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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비 Feb 23. 2024

진정한 대화와 더 나은 논의를 위한 논쟁적 글쓰기

위근우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를 읽고

글쓰기 책을 자주 구입해서 읽어보는 편이다. <나를 살리는 글쓰기>, <글쓰기의 최전선>, <힘 있는 글쓰기> 등 저자마다 희노애락이 담긴 성장 과정과 글쓰기 노하우와 필살기 등을 읽다보면 서서히 꺼져가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다시 생긴다. 그러다 동기부여가 흐지부지 사라질 때면, 다른 글쓰기 책을 검색해본다. 요즘에는 핫한 글쓰기 책이라도 구입까지 하지 않는다. 결국 다양한 방법론보다 꾸준하게 계속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빌려서라도 읽어본다. 좋은 작가가 적어놓은 세련된 문장으로 동기부여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를 발견했다. 제목에서부터 그동안 읽었던 글쓰기와는 다른 결의 내용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이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는 내용이라는 예상은 되지만, 대부분은 할 만하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제목으로 내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서 호감이 생겼다. 저자를 검색하고 책을 살펴보니 이름도 출간한 책 제목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글쓰기에 대해 대놓고? 귀찮다고! 외치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근우 저자는 대중문화 전문 기자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 평론가이다. 경향신문 등 여러 매체에 대중문화 관련한 비평기사를 쓰고 있다. 10만 파로워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논쟁적인 문화비평 글로 소통하고 있다. 2008년 <매거진t>입사하여 활동하기 시작했고 웹매거진 <아이즈>에 재직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뾰족한 마음>, <프로불편러 일기> 등 출간했다. 집필한 책 제목을 봐도 비평가로서 날카롭고 예리하게 비판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토록 귀찮은 글쓰기>에는 이런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구체적인 사례로 담아내고 있다. ‘재능, 트레이닝, 실전, 논쟁, SNS, 멘탈’이라는 6개 키워드로 구체적인 글쓰기 기술부터 현실적인 멘탈 관리까지 위트 넘치게 그려낸다.  


책은 논쟁적 글쓰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글쓰기란 자기독백적 혹은 자기만족적 활동이라기보다 “어떤 글이든 세상에 나온 순간 독자를 비롯한 해석과 논의의 공동체에 연결”(p.100)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나은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타협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논쟁적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타당한 근거와 논리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옳음을 주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저자는 서로의 옳음을 인정하자는 상대주의는 오히려 논의를 흐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고 말한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고 말하는 세계관에선 합의가 필요하지 않으니 나의 옳음을 정당화할 논거를 찾을 필요도 없다. 혹은 열심히 근거를 확보한들 그렇지 않은 주장과 동일한 수준으로 다뤄질 테니 결국 진리 혹은 진실이 무엇이냐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소통이란 서로의 다른 목소리가 논거의 교환을 통해 특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그런 기대를 포기한다면 다양성이라는 허울 좋은 말 앞에서 다들 길을 잃고 헤맬 뿐이다. 99쪽


하지만 이런 글쓰기는 책제목처럼 피로하고 귀찮은 여정이다. 첨예한 이슈에 대해 자료 조사는 물론 자신의 논리와 근거를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며 글을 써야한다. 게다가 그에 대한 합당한 보답은 커녕, 다양한 공격과 비판 뿐만 아니라 악플과 오해와 불필요한 논쟁 등 불편한 상황을 겪기 마련이다. 글쓰기에 대한 자기만의 뚜렷한 지향점이 없다면 버티기 어렵다. 그럼에도 저자는 논쟁적 글쓰기의 유익을 피력하고 있다. 


현명하지 않은 내가, 그럼에도 계속해서 세상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나만 옳다고 믿는 오만함 때문이 아니라 내 글을 읽는 이들이 수동적인 수용자 아닌 능동적인 논의의 참가자라는 믿음, 그 격렬한 부딪힘이 때론 감정적인 갈등을 만들지언정 결과적으로 우리의 대화가 더 풍성해지고 더 나은 담론이 만들어지리라는 믿음 때문임을 말하고 싶었다. 지금껏 내가 내뱉었던 날 선 언어들에 비해 이 믿음은 너무 순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수없이 틀린 말을 해왔음에도 이 믿음만큼은 틀리지 않았길 진심으로 바란다. 141쪽


저자는 생생한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논쟁적 글쓰기 현장을 보여준다. 책에는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논쟁이 격했던 사안들이 등장하고 저자가 어떤 근거로 무슨 주장을 했는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공정한 경쟁 개념의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가 출현한 <더 지니어스> 프로그램과 그의 쓴 책을 활용하여 논리적인 글을 완성한다. 또한 포켓몬 빵의 유행의 이면에 SPC 그룹의 한 노동자가 수십일째 단식 투쟁하는 현실을 언급하고, 유명 지식인들이 자신이 전문 영역에서 지적 권위를 과하게 행사하는 일에 대한 비판적인 글도  살펴볼 수 있다. 


뉴스로만 듣고 그냥 흘러보낸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다시 짚어보게 된다. 당시에는 무심히넘겼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이슈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 별 문제 의식 없이 보았던 부분도 저자의 문제 제기로 인해 고민하게 된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한다기보다 저자의 말대로 ‘능동적인 논의 참가자”로서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언제부터인지 논쟁이 예상되는 문제는 침묵을 선택하고 외면하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 갈등과 논쟁보다 부드러운 대화가 더 성숙한 태도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그늘에 가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얼마나 흐려졌고 그 정도가 심각한지를 알게 된다. 논쟁적 글쓰기는 정면으로 그 문제를 드러내고 ‘더 나은 논의’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는 도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개 대중문화평론가인 내가 그만큼 거창한 운동을 조직하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분노 때문에 내 계정을 찾은 이들이 SPC 그룹의 노동 탄압에 대해서도 상식인 수준에서 함께 분노하고, <집이 없어> 같은 작품이 제공하는 폭력 너머 연대의 사회적 각본을 접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볼 뿐이다.” 153쪽


반박과 비판이 두려워 주장이 뚜렷한 글쓰기를 주저했는데 용기가 생긴다.   책에는  논리적 흐름을 가지고 각 문단마다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적극적인 논의 참여자’로서 한 걸음도 내딛는다. 저자의 인스타그램에 찾아서 팔로우를 하고 그의 최근 칼럼을 읽으면서 이슈의 논점을 확인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본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나, 다양한 글쓰기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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