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안개가 끼던 밤에서 푸른 안개가 걷히던 새벽까지

by 이상수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며칠 전 푸른 안개가 끼던 밤 당신이 찾아왔죠

우린 아무 말도 건넴 없이 함께 푸른 안개를 마시고

푸른 안개가 걷히던 새벽 무렵 함께 거리에 섰죠

거리는 하나 둘 가로등이 꺼지고 있었고

희미해져가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푸른 안개가 보였죠

우린 잠시 동안 아무 말도 건넴 없이 함께 그 거리를 걸었죠

그러다 서로 갈 길이 달랐기에 등을 마주대할 수 밖에 없었죠

근데 왜 그랬을까요?

나는 뒤돌아보았어요


사각의 프레임에 걸려 한구석이 흔들리는 당신의 등이 보였어요


오르페우스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어기고 뒤돌아보았고

영원히 아내를 잃어버렸죠

뒤돌아본 오르페우스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무것도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거리를 보았던거예요

뒤돌아본 그 순간

아내가 다시 지하세계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비어있음으로 가득 찬 그 곳에 오르페우스가 영원히 못박힌거예요

그래서 뒤돌아보아서는 안되었던거죠


이제 나는 이 곳을 영원히 떠나지 못하겠죠

오르페우스가 그 곳에 영원히 못박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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