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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아쓰 Jan 30. 2020

어디서든 책을 살 수 있는 자동차가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작지만 확실한 나의 공간이 있다…

 공간을 꾸민다… 공간이 이동한다… 그 공간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 책을 읽는다…


캠핑카 같은 낭만? NO

 다마스나 워크스루밴을 검색해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캠핑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거였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나의 공간에서 머무는 차. 그건 현지 숙소에 머무는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른 또 다른 매력이 있을 터다. 생각해보니 캠핑카는 많은 부분 이동책방과 닮아 있었다. 이동책방을 기획하며 얼마간 캠핑카 같은 낭만을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판매’라는 지점이다.


 이쯤에서 밝혀 두자면,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순진했다. 그 순진함이라는 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것이, 우선 나는 2종 보통 ‘장롱면허’ 소지자였고, 책방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방 '창업'에 관한 지식도 거의 전무했으며, 지금 이 사업이 근본적으로는 노점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차를 끌고 나가 (대체 운전도 못하는 게 무슨 생각으로…) 아무데서나 책을 판다는 것이 그렇게나 많은 절차를 요할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그런 순진함은 곧 현실을 만나 산산이 깨지게 되었다.


난생처음 법률상담

 사업적, 법적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처음에는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소상공인 창업 관련 상담을 이용하려 했으나,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신청서를 쓰려고 보니 사업을 분류하는 구분 값에 '이동 책방'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비슷하게 ‘서점업’이라고 해 두고, 세부 설명 란에 이동 책방 내용을 적어서 내자 거의 바로 전화가 걸려와서는, “이건 창업 상담의 취지(기존에 있는 사업의 개업 직전에 해주는 컨설팅)와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무료법률상담은 또 어떤가. 일단 모든 시간대의 예약이 이미 차 있었고, 여기서의 법률상담은 뭔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상담이어서 내가 원하는 것과는 맞지 않았다.

법률사무소를 이런 일로 가게 될 줄이야


 그래서 결국 '돈을 쓰자' 마음먹고 사설 법률사무소로 발길을 돌렸다. 온라인으로 한차례 상담 신청을 했더니 또 전화가 와서는, “이건 추가적인 리서치가 더 필요해서…”  라며 추가 비용과 상담을 권했다. 모든 게 답답해진 나는 알겠다고 하고 무작정 사무실로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나 같은 꼬맹이가 올 곳이 아니라는 직감과 함께 그래도 잘 왔다는 상반된 오묘한 기분이 교차했다. 곧, 직원분께서 고위 간부들이나 쓸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셨고, 나는 예쁜 찻잔에 커피를 마시며 약간 긴장하며 변호사님을 기다렸다. 이내 엄청난 포스의 변호사님 두 분이 등장했으며, 짧은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법률 검토한 내용을 3~4일 뒤에 받아보기로 한 후 사무실을 나섰다.


책방 워크숍 : 작은 책방, 나도 한번 해볼까

 법률 검토에 시간이 걸리는 사이, 신청해둔 책방 창업 워크숍에 참석했다. 책방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방을 운영해온 사장님의 운영 경험담과 노하우를 듣고 질문하는 자리였다. 차분하고 여유가 넘칠 것 같은 책방의 이미지와는 달리, 책방 '운영'은 어떤 사업보다도 분주해 보였다. 워크숍이 끝날 즈음, 조심스레 이동책방 얘기를 꺼냈고, 다들 책과 책방에 애정이 있는 분들이라 진심으로 응원해주셨다. 법률상담 때문에 조금 지쳐있던 나는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게 되었다.


책방 워크숍을 표현해본 나의 그림


그래서 결과는?  

 약 일주일 뒤, 약 20페이지에 달하는 의견서를 메일로 받았고, 그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영업장소 이동과 관련하여, 유사 업종인 음식판매자동차(푸드트럭)  의 경우와 달리 도서판매자동차에 대하여는 영업장소 이동시의 신고 및 등록에 대한 규정이 없어 보입니다. (중략)… 안전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관련 행정청에 질의하여 회신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확인한 결과 전국에 운영 중이거나 폐업한 서점들 중 조합에 가입된 서점 4000여 업체를 기준으로, 사업자 등록 후 부동산 임차 없이 인터넷 서점을 운영하거나, 이동식 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업체가 이미 존재함을 확인하였습니다


 마냥 좋지도, 마냥 절망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의견서였다. (물론 의견서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도서판매자동차’라고 명명한 이동책방에 대한 규제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님께서 처음 말문을 열며 하셨던 말씀도, 법은 사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법이 애초에 없다면 위법일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이동책방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딱히 규제가 생겨날 만한 뭔가가 있지는 않았던 것, 그리고 ’서점업’으로 규정되기 위한 업장의 형태가 규격화되어있지는 않고 서점업이 인허가 절차가 필요한 업종이 아니라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희망적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이게 ‘자동차’라는 형태를 빌려서 하는 것이기에 도로교통법에 저촉된다거나 각종 관할 구역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쉽게 생각했던 ‘공원’은 애초에 상행위가 금지되어 있었고, ‘캠퍼스’, '플리마켓' 등의 공간은 그 공간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신청 및 허가 절차가 필요했다.


어디서든 책을 팔 수 있다?

라는 생각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상황이 이렇기에 법적 규제보다 내가 가려는 곳의 특성이나 규정을 파악하고 직접 부딪히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축해가는 게 훨씬 시급해 보인다.

 합격 여부를 떠나 마켓에 계속해서 지원해보고, 길거리든, 학교든, 카페든 갈 수 있는 곳을 최대한 섭외하거나, 아니면 정말 무작정 나가보기. 그래야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있어 봤자 방법이 나오진 않는다.

 낭만적으로만 여겼던 이동책방의 일상은 즉흥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조금은 맥이 빠지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론 제대로 나가보지도 않고 머릿속으로 체념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이제 해 나가면 될 일이다. 조급해 말고 차근차근. 여태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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