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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23. 2016

통증

아프다,

손톱 옆에 살점만 살짝 뜯어져도 아프다. 물만 닿아도 자지러진다. 엄살을 부린다.

그런 내가 통증 자체가 주소인 환자들을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전 정신과적 병력 없는 분임.

20xx년 x월 x일 뒤에서 자동차가 들이받는 교통사고 있었고 의식소실 없이 xx부위 세게 부딪쳤음. 인근 병원에 가서 xx부위 골절 진단받아서 2주간 입원하여 수술 받음. 사고 이후부터 xx부위 통증이 시작되었음......


자동차 사고가 발단인 경우가 많다. 보험 문제가 얽혀있다 보니 환자들은 더욱 민감하고, 아픔을 인정해주지 않으려 하는 보험회사와의 싸움으로 더욱더 지쳐간다. 분명 교통사고로 인해서 일상생활이 무너졌는데 그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으려 하고, 보상금을 노린 꾀병은 아니냐는 이야기만 들으니 안그래도 통증 때문에 우울한 환자들은 더더욱 우울해지고, 화가 나게 된다.

화. 그것도 무섭다. 통증 환자들은 항상 화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통증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분노. 누군가는 자신을 꾀병으로 생각한다는 분노. 낫지 않는 통증 자체에 대한 분노..... 이렇게만 생각하면 통증 환자들의 안타까움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을 것 같은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쉬이 낫지 않는,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그 통증을, 나는 죽었다 깨나도 느낄 수 없는 그 통증을 인정하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다. 허리나 다리가 부러진 것도 염증이 있는것도 아니다. 뱃속이 암세포로 온통 뒤덮인것도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눈에 보이기에 아무 하자없이 멀쩡한 사람들이,  검사를 아무리 많이해도 하나도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 통증을 호소한다. 의사로 훈련받아온 나는 원인이 없는 통증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통증이라는 것이 진화론적으로는 몸의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고장났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텐데 몸에 아무 이상 없이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끼고 있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래서 나만 하더라도 통증 자체가 있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진짜 아픈거 맞아...?'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물론 머리속에서는 안다. 통증 자체가 병이라고, 머리 안에 병이 생긴 거라고...뭐 신경전달물질이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뭐가 억제가 되고 뭐가 억제가 안되어서 통증이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거라고 이해는 한다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항상 갭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다리가 부러지고 피가 철철나는 환자를 보면 '아...아프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하나도 안 아플것 같은 사람의 통증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멀쩡해 보이지만 어쨌든 너무너무 아파하니까 어찌어찌 통증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통증 환자들은 통증 조절을 위해서 갖가지 진통제들을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쓰는데, 환자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양의 약을 요구하곤 한다. 통증 환자과 버티는 과정은 매일같이 "하루에 이 약은 몇개 저 약은 몇개까지만 먹고 참아봅시다..."하면서 협상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협상하다보면 환자들은 화를 낸다. 내가 아파 죽겠는데 왜 자꾸 약을 줄이냐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냥 주사약으로 맞으면 안되겠냐고 자꾸 조른다. 언젠가부터 구별이 안된다. 정말정말 참기 어려운 돌발성 통증이 와서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약을 먹고싶어서 약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 수년간 통증을 앓아온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은 밉고 가끔은 힘들고 가끔은 나도 화내고 싶다.


처음에는 그들을 연민하던 이들도 지속되는 통증으로 하나둘 떠난다. 지속되는 통증을 갖고 사는 이들의 가족들은 , 친구들은 서서히 지친다.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 통증과의 싸움을 같이 해나가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길다 그 통증은. 그래서 놓아버린다. 부인과 남편과 이혼하고 더욱 절망한다. 친구들도 더이상 그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운이 닥친 것일까.


이런 통증을 계속 가지고 살 바엔 죽는 게 나아요 라고 말한다. 실제로 자살을 하거나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도 많다.통증 환자중에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에 불안하고 낫지 않는 병에 불안하고 닥쳐올 돌발성 통증에 불안하다. 끊임없이 화가 나지만 그를 억제하고 표현치 못하여 더더 아파진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통증을 누구에게라도 말하고싶고 누구에게든 인정받고 싶다.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결국 이것을 잠시라도 같이 느껴줄 사람은 없다. 결국 혼자 지고가야 하는 짐이라는 것만을 느끼고 절망한다.


나는.

통증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있는힘껏 상상한다.

그리고 같이 버티자. 미워도 좋아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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