성공한 래퍼는 빈지노나 키스 에이프 정도다. 빈지노는 소속사가 일리네어였지만 답지 않게 서사적인 가사를 쓰는 래퍼였고, 특유의 ‘엄친아’ 이미지와 패션 아이콘 이미지가 빛을 발했다. 키스 에이프는 역시 이례적으로 <잊지 마(It g Ma)> 뮤비가 유튜브에서 5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미국 힙합 씬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그 외에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지도를 올리려는 래퍼들이 씬의 대다수였다. <쇼미더머니>는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애써 냉소하는 리스너들도 있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쇼미더머니>는 분명히 한국 힙합 씬을 획일화하고 왜곡시켰다.
그래서 <쇼미더머니>의 부흥과 함께 나는 오히려 한국 힙합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힙합은 나에게 중요했다. 고3 때 내가 공부할 때 자주 듣던 곡은 프라이머리와 이센스의 <독>이었고, 가장 즐겨 듣던 믹스테잎은 동갑내기 올티의 <Rappin’ OLLday>였다. <21036>은 고등학생이라면 많이 공감할만한 노래였고, <봐, 다가와>는 첫사랑의 추억이 남아있는 노래다. 그러나 그런 올티를 <쇼미더머니>에서 봤을 때의 무력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물론 지금은 모종의 사건으로 탈덕했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대중화되면서 빼앗겼어!’ 정도의 소유욕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힙합에서 좋아하던 요소, 스토리텔링과 리리시즘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대부분은 일리네어 혹은 AOMG 스타일의 머니 스웩을 강조하거나, 스토리텔링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디션에서 잘 팔릴만한 가족 서사였다. 다들 아버지에게는 ‘정답을 알려 달라’고 했고 엄마에게는 ‘호강시켜줄게’라고 했다. 2세대까지는 한국힙합의 여성 혐오가 자기연민에 가까웠다면, 대중에게 몇십 배로 영향력이 강해진 한국 힙합 3세대는 더 직접적인 여성 혐오가 스피커로 울려 퍼졌다. 그레이(Gray)의 트렌디한 비트들은 좋아해서 <쇼미더머니> 음원들을 들어도, 가사는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에 와서 처음 페미니즘을 배웠을 때,
힙합을 좋아하면서도 느꼈던 위화감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영원히 고통받는 '여성 페미니스트 힙합팬', 나야나
지금 돌이켜보면, 여성인 나는 힙합을 좋아하면서 ‘적응’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처음 힙합을 들을 때는 ‘bitch’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지만, 힙합 음악을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덤덤해졌다. 소울컴퍼니 멤버 중 라임 어택(Rhyme Attack)의 가사에는 유독 ‘소녀 팬’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 ‘예쁜 소녀 팬’은 적어도 나는 아닐 것이고 왜 그리 소녀 팬에 집착할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무심히 넘기고는 했다. 미국 힙합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킴 카다시안의 남편 혹은 패션 아이콘으로 더 유명하지만, 내가 중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미국 래퍼는 카니예 웨스트였다. 3집 <Graduation>과 4집 <808s & Heartbreak> 앨범을 집에 가지고 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카니예 웨스트의 유일무이한 내한 공연을 다녀왔다. 지금도 속초 바닷가에서 <Stronger>, <Love Lockdown>, <Heartless>의 칸예 라이브를 다녀온 기억은 생생하다. 상하의 모두 새빨간 정장을 입고 “Crazy Koreans” 너무 좋다고 말하던 칸예가 엊그제 같은데. 그런데도 머리가 없는 여성 상체 누드를 그린 <Way too cold>와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MBDTF)>의 앨범 재킷은 너무나 찜찜했다(굳이 이미지 첨부는 하지 않겠다).
단순히 음악을 들을 때뿐만 아니라 씬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팬이 잘생긴 남자 래퍼를 좋아하는 건 ‘얼빠’ 짓이었지만, 남자 팬이 여성 래퍼의 ‘얼평(얼굴 평가)’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성 래퍼들의 섹스어필 역시 그랬다. 그래서 여성 팬이라면 힙합 플레이야나 힙합엘이와 같은 사이트에서는 성별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깔끔했다. 일찍이 힙합 ‘여성’ 팬으로서 받는 차별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거기에 저항할 생각은 딱히 못 했다. 힙합 안에서 그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대학에 들어와 페미니즘 교양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내가 겪었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빈지노의 <Nike shoes> 가사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시점, 자이언티가 부른 <씨스루>의 가사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시점이 바로 이때다. 한 마디로 ‘넌 다른 여자들과 달라’라는 서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다른 여자들과 다른데? 내가 명품을 안 사는 ‘개념녀’라서? 내가 화장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여자라서? 내가 멍청하지 않은 여자라서?
산책하기 딱인 온도와
그녀의 발엔 나이키 운동화
I like ur style baby
그녀의 뒤로 늘어선 그림자 속에 묻어가
왜 여자들은 그리 명품에 환장해?
캠퍼스 안의 명품 백
is that chanel?, is that givenchy?
한쪽 어깨로 드는 이삿짐
허나 이 아이는 예외인 듯 해
호리호리한 등짝에 있는 백
회색 후디 위 가방은 네이비 색
찰랑이는 머릿결은 wavin flag
빈지노 – <Nike shoes> 中
그때 널 봤어
빨간 스커트 빨간 립스틱 that's a point
넌 저기 서서 떠들고 있는 멍청한 여자들과는 달라
I see through
프라이머리 – <씨스루(feat Zion.T, 개코 of 다이나믹 듀오)> 中
그 모든 위화감이 ‘여성 혐오’라는 언어로 설명이 되기 시작하던 시점, 2015년에 <언프리티 랩스타> 1이 엠넷에서 방영되었다. <쇼미더머니>와 비슷한 포맷의 방송이었지만 여성 래퍼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몇몇 힙합 팬들은 ‘여성 래퍼들에게만 특혜 아니냐’고 반응했지만, <언프리티 랩스타>는 오히려 <쇼미더머니>의 상업성에 여성 혐오가 더해진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시즌 1~3을 통틀어 대부분의 심사위원 혹은 프로듀서들은 남성이었다. 힙합 뮤지션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점은 <언프리티 랩스타>의 ‘여적여’ 프레임이었다. 시즌 1에서는 제시의 “여자들은 잘해줘도 소용없어요.”, 혹은 치타의 “피곤하겠죠, 여자들만 있으니까” 등의 발언이 강조되어 방송에 나갔다. <쇼미더머니>의 갈등이 ‘힙합은 원래 그래’ 식의 스웩/디스 문화로 표현되었다면, <언프리티 랩스타>에서의 갈등은 ‘여자들끼리만 있어서’로 간주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절대 낯설지 않다. <도전 슈퍼 모델 코리아> 시절부터 이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여적여’, 캣 파이팅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3에서 래퍼 산이가 프리스타일 주제로 섹시 컨셉의 비트 <Sticky>를 제시할 때는 또 어땠나. 육지담은 “섹시는 여자 래퍼의 특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남성 래퍼인 산이가 이 주제를 제시하면서 남성-여성 래퍼 사이의 상하 관계를 보여줬다. <Sticky> 에피소드(시즌 3, 3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당시 미성년자 전소연에 대한 묘사였다. 당시 19살 전소연은 미션 전에는 “끈적한 게 뭐예요?”라 말하다가 정작 미션에서는 섹시 컨셉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전소연은 앞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뒤에서는 섹시를 소화해내는 ‘소녀’로서 연기한 것이다. 남성 래퍼라면 이런 식의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한편, 나의 헤비한 힙합 취향은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걸림돌’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올드 스쿨 힙합 좋아하는 애인 로망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나의 힙합 취향은 연애사에 있어서 지금까지도 징크스다. 마초적인 남자는 지인으로도 두는 걸 싫어하는 지라,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범생이 끼가 있고 마초성이 덜한 사람들이었다. 주로 내 글이나 외모에 반했던 사람들은, 내가 거의 10년 이상 힙합을 좋아한 마니아라는 사실에는 이해는커녕 존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런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다. “안 그래도 마초성이 별로 없는 남자들인데, 안 그래 보이는 내가 마초적인 음악을 좋아하고 잘 알아서 거부감/위협감을 느끼는 건가?” 정도로 추측만 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에 소울메이트라는 것이 있다면, 나한테는 ‘내가 힙합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라는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10년 지기 베프는 “유니콘 찾는 게 더 빠를 거다”라 잔소리를 했다. 페미니즘 공부한다면서 힙합이 여성 혐오적이라고 나한테 맨스 플레인 하던 전 썸남아, 내가 이 글 쓰는데 매우 좋은 동기 부여가 되어줘서 고마워! ^^
‘힙합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즘 안에서도 별로 존재감이 없다. 힙합 문화가 태초부터 남초적인 문화였고 대중의 인식 속에 ‘한국힙합=<쇼미더머니>’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페미니즘계 안에서 나오는 비판들도 아쉬울 때가 많았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힙합에 대해서 잘 알 필요는 없지만, “한국 힙합은 물론이고 외국 힙합도 그냥 여혐 음악이던데?” “기왕 문화 소비할 거면 잘 생긴 애들이 나만 바라봐준다는 문화 소비하지, 왜 한남식 한국 힙합 소비해~~” 식의 글을 인터넷에서 보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페이스북에서 떠돌던 어느 페미니스트 힙스터 테스트 항목 중 '슬릭을 제외한 한국 래퍼는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문항을 본 적도 있다. 그와 동시에 ‘힙합 좋아하는 페미니스트가 가능한가?’라는 질문도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힙합을 계속 좋아해도 될까?
내 타협점은 어디일까
한국 힙합 3세대를 거치면서 대중화를 통해 극대화된 상업화, 그리고 여성 혐오에 대한 자각은 계속 나를 짓눌러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떠나는 게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찾은 해법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해법은 문화를 완전히 떠나기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지지할 수 있는 뮤지션들을 지지하고 내가 바라는 가치가 힙합 문화에 조금이라도 더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CJ, <쇼미더머니>로 대표되는 대중화, 상업화된 힙합이 유행할 때도 언더 힙합이라는 가치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쇼미더머니> 출연자 중에서는 피타입과 서출구가 대표적이다. 피타입은 신인 래퍼를 발굴하는 ‘do the right rap’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서출구는 길거리 프리스타일 문화를 지켰던 ADV 크루의 핵심 멤버였다. 소울컴퍼니 시절 “공통의 관심이 결여된 성별의 끈을 연결해. 최신 유행을 선도해 전 연령대를 점령해. 편견의 벽도 깨는”(<그날이 오면> 가사) 힙합을 염원하던 화나는, 쇼미더머니 체제에 들어가지 않고 전 재산을 털어 어글리 정션(Ugly Junction)이라는 독립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어글리 정션은 쇼미더머니 체제에 들어가지 않은 신인 래퍼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17~2018년도부터 <쇼미더머니> 체제 안에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쇼미더머니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류였던 미국 유래의 트랩/스웩/디스 문화와 한국의 가족주의가 결합한 음악이 아니라, 리리시즘(lyricism)을 살리는 음악이 <쇼미더머니> 안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쇼미더머니 시즌 6의 우원재였다. “알약 세 봉지가 내 삶을 설명한다”던 우원재는 ‘랩이 아니라 음악’을 한다고 했다. 비록 쇼미더머니 시즌 6의 우승자는 행주였지만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소속사조차 없었던 우원재였다(비슷한 케이스인 시즌 1의 로꼬나 시즌 3의 아이언도 쇼미더머니 나올 당시에 소속사가 있었다). 쇼미더머니의 끝에 발표한 음원 ‘시차’는 리리시즘에 더해 그동안 다른 한국 힙합 3세대 래퍼들이 하지 못한 일을 했다. 다른 래퍼들이 돈을 벌고 ‘혼자 화나’(<혼자 화난 래퍼들>) 있고 단편적으로 자신의 출신지를 가사에 붙일 때, 우원재는 어설프게 갱스터 랩을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의 대학 생활을 말한다.
밤새 모니터에 튀긴 침이
마르기도 전에 강의실로
아 참, 교수님이 문신 땜에 긴 팔 입고 오래
난 시작도 전에 눈을 감았지
날 한심하게 볼 게 뻔하니 이게 더 편해
4호선 문이 열릴 때,
취해 있는 사람들과 날 똑같이 보지마
그들이 휘청거릴 때마다
풍기는 술 냄새마저 부러웠지만
난 적응해야 했거든 이 시차,
우원재 – <시차(Feat. 로꼬 & Gray)> 中
그리고 우원재가 시작한 리리시즘의 흐름을 <고등래퍼> 시즌 2의 신예 김하온과 이병재(빈첸)가 잇는다. 김하온은 “가사에서 증오는 빼는 편이야”, “그대들은 벌스를 쓰기 위해 화나 있지” 하며 <어린 왕자>를 불렀고, <바코드>에서 이병재는 “엄마는 바코드 찍을 때 무슨 기분인지 묻고 싶은데 알고 나면 내가 다칠까”라 말한다. 가족을 호강시켜주겠다고 가사 쓴 래퍼는 많았지만 정작 가족이 무얼 생각할까 궁금해하고 물어본 래퍼는 없었다. 한국 힙합 3세대의 획일화, 상업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힙합의 여성 혐오에 대해서는 오히려 미국 힙합에서 먼저 위로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카니예 웨스트와 더불어 좋아했던 래퍼가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였다. 그는 2006년 데뷔와 동시에 그래미 어워즈의 많은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고, 같은 해에 베스트 앨범상을 받았다. 루페는 지금까지도 미국 힙합 씬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하나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컨셔스 랩(Conscious Rap)의 대가, ‘힙합계의 철학가’로 불리는 최고의 리리시스트 중 하나다. 그런 루페가 2012년, <Bitch Bad>에서 “bitch bad, woman good, lady better”를 외쳤다. 그는 이 곡에서 미국 힙합 문화에서 여성이 어떻게 ‘bitch’라는 단어를 성적 칭찬으로 인식하는지, 그리고 이런 인식이 남성들의 인식과는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논했다.
<Bitch Bad>의 가사 한글 해석(출처: 힙합엘이)
처음 <Bitch Bad> 뮤비가 유튜브에 올라간 시점이 5년 전인데, “우리 학교 사회학과 교수님이 이 노래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오라고 했어”라 쓴 댓글이 있다. 노래 가사를 보면 맨스 플레인의 느낌이 전혀 없지는 않고, 루페 본인도 여성 혐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래퍼는 아니다. 그러나 루페는 이 노래, 이 뮤비를 무려 2012년에 냈다. 아직 페미니즘을 접하지 않은 고등학생 때, 이 노래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 힙합 안에서 ‘bitch’에 익숙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한 래퍼는 루페 밖에 없었거든. 지금도 루페는 “I prefer girls to reign all over the world And not rain like, rain man or rain like rain dance”(5집 <Tetsuo & Youth> 수록곡 中 <Mural>)라 읊조리는 래퍼다.
2016년도에는 미국 West side의 대표적인 래퍼 더 게임(The Game)과 스눕독(Snopp Dogg)이 LA의 오래된 갱단, 블러즈(Bloods)와 크립스(Crips)의 평화협정을 주도했다. 더 게임은 그 후 17일에 LA 지역 센터에서 열린 ‘Time To Unite: United Hoods + Gangs Nation’이라는 회합에 LA지역 갱단들을 초청했다. 더 게임은 LA의 크고 작은 모든 갱단을 초청했으며, 이날 토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힘을 합쳐 젊은 세대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서로에게 더 나은 본보기가 되어 이웃들을 위해 더 안전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평화협정에는 ‘Bitch’ 단어 사용 금지를 비롯한 여성 학대 금지 조항이 포함되었다. 딸을 낳은 후 달라졌다고는 해도 스눕 독 역시 과거의 여성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한 뮤지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2000년대 중반의 루페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위로했다면, 현재 미국 힙합 씬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래퍼는 로직(Logic)이다. 흑인-백인 혼혈(biracial) 래퍼 로직(Logic)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나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래퍼다. <Black Spiderman>에서 Black Jesus와 Black Spiderman을 찾던 로직은, 3집 <Everybody> 타이틀곡을 <1-800-273-8255>로 정했다. 곡 제목 자체가 미국의 자살 방지 센터 전화번호였으며, 이 곡이 발표된 후 자살 방지 센터에 오는 전화는 몇십 배로 늘었다. 더 나아가 뮤직비디오에서는 흑인-백인 미성년자 게이 커플의 일화를 담았다. 미성년자 흑인 게이 소년이 또래 백인과 사랑에 빠지고, 동성애자로서 억압받는 모습을 솔직하게 담는 뮤비가 힙합 컬처 안에서 나온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3집 <Everybody>로 인해 로직은 ‘충분히 힙합스럽지 않다’는 말을 듣고는 했으니까. 그럼에도 로직은 여전히 무지개무늬의 Pride 티셔츠를 입은 채 공연을 한다. 그는 미국 힙합 씬에서 공개적으로 LGBTQIA+(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몇 안 되는 남성 래퍼 중 하나이다.
<1-800-273-8255> 2017 VMA Awards Live(자막 포함)
그 후, 2017년 VMA Awards에서 로직은 <1-800-273-8255> 특별 무대를 기획했다. Everybody, 1-800-273-8255, You are not alone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스스로 입고, 그 무대에 함께 선 사람들이 있다. 로직과 동일한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한번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었다. 이 무대에서 라이브를 마친 로직은 마지막으로 말한다.
“I just wanna take a moment right now and thank you for giving me a platform to talk about something that mainstream media doesn’t want to talk about: mental health, anxiety, suicide, depression, and so much more that I talk about on this album. From racism, discrimination, sexism, domestic violent, sexual assault, and so much more; I don’t give a damn if you are black, white, or any color in between. I don’t care if you’re Christian, you’re Muslim, you’re gay, you’re straight. I am here to fight for your equality. Because I believe that we are all born equal, but we are not treated equally and that is why we must fight. We must fight for the equality of every man, woman, and child regardless of race, religion, color, creed, and sexual orientation. So I say here and now if you believe in this message of, my message; peace, love, positivity, and equality for all, then I demand that you rise to your feet and applaud not only for yourselves but for the foundation that we are laying for our children.”
“저는 여기서 잠깐 시간을 갖고, 저에게 말할 수 있는 매체를 준 것에 감사하고자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류 미디어가 말하기를 피하는 것들입니다: 정신 건강, 불안, 자살, 우울증, 그 외에 제가 이 앨범에서 말하고자 한 다른 모든 것들입니다. 인종차별, (모든 종류의) 차별, 성차별, 가정폭력, 성폭력부터 다른 모든 것들 말입니다. 저는 당신이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 외에 어떤 인종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의 평등을 위해 싸우러 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럼에도 우리는 평등하게 대우받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인종, 종교, 피부색, 종족,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모든 남성, 여성, 그리고 아동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려고 합니다. 평화, 사랑, 긍정성, 모두를 위한 평등 등 저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세요. 이 갈채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 준비해야 할 기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치고 로직은 자신의 무대와 함께한 사람들과 얼싸안는다. 처음 이 영상을 보고, 그 자리서 주저앉아 1시간을 주구장창 울었다. 지금도 볼 때마다 운다. 힙합이 이렇게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음악이었지. 힙합은 원래 날 위로해주는 음악이었지. 그런데 그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 감동을 다시 깨워준 로직이 래퍼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 지독한 불행을 뚫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에너지와 선한 영향력으로 무대를 누비는 로직, 당신을 응원하고 믿고 지지해. #RattPack
I feel the Aryan in my blood, it's scarier than a Blood
Been looking for holy water, now I’m praying for a flood
It feel like time passing me by slower than a slug
While this feeling inside of my body seep in like a drug
Will you hug me, rub me on the back like a child?
Tell me you love me, need me
Promise me you’ll never leave me
Logic – <AfricAryan(ft. Neil DeGrasse Tyson)> 中
한편, 비욘세와 <히든 피겨스> 출연 배우로 유명한 자넬 모네는 각각 <Lemonade>와 <The Electric Lady> 앨범으로 블랙 페미니즘(Black Feminism)을 표현했다. 특히 사이버 페미니즘에 큰 영향을 받았던 자넬 모네는 최근에 앨범을 내면서 범성애자(Pansexual)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다음 인터뷰에서 흑인 여성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난 성소수자에 흑인 여성이야. 그래서 사촌이나 숙모가 '모든 동성애자들은 지옥에 갈 거야.'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랐어. '나 지옥 가는 거야? 그건 내가 이번 앨범에서 다뤄야 했던 거야. 난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 그들도 날 사랑하고 아낀다는 걸 알거든. 난 스스로 두려움보다 자유를 선택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어. 그리고 자유가 항상 자유로운 것은 아니야. 희생이 따르는 법이거든. 사람을 잃기도 하고 말이야. 난 정직하고, 연약하고, 상처받아야 했던 나 같은 소녀들에게 확신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
한국 힙합에서도 페미니즘을 발견한 것은 2015년 이후다. 물론 2013년에 여성 팬을 대상화하지 않고 “너가 내 랩에 관심 많다는 게 반가워. 이럴 땐 너무 기분 좋아 내가 한잔 살게. 다음에 만나면 또 인사하자.”던 팔로알토의 <또 봐(Au Revoir)>도 반가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제리케이가 설립한 데이즈얼라이브가 페미니즘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레이블이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2013년에는 자이언티와 함께 “직접 벌어서 써 니 돈과 자존심 난 원해 두 발로 설 줄 아는 여자의 각선미”로 맨스 플레인 했던 제리케이가, 2016년도에는 스스로에 대한 미러링이라며 <You’re not a Man>과 콜센터 여성의 일화를 담은 <콜센터>를 발매하다니. <콜센터> 발매 후, 이 노래를 들은 콜센터 여성 직원들이 제리케이의 콘서트에 단체로 와서 관람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괜히 울컥했다.
넌 자존심이 센 녀석
그 자존심은 이 말을 첨 들었을 때 생겼어
남자는 평생 딱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 말
넌 그걸 가슴 깊숙이 새겼어
아빠였었지, 아빠는 울지 않았어
니가 울 땐 절대 그 이유를 묻지 않았어
그저 눈물을 뚝하고 그치는 즉시
니 엉덩이를 툭 치고 상황은 끝났어
근데 크고 보니 삶은 게임이 아냐
리셋도 안 되고 특히 쉽게 끝이 안 나
말했지 넌 자존심이 세다고
그래서 그 고통을 입 밖에 꺼내 갖고 말하거나
슬픈 표정조차 지을 수 없네
남자인 척 하지만 절대 어른이 못 돼 man
제리케이 – <You’re not a Man(feat. Rico)> 中
넌 니가 열심히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었어
근데, 쉽지 않더라고
하루 종일 웃어야 하는 건
눈물이 많았던 너
별로 안 울게 됐고
표정이 많았던 너
그걸 다 까먹게 됐어
우리 기분은 아무도 묻질 않아
무시 당하는 건 그저 내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일까
전화해 전화해 난 웃을 수 있어
전화해 전화해 난 웃을 수 있어
제리케이 - <콜센터(feat.우효)> 中
제리케이와 같은 데이즈얼라이브 소속 뮤지션인 슬릭(Sleeq)은 최삼과 더불어 한국 힙합 씬에서 ‘여성 래퍼’ 프레임, 윤미래 신화(MC 워너비님의 <여성 래퍼의 대명사를 지워라> 참고)에 가장 많이 저항한 래퍼다. 슬릭은 <언프리티 랩스타> 출연을 전격 거부했고, 현재 페미니즘 관련 행사에서 가장 섭외를 많이 받는 가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슬릭이 <One and Only>와 <Ma girls> 등의 곡들을 통해 처음부터 약자 혐오를 배제하고 페미니즘적 스탠스를 취한 래퍼라면, 앞서 언급한 키디비는 ‘여성 래퍼’ 프레임에 갇혀 있다가 벗어난 케이스다. 2013년 졸리브이는 디스곡 <bad bitchs>에서 같은 여성 래퍼 타이미와 키디비가 뚜렷한 작업물 없이 성적 어필로만 힙합 씬에 남으려고 하는 점을 비판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키디비는 ‘섹시한 여성 래퍼’ 프레임의 문제점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언프리티 랩스타> 2가 끝난 후, 2016년에 키디비는 싱글 <Nobody’s Perfect>을 발매한다.
어린 소녀들이 떼로
짧은 치마를 입었지 경쟁 속
적은 투표율을 받은 그녀에겐
밋밋한 몸, 못난 얼굴이 error
메쓰거운 속을 달래며 돌린 채널
요즘 핫하다는 노래 가사에선
아름다운 여잔 받아야 한대 대접
아름다운 여신한텐 호구가 되도
괜찮대 듣는 나의 모습은
계속 작아지는 걸까 왜
키디비 – <Nobody’s Perfect> 中
자신을 대상으로 성희롱적 가사를 쓴 블랙넛을 고소한 키디비는 힙합 팬들에게 “디스에 있어서 프로답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섹시한 여성 래퍼의 코르셋에서 벗어나, 가사로 지코 <Boys and Girls>의 여성 혐오를 지적할 만큼 성장한 여성 래퍼가 한국 힙합 씬에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었다. 당신 역시 나와 같은 성장을 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 힙합 씬에 또 있구나.
힙합이 여성 혐오적이라는 지적에 ‘힙합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힙합 팬은 많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리드머> 강일권 편집장의 주장대로 힙합은 아버지가 부재하고 어머니가 가장인 흑인 빈민층 남성들의 문화로 시작했다. 시초가 그렇기에 힙합은 마초적인 문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힙합의 과거 혹은 현재에 여성 혐오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미국, 한국을 불문하고 언제나 존재했다. 고로 ‘힙합은 원래 그래’라는 말은 그 역사를 부정하고 성찰하지 않는 행동에 불과하다. 그래서 페미니스트 힙합 팬으로서 나의 타협점은 그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였다. 세계 여성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역사를 담은 체코 다큐 영화 <Girl Power>가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제일 먼저 예약했다. 제리케이가 <감정노동> 앨범을 냈을 때 사고, 화나의 “어글리 정션” 콘서트를 하는 날이면 ‘그래도 덜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겠구나.’ 하면서 티켓을 예매했다(실제로 화나의 어글리 정션은 여성 운영진이 많은 곳이다). 슬릭이 여성의 날 행사에 왔을 때 나는 가사를 다 따라 부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히든 피겨스>에서 흑인 여성 최초의 NASA 엔지니어를 연기하던 자넬 모네는 옥타비아 버틀러(흑인 여성 SF 작가)의 영향으로 사이버 페미니즘 컨셉 앨범을 냈어!”라고 주변에 말할 때는 뿌듯했다.
더불어 “힙합 좋아하는 페미니스트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스스로 하지 않기로 했다. 가능하고 말고를 떠나서, ‘힙합 좋아하는 여성 페미니스트’는 이미 나 자신으로 실존하니까. 실존하는 사람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설사 내가 언젠가 힙합을 싫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힙합을 사랑한 날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힙합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내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려고 한다. 이는 곧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니까.
나의 취향과 가치가 부딪힐 때
지금까지 겪어온 내가 겪어온 내적 갈등들은 단순히 힙합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문화가 거대한 여성 혐오가 자리한 마초적 문화라는 것을 깨달을 때, 페미니스트가 겪는 갈등은 너무나 흔하다. 프로 게임 경기를 즐기는 나의 베프 역시 나와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 한 학기를 휴학하고 알바한 돈으로 프로 게임 경기를 보러 다니던 나의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여성 혐오 발언을 하거나 오버 워치를 하면서 여성 게이머로서 불이익을 당할 때는 힘들어했다. 친구가 게임계에서도 희망을 발견했을 때는 2016년에 전국디바협회(현 페이머즈)가 생기고, 오버 워치 측에서 이들을 지지한다고 언급했을 때였다.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여러 번 방영된 다큐멘터리, <방해 말고 꺼져!(GTFO: Get The Fuck Out)>는 게임 내 성차별에 대해서 면밀히 다룬다. 게임 마니아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인디게임 <저니(Journey)>의 캐릭터들이 성 중립적으로 묘사된 것은 여성 게임 개발자의 의식 때문이었고, 게임계의 대표 섹스 심벌인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역시 리부팅되면서 더 주체적이고 서사 있는 캐릭터로 거듭난다. 2017년에는 인도 벵갈 지역의 여성 소아 인신매매를 고발한 인디 게임 <미싱(Missing)>이 크라우드 펀딩 금액 5만 달러를 달성했다. <미싱> 속의 주인공은 길고 긴 여정 끝에 결국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지만, 현실 속에서 죽어갈 수많은 미성년자 여성들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기는 구글 플레이에 수두룩하다.
아이돌 문화는 어떤가. 오랫동안 아이돌 문화를 영위하던 이들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할 때 겪는 혼란 역시 흔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할 때, 뮤직비디오에서 남자 아이돌이 여성을 벽으로 밀치는 장면을 로맨틱하게 묘사할 때(ex. 방탄소년단의 <상남자> 뮤비 - 참고로 필자는 이 뮤비에 등장하는 모델 고소현 씨의 오랜 팬이다(운다)), 그리고 아이돌 팬 문화가 그 자체로 너무나 여성 혐오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내적 갈등을 겪는 페미니스트들은 얼마나 많은가. 페미니스트를 자처함에도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나’를 외치던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소년에게 열광하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당할 때 아이린을 지지한 수많은 페미니스트 팬들이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콘서트에서 약자 혐오적 가사를 모두 바꾸어서 부를 때까지 변화를 요구한 팬덤 아미(ARMY)가 있었다. 이화여대 시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시위 곡으로 쓰인 것이 영광이며, “지금은 페미니스트의 시대”라 말하는 소녀시대가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방황할 때 LGBTQIA+ 사회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말하는 티파니와, 기꺼이 LGBTQIA+ 엘라이를 자처하는 엠버가 있다. 문화는 바뀐다.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주체가 깨닫고 행동하면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마초적인 문화 속에서 갈등을 겪는 페미니스트들은 절대 적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지나치게 탓하는 것도 좋은 자세가 아니고, 그 문화를 아예 자신에게서 지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힙합 문화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내 인생 최고의 기억 중 하나가 소울컴퍼니 해체 공연이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10대 속에 동방신기와 빅뱅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지워낸다고 해서 지금 당장 현실에 존재하는 산업과 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마초적인 문화라도 그 안에서 저항하는 창작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문화를 주체적으로 소비한다면, 분명히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려고 한다. 물론 백래시는 있다. 그러나 결국은 마초적인 문화에서 갈등하고 주저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고 문화를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지독히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나의 문화가 바뀌는 그 날을 기다리며, 아끼는 슬릭의 가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너의 용기야 I got yo back
너는 더는 두려워 않아도 돼
니가 느끼는 슬픔과 불안함은
모조리 다 내가 들이마셔 버릴 테니까
넌 마음 놔도 돼
슬릭 – <Ma Girls> 中
<참고자료 & Thanks to>
- 김봉현, 『힙합 레볼루션: since 1989 듀스부터 도끼까지』, 월북, 2017.
- 고함 20, “[킬-조이] ‘언프리티 랩스타’ 여성혐오를 넘어 포르노까지”
-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애증의 공간일 힙합 플레이야와 힙합엘이
힙합엘이 국외 뉴스, “LA 두 갱단 Bloods & Crips, 평화협정 맺다” 2016.07.21.
- 처음 힙합을 좋아할 때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힙합 비평 매체인 <리드머>와 그 안에서 PC한 비평을 지속하는 강일권 편집장님
<욕설·비하가 힙합의 정신? 한국 힙합 18년의 문제>
<Janelle Monae, '범성애자' 커밍아웃에 관하여>
- 항상 좋은 힙합 비평을 쓰시고, 이 글을 쓰는데 정말 큰 영향을 주신 MC 워너비님
- 그리고 자신이 발 딛고 사랑하는 문화 속에서 싸우는 모든 페미니스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