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를 읽고
2022년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가 된 <화이트 노이즈> 영화는 1985년 돈드릴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이 40여년 전 작품을 ‘영화한 이유는 오늘날에도 소설의 내용이 큰 울림을 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창비, 2022)는 기술과 대중매체의 영향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장편소설이다.
화자 ‘잭’과 아내인 ‘버벳’은 여러 번의 이혼 끝에 결혼하여 네 명의 아이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열차 사고로 인해 전복된 탱크에서 유독물질이 유출되고 도시 전체가 검은 구름에 뒤덮이게 된다. 피난을 떠나는 도중에 잭은 ‘나이어딘 D’라는 유독물질에 노출되어 죽음에 직면한다. 재난 이전부터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버벳은 승인되지 않은 개발신약 ‘다일라’ 약을 복용하고 있다. 이 약을 얻기 위해 외도까지 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잭은 총을 들고 약을 판매한 ‘그레이’를 찾아가는데...
작가는 현대 기술의 형태를 ‘백색소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폭이 넓어서 공해에 해당하지 않은 소음”을 의미하는 백색소음은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잡음이 대표적이며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백색소음은 고주파가 섞여 있어 듣기가 불편하다. 소설의 배경인 ‘블랙스미스’ 도시는 대장장이 기술이라는 의미가 있다. 잭의 가족이 자주 가는 슈퍼마켓은 수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컴퓨터 시스템의 소리와 카트, 확성기 소리 등 “소음으로 꽉 차 있”(p.70)다.
소설은 기술에 의해 생활과 의식을 지배당하는 현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잭의 아들 ‘하인리히’는 지금 비가 오고 있는 사실보다 오늘밤 비가 온다는 라디오의 일기예보를 더 신뢰한다. 그는 “우리 감각이요? 우리 감각은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훨씬 많아요. 이건 실험실에서 입증되었어요.”(p.44)라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의학기술에 의지하여 신약을 복용했던 버벳은 외도까지 하게 되었고 기억력이 감퇴되는 부작용도 겪어야 했다. 더군다나 그 약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기술은 이제 더 많은 죽음을 유발시키고 죽음을 이용하기도 한다.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으로 잭은 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죽음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지만 이를 조사하는 사람은 컴퓨터에 기록하는 하나의 데이터로 그를 대한다. 인간의 죽음과 불안을 토대로 만든 '데이터의 총합'을 모아 새로운 기술을 만들면서,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현대 기술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화이트 노이즈>는 현대 사회의 기술에 매몰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그려낸 작품이다. 오늘날 휴대폰과 컴퓨터 등과 같은 기술 대입하여 읽어보면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특히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는데 세대간의 차이를 자세히 드러낸 부분은 지금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방대한 분량으로 읽기가 부담스러운 독자는 영화를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이어서 돈 드릴로를 미국 문학의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받게 만든 <화이트 노이즈>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