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드릴로의 <그레이트존슨 거리>를 읽고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인 '돈 드릴로'는 이탈리아 이민 2세로 뉴욕에 태어나 1971년 <아메리카나>로 데뷔한다. 이어서 7년 동안 <그레이트존스 거리> 등 5편의 소설을 출간한다. 1985년에 발표한 <화이트 노이즈>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면서 평단과 대중에게 큰 주목을 받는다. 이후 <암흑의 세계>(1997년), <코스모폴리스>(2003년), <제로 K>(2016년), <침묵>(2020) 등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레이트존스 거리>(창비, 2013)는 1960년대 자본주의의 실상과 대중 문화와 매체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인간이 고통의 자리에서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명한 록큰롤 가수인 '버키'는 상품화되는 음악에 대한 회의를 느끼던 중에 광기어린 대중으로부터 자살을 요구받자 모든 음악활동을 중단한다. 이후 여자친구 ‘오펄’의 집인 뉴욕의 ‘그레이트존스 거리’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칩거한다. 소속사 매니저인 ‘글롭키’와 기자들은 그의 신변에 대한 걱정보다 상품으로 가치만 계산하며 접근한다. 버키는 마약 운반책이었던 오펄로 인해 해피밸리 공동체가 이끄는 마약 사업에 연루되어 어려움을 겪는다. 컴백을 요구하는 글롭키와 복귀를 막는 해피밸리 사이에서 버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선택한다.
소설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어떻게 인간성이 파괴되는지를 고발한다. 버키가 머무르는 아파트 3층에 사는 삼류 작가 ‘페니그’는 하루 종일 글을 쓰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결국 아동 포르노 작품을 쓴다. 그는 “내 생각엔 그게 문학 전체를 통틀어서 아직 안 다뤄진 유일한 분야”(p.72)라며 시장성에만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구매자들 중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한테 포르노를 사줄 만큼 돈 사람들이 널려 있어"(p.74)라며 자신감 있게 말한다. 자본 앞에 인간의 윤리 도덕적 의식이 얼마나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편, 오펄은 ‘수화물’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만 결국 죽음에 이른다. 문제를 인식하더라도 그것을 바꿀 여력이 없을 만큼 자본에 소모되고 만다. 돈에 메여 사는 현실 뿐만 아니라 문제 인식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인식하더라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레이트존스 거리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 그레이트존스 거리는 버키에게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다. 춥고 열악하지만 이전 삶과 심리적 거리를 둘 수 있고 오펄의 환대와 경청이 있는 곳이다. 그녀는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거야.”(p.126)라며 버키의 고민에 진지하게 반응한다. 또한 이 거리는 추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는 생명력이 있는 장소이다. 버키는 1층에 사는 ‘미클화이트’의 뇌성마비 아들이 내는 “미세한 생명이 웅웅거리는 소리”(p.74)에 귀를 기울인다. “중단된 태어남의 과정을 이어나가려고 기를 쓰는 신음소리”(p.75)이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 원시적인 소리를 버키는 계속 듣고 싶어 한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창 아래 목재를 싣는 트럭이나 길 건너 창문을 차지하고 있는 화가나 조각가들, 그레이트존스 거리 위에 걸려 있는 평온한 얼굴들을 향해 (고요한) 신음소리를 보냈다. 하지만 그 약이 무슨 약이었는지 몰라도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입’은 하나의 언어 메커니즘에서 다른 메커니즘으로 투하되어 최초로 내게 도달한 말이었다.”(p.365)
강제로 주입된 마약 때문에 언어를 잃은 버키는 그레이트존스 거리를 바라보며 신음소리를 내자 다시 회복된다. 자본주의 체제 밖으로 밀려난 한 인물의 몸부림이 버키에게 작은 희망으로 피어나는 장면이다. 돈 드릴로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회복력을 키우고,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해요. 작가는 생생한 용어를 추함과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도시의 황폐한 지역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품위와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처절하게 실패한 그 자리에서 인간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그레이트존스 거리>는 작가의 예리한 분석과 날카로운 문장력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가의 통찰력 있는 문제 의식과 대안은 오늘날 폐해가 심각한 자본주의 시대를 돌아보는데 필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버키와 여러 인물 간의 대화 장면이 자주 등장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몇몇 독자는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시대적 모순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이거나 미국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