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지음, 한겨레 출판, 2020)
매일 밤 굶고 자겠다고 다짐하지만 허기를 참지 못하고 배달앱을 켜서 배를 채운 다음 잠드는 한 청년이 있다. 바로 책의 저자인 소설가 박상영이다. 그는 2016년도에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지만 빚을 갚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3시간 글을 쓰고 9시에 출근한 다음 6시 칼퇴근 이후 1시간 운동하고 12시까지 글을 쓴다. 하루 종일 쥐어짜여 너덜너덜 해진 그의 몸은 잠들기 전에 비어있는 위를 충전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도저히 이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다.
“하루 칼로리 1300 이하로 제한. 근력 한 시간, 유산소 50분 이상. 원고 5매 이상 작업” (25쪽) 작가는 하루 목표를 세웠지만 매일매일 다짐으로만 끝난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야식을 줄이지 못하니 살은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육중한 몸매로 거듭난다. 좌절과 포기의 순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시 다짐한다. 무한히 반복되기만 했던 그 다짐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의 첫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다. 세 자리에서 두 자리 몸무게를 만들기 위해, 전업 작가로 도약하기 위해 환승 세 번 출퇴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견디었던 나날들의 기록이다. 그 치열한 직장생활 가운데 더 치열한 다이어트 과정과 고군분투 생활형 작가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다.
“지금은? 매일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도 어김없이 폭식을 하고, 아침이면 팔다리로 신체 실루엣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잘만 골라 입고 나간다.(중략) 100킬로그램이 훨씬 넘는 몸, 벙벙한 티셔츠에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는 것도 모라자, 막 감은 머리카락을 대충 말린 채 산발을 하고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악몽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겠지.”(189쪽)
그렇다고 설렁설렁하게 볼만한 소설가가 절대 아니다. 박상영은 2016년 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데뷔했다. 매년 문학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제10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대도시 사랑법>,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 단행본도 출간했다. 그가 언급하고 있듯이 그의 소설은 ‘직장 생활에서 오는 분노와 퀴어 소재의 소설들’(200쪽)로 구성되어 있다.
등단까지 하고 마감 있는 글을 쓰고 있던 소설가라면 어느 정도 자기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박상영은 그런 예상을 기분 좋게 와장창 깨뜨린다. 소설가 이전에 취업준비생이었고 50번 넘게 낙방한 소설가 지망생이었으며, 등단했어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빡빡하게 살아내야 하는 우리와 비슷한 처지이다. 직장 생활과 여러 만남 속에서 겪었던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어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맛보게 만든다. 특히 저자가 직접 겪었던 비만과 관련한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사유들은 현실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살 빼시고 관리 좀 하시면 인기 많으실 거 같은데요? 대리님 긁지 않은 복권 같아요.!”
A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고 남겨진 나는 여러모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가 뭔데 내 외모를 평가해. 살찐 사람 몸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는 건가. 게다가 긁지 않은 복권이라니. 상대방은 누구보다도 절실히 자신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인데 타인이 왜 함부로 그 사람을 무엇이 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인가. (중략) 타인의 몸에 대해 논하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것을, 이런 종류의 말이 실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39쪽)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정말 상대방에게 맞는 이야기인지, 내가 똑같은 말을 듣는다면 어떨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살 빼고 관리하라’는 충고를 에둘러서 하는 말이다. 이미 타인의 몸을 두고 ‘정상체중에서 벗어난 관리해야 하는 몸’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비만인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p.41)이지 않을까? ‘별다른 악의 없이, 오히려 칭찬에 가까운 의미’(p.39)로 한 말이더라도 듣는 당사자가 기분 나빴다면 듣는 당사자는 기분 나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프로필 사진보다 과체중인 자신을 보고 의아해하는 팬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태도를 가지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과체중을 향한 일반적인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닌 건강과 체력을 위해 시작했던 운동과 다이어트는 실제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의미 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한다. 남들 눈에는 그대로인 체중 때문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수없이 다짐하고 노력하며 발버둥 쳤던 흔적이 가득하다. 몸무게는 그대로지만 한 단계 성숙하고 단단해진 자신을 보게 된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 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 정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 (170-171쪽)
저자는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고 깨닫고 자신을 받아들인다. 실제로 몸무게를 줄이게 되어 두 자리를 유지하게 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수확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태도는 소설가로서 한 걸음 나아가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남을 바라보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했던 행위라고 생각했던 글쓰기’(p.203)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저자는 친구의 충고에 힘입어 ‘나의 말투로 당시 내게 중요했던 문제들’(p.202)을 소설로 엮어낸다. 문학상을 받고 등단하여 꿈에 그리던 작가가 된 것도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없이 나 자신에 가까운 방식의 그런 글’을 쓰고 ‘실로 오랜만에 해방감을 느꼈’(p.203)다고 말한다. 저자가 느꼈을 기쁨과 해방감, 정말 부러운 경험이다.
이 책은 ‘시작하기에 너무 늦고 능력이 없어 초라한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보라’고 말한다. ‘늦게 시작하는 나를 뭐라고 볼까, 하다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을 잠재워 준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하는 것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도 전부 나의 모습 중에 하나임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이 책 덕분에 나 또한 자신을 수용하는 방법을 조금 배우게 되었다.
저자는 여전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까, 어떤 소설을 쓰고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까, 이런 질문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지금도 이 책에 나온 모습대로 살면서 자기다움을 유지하고 있을 것 같아서다. 또 어떤 날 것에 가까운 이야기를 품으며 ‘오늘 밤’에도 배달앱을 켤지 아니면 굶고 잘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