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서현숙의 <소년을 읽다>

by 책선비


이 책은 한 국어 교사가 1년 동안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쓰는 과정에서 그들과 소통하며 배우고 깨달은 내용이 담고 있다. 저자 서현숙은 "이 책 같이 읽으래?"라는 말로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다.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로 유명하다.


저자는 <소년을 읽다>을 통해 책을 매개로 소년원 아이들과 삶과 우정을 나누면서 자신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직면한다. 사회에 다시 돌아올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야할지 고민한다.


'소년원'이라고 하면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감옥 대신에 가는 곳으로 이해한다. 대부분은 그 지점에 멈춰 있다. 이 소년들이 죗값을 치르고 다시 학교로, 사회로 나올 아이로 보는 시선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다. 당장 눈에 보이는 범죄가 크기 때문에 그 너머를 보는 일이 쉽지는 않기도 하다. 그러나 소년들과 책 읽고 그들의 삶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교사의 책을 통해 시선은 확장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환대는 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인다. 저자는 거친 아이들과 수업할 생각에 걱정도 있었지만 환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간식을 준비하며 첫 수업을 준비한다. 아이돌 사진이나 만화책도 챙기며 아이들의 관심사와 요구에 세심하게 반응하다. 이런 경험이 없었던 한 아이는 '환대'가 무슨 말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환대는 반갑게 맞이 정성껏 대접한다는 의미"(p.47)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저자. 4만원의 비용으로 만드는 환영과 응원의 분위기는 저자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처음 받아 보는 환대의 경험은 "당신이 나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p.91)으로 자라나게 했다.


저자는 책나눔을 통하여 아이들의 삶의 맥락과 서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읽었던 아이들은 책의 구절을 언급하며 지금이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p.24)이라고 말한다. 포승줄에 묶여 재판을 받았던 경험이 "지옥행을 판결받는 기분"(p.25)이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죄를 지었으니 당연한 절차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일생 일대의 사건이었고 가장 슬퍼었던 일이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전해듣는 그 때의 심정에서 독자는 범죄 사실 '너머' 아이들의 힘겨웠던 삶이 궁금해진다.


저자는 고정관념과 편견이 깨어지는 경험을 한다. 아이들이 책을 잘 읽고 정성스런 편지를 쓰거나 선생님을 배려하는 태도를 볼 때마다 저자는 의문이 생겼다. "나쁜 행동과 인간의 영혼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에 대해 계속 고민한다. 저자가 만난 아이들은 그저 "평범한 소년"(p.214)이 많았고 영혼까지 병들지 않았다. 이 평범함을 유지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저자는 소년원 생활 이후 더 나은 삶을 위해 아이들에게 '좋은 삶'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제안한다. 어쩌면 소년원에도 좋은 삶을 욕망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게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종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사람이 변화되는 내용에 자주 감동을 받는다. 읽고 쓰는 일이 인간 대 인간으로 소통하게 만들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서서히 각자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물론 그 과정의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책을 건네고 아이들 이야기에 경청하는 저자의 마음과 태도에서 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앞으로 이 감동과 전율을 기억하며 책과 함께 계속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독서 교육 종사자 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 등 모든 어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발췌>


책을 펴면 낯선 세계로 달려갈 수 있고,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소년은 자신의 일상 너머의 것을 조금은 욕망할 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변신과 욕망 사이에 책이 있었다. 나는 그 위대한 책들을 소년의 손에 건네는 사람이었다. 4-5쪽


소년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였다. 13쪽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니 읽지 않으려는 저항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은 아니었다. 읽기에 익숙하지 않고 능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19-20쪽


아이들에겐 재판 이전의 삶과 재판 이후의 삶이 존재한다. 25쪽


"선생님, 힘드시죠? 오늘 어쩐지 어수선하네요." 오늘은 소년원의 소년이 나의 표정과 마음을 살펴주었다. 작년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올해의 내가 소통할 동료 없이 살아가리라는 것을, 소년에게 위안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어떤 시절에 누구로부터 이해의 마음을 받을지 미리 알 수 없다. 위로는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찾아오기도 하더라. 나의 마음을 살펴준 소년의 마음이 고마웠다. 42쪽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66쪽


아, 그때 알았다. 당신이 나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도 마음도 자유로이 노닌다. 91쪽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은 얼마나 건방진가. 얼마나 진실하지 못한 자만인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게 될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받게 될지 미리 알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강준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96쪽


짐작하건대, 이 일은 책이라는 존재의 물성을 뛰어넘을 것이다. 자격증 취득이나 기술 수련과 같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지만, 몸과 마음에 각인되는 원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삶의 어느 길에서 다시 발현될 것이다. 어른으로 살아가다가 자기 살마에 되살리고 싶은 일이 되리라.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다고 믿고 싶다. 111쪽


아이들이 적은 인상 깊은 문장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 (...) 인상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 마음을 들키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 말이다. 마음의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몇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 112쪽


그러니까 누군가의 휴식 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갇혀 있다는 것을 온전하게 실감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133쪽


나는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이지 않다. 적당한 정도의 친절함과 세심함, 딱 그 정도다. 갇힌 공간, 일주일에 한 번만 수업하는 특수성이 아이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생활에서 비롯되는 온갖 감정을 나누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표정만 보여줄 수 있으니까. 141쪽


어른인 나에게도 그런 존재는 필요하다. 나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사람, 사납고 날 선 마음의 결을 조용히 빗질해서 얌전하게 만드는 사람. 싸우듯이 살아가도 팔다리에 긴장 풀고 몸도 마음도 평평하게 눕게 만드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 하나 없다면 누구도 멀쩡하게 살아가기 힘들다. 소년에게는 더 절실한 존재, 사무치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177쪽


고정관념의 뿌리는 깊고 집요하다. 그 뿌리가 내 몸의 신경 어디쯤까지 닿아 있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시를 잘 외울 때, 책을 잘 읽을 때, 나에게 정성 들인 편지를 건넬 때, 나의 마음은 많이 흔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흔들림은 감동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닌 고정 관념과 충돌하는 데서 생긴 충격 말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편견과 마주쳤고, 그렇게 흔들려온 봄, 여름, 가을이었다. 179쪽


소년원 본연의 목적처럼 우리 사회는 그들이 행동을 교정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더 이상 '우리'에게 해를 끼치 않는 정도의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실현하지 않아도 좋으니, 좋은 사람을 살지 못해도 좋으니, 사회의 저 아래에서 우리에게 무해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혹시 아닐까.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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