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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타르솔 Feb 08. 2023

2023년 2월 8일 다이어트 다이어리

하루 두 끼 무던하게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재능이 있다거나 특별히 유려한 글 실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맞춤법도 남보기 부끄럽게 틀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글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된 계기는 라라랜드로 스타덤에 오른 엠마 스톤 주연의 '이지 에이'라는 영화다. 군대에 있을 때 처음 보게 된 영화인데 영화 속 주인공은 '주홍글씨'를 모티브로 학교의 '공인 19녀' 행세를 하며 본인의 옷 가슴팍에 빨간색 A 글자를 수놓고 다닌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뭐였더라...

"나의 성생활에 대해서는 모두들 신경 꺼주시길!". 상큼 발랄한 하이틴 시절의 엠마 스톤의 개방정스럽고 끼스러운 연기력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차치하고 나는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나만의 'A 다이어리'를 적기 시작했고 거기에 그 당시 내가 겪고 있었던 연애, 인간관계, 성, 나의 불안과 우울, 열등감등 인생에 대한 온갖 고민들을 적어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굳이 심각하거나 '중2병'스러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다양한 생각과 느낌, 경험들을 적게 되었다. 그렇게 적다 보니 나의 일기장(저널)은 1권, 2권, 3권,... 지금은 몇 권이더라? 한 10권쯤은 되는 것 같다. 서가의 두 칸 정도를 차지하는 분량만큼 쌓여있다. 그런 저널링 습관은 내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돌봐주고 용기를 내고 현실에 발 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고 많은 저널중에는 내가 첫 다이어트 때 약 4달에 걸쳐 썼던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담백한 다이어트 일지도 있었다. 2013년 한 학기 동안 나는 3,4,5월 3달에 걸쳐 약 30kg를 감량했다. 정말로 소중한 다이어리였는데, 거실 밥상에 놓아진 빵을 우리 집 반려견이 쩝쩝해드셔서 아주 눈물 쏙 빠지도록 혼을 내었더니 내 소중한 다이어트 일기장을 영악한 그놈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 녀석이 사람 수준의 지성을 겸비한 존재라고 믿는다. (다이어트 카페 대문에도 2주간 올라갔고, 몇 년 전에는 방송사에서 섭외 이메일도 왔었다. 발견한 게 방송이 이미 나간 후 2달이 지난 시점이라 너무 아쉬웠다)

나의 영원한 앙숙, 나의 사랑, 나의 동생 강산(2011~2021)

 시간은 흘러 흘러 감량 후에 나는 흔히 단기 감량에 성공한 (구) 비만인들이 겪는 다양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였다. 나를 죄수복처럼 감싸던 살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겪는 일련의 변화들은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겪어볼 만한 가슴 벅찬 느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건 마른 사람들이 근육을 붙이면서 겪는 긍정적인 변화와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결이 조금 다르다. "아 이게 사는 맛이구나"하는 소리가 입으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그런 자유의 맛이다. 때문에 단기간에 살을 뺀 사람들은 언제고 다시 뚱뚱했던 예전모습으로 돌아갈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95%는 수년 이내에 요요현상(본래의 체중으로 돌아감)을 겪는다고 한다. 어느 날 못 참고 김치치즈탕수육을 먹은 나는 11시에 집을 나서 근처의 종합 운동장 트랙을  새벽 5시 조기 축구회원들이 등판할 때까지 걸은 적이 있다. 그제야 집에 돌아와 안심하고 잠들 수가 있었다. (이런 썰은 너무 많으니 차차 생각날 때마다 적어봐야겠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13,14,15,16년도까지 약 4년 간의 시간 동안 '날씬한'사람으로 재밌고 신나게 살았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접했고 여행을 가고 모임에 참석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tv를 보면서 인스턴트 음식과 과자를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던 어린 날의 내 모습과는 상당히 상반된 행보였다. 모임의 누군가가 내게 '어릴 때부터 운동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 소리 많이 듣죠?'라고 말한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벌써 7년 전이네). '아니오. 저는 히키코모리에 만성 불안증을 갖고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 매년 신체검사날이 제일 싫고 무서웠던 감성적이고 여린 내성적인 소년이었어요. 친구는 없다시피 하고 제게 유일한 낙은 음식이었죠'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6년도 말에 정말 좋아하던 애인에게 차이고 난 후 나는 여러 가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살만 빼면, 몸매가 좋아지면, 외모가 신장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이제는 지방 대신 열등감이라는 족쇄가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이 불안과 긴장의 나날이었던 '자기 관리'라는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편해지고 싶었다. 그때부터 몸무게가 조금씩 늘었던 것 같다. 그리고 18년도에 먹는 걸 정말 좋아하는 전애인을 만나 데이트를 할 때마다 먹고 자고 게임을 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살이 쪘고, 2019년도에는 몸무게가 94kg까지 찌고 급성 통풍 발작이란 것도 경험하게 된다. 웃기게도 통풍 발작이 온 날 당일에도 나는 떡볶이 2인분과 순대+간+허파를 한 번에 두 젓가락씩 입에다 쑤셔 넣으며 인터넷 게임방송을 보고 있었다. (통풍에 내장이 정말 안 좋다).


 다이어트 이후의 4년간 유지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는 멋진 사람이야' '날씬한 게 내 본모습이고 뚱뚱한 건 죄악이며 나태의 표상이며 추하고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야'라는 가치관이었다. 2020년도에 들어서 그 생각과 행동양식을 철저히 조금씩 정과 끌, 그리고 망치로 깨부수어야만 했다. 카카오 '프로젝트100'에 가입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스트레칭도 해보고 달리기도 해 보고, 푸시업도 해봤다(푸시업은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 가짜로 인증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미약하게'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23년 오늘의 나는, 몸무게는 76kg에 풀업을 하고 싶어서 철봉에 2분 매달리는 걸 목표로 연습을 하고 있다. 유튜브를 보며 하루에 푸시업을 100개 정도 정자세로(중요함) 하고 있고 달리기는 한 번에 3~5km 정도를 뛰고 있다. 날씬할 때가 그립냐고? yes. 그런데 이제는 안다. 급하게 헐레벌떡 목표 지점에 가서는(도달하기도 힘들지만) 이내 너저분하니 지쳐버려서 저만치 뒤편으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마침내 습관을 성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음식중독'으로부터 벗어나서 '운동중독'에 빠져보는 게 내 목표다. 작년 여름쯤 같은 체육관에서 알게 된 사람이 내게 경찰준비생이냐고 체대생일 것 같다고 말한 걸 들었을 때, 오랜만에 옛날의 그 좋은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 느낌과 기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기를.


+ 오랜만에 예전에 다이어트 성공 일지로 많은 분들께 칭찬과 격려를 받았던 글을 다시 읽어봤다. 너무 오글거리고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첫 다이어트 때의 초심이 떠올라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뭔가 영화관에서 감동적인 명작 영화를 감상했을 때의 그런 느낌?...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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