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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리 Oct 25. 2019

나는 쇼핑중독자였습니다.

내가 쇼핑중독에서 벗어난 한 가지 방법





저는 20년 동안 쇼핑중독자로 살았어요.


15년 전 제 월급이 200만원이었거든요. 50만원은 적금 넣고, 30만원은 월세 내고, 나머지 120만원은 몽땅 옷에 썼어요. 옷장에 옷이 너무 빽빽하니까 옷을 뽑아서 입었어요. 뽑다가 어떤 날은 옷 봉 째 내려앉기도 했구요. 지금은 거기서 벗어났어요. 쇼핑중독을 벗어나는 훌륭한 방법은 많이 있지만, 오늘 저는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제 비결은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 * 이 글은 필자의 10월 25일 세바시 영상 강연 원고의 일부입니다. )


저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습니다. 중 3때 일기장에는 옷 잘 입는 사람, 멋쟁이가 되고 싶다고 썼어요. 제가 옷을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저희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벗겨놨니? 왜 맨날 옷 타령이야?”

“대학 가면 니 돈으로 사.”


대학생이 됐습니다. 아르바이트 해서 30만원을 받으면 바로 옆 백화점에서 다 써버렸어요. 제가 교사가 되고, 월급이 30만원에서 180만원이 됐을 때 월 1회 쇼핑이 주 3회가 됐어요. 퇴근하고 별일 없으면 습관적으로 가는 곳이 동대문 시장, 이태원시장, 백화점이었어요.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보다 쇼핑몰 구경을 더 열심히 했어요.


‘무슨 신상이 올라왔지? 어머, 이건 사야해!’


옷을 많이 사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도 텅 빈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어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마음이 텅 비면 쇼핑을 또 했으니까요.

5년 전, 저는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우울증이 왔습니다. 제가 하루 세 시간이나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등굣길 차 안에서 한 시간, 귀가 길 차 안에서 한 시간, 밤에 아이 재우며 한 시간.


‘조금만 운전대를 꺾어도 다 끝나겠지?’ 그 지옥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정신과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사소한 걸 물어보셨어요. 하루는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최유리 씨는 왜 옷을 좋아하나요?”

머리가 하얘졌어요. 옷 얘기하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최유리 씨에게 옷은 뭔가요?”

답을 못했어요.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충격이었습니다.


‘난 옷을 좋아하면서 왜 한 번도 ‘왜?’를 던져본 적이 없었을까?’

문득 가족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옷 좀 그만 사고,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패션 쇼 하냐?’


가족들은 옷을 좋아하는 저를 비난하고, 놀렸습니다. 전 제가 부끄러웠어요. 선생님께 질문을 받고 나서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잘못했다고만 하고 이유를 물어봐준 적이 없잖아!’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으면 그냥 내가 물어봐주자!’


‘최유리, 넌 왜 옷을 사고 싶었어?’

이번에도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질문을 작게 던져보기로 했어요.

‘입지도 못할 튀는 옷을 왜 샀어?’ ‘사실은 나... 뭔가 창의적인 걸 하고 싶었어.’

‘장롱에 모셔둘 비싼 가방을 왜 샀어?’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왜 사도사도 고팠을까?’ ‘엄마한테 혼나던 나를 달래주고 싶었나봐.’

‘왜 그렇게 다양한 옷을 샀어?’ ‘뭘 입어야 진짜 좋은지 몰랐나봐.’


답을 하다 보니까 궁금한 게 생겼어요.

‘최유리, 너는 언제 행복하니?’

‘너는 누구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족들은 항상 제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넌 허영심이 많아. 너 낭비하는 그 습관은 문제야.’ 저도 동의했었어요. 그런데 질문을 하다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있지 않았어요. 진짜 문제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다’에 있었습니다.


‘그럼 난 왜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1년 전, 5년 전, 10년 전, 15년 전...  제가 해 온 크고 작은 선택을 돌아봤습니다. 학업, 진로, 결혼...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행복할까?’ 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습니다. 제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엄마가 안 싫어할까?’


엄마가 예민한 분인데다 맏며느리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툭하면 혼나니까,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안 싫어하는 걸 하면 사랑받는 사람,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평생 선택하기보다 허락받았습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 적도 없고, 답도 모르면 우리는 불안하죠. 그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재빨리 통계적으로 안전한 정답, ‘껍데기’를 씌우려 합니다. 학교 이름, 학위, 좋은 직장, 비싼 물건... ‘이걸 따라 가!’ 그럼 우린 껍데기를 씁니다.


저도 살면서 많은 껍데기를 써왔어요. 그리고 5년 전 제가 쓰려고 했던 껍데기는 박사학위였어요. 제 우울증은 저 자신이 보내준 SOS였어요.


 ‘나 좀 제발 살려줘!’


‘난 언제 행복할까?’의 답이 박사학위는 아니었죠. 옷장이 꽉 차도 마음이 텅 비었던 이유는 ‘난 언제 행복할까?’ 질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노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최유리, 쇼핑중독은 니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거기서 꼭 너를 꺼내줄게!




(*풀스토리는 유튜브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 제가 찾아드린 '조용한 말괄량이'보다 재치 있는 별명에는 '오드리 꼰대', '과거로 달리는 라이더', '오로라 왕자', '왈가닥 백조', '소심한 쌔끈녀', '젠틀한 얌체', '위트로운 여신', '남프랑스 별장의 소설가', 'B급감성 아델하이드', '날선 소공녀', '알깨는 만인의 연인', '여의도 힙스터', '소녀감성 싱어송라이터', '선탠하는 고양이', '꽃보다 부동소녀', '할리우드 이모 래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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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할 옷과 사지 말아야할 옷, 살 때 편한 옷보다 입을 때 편한 옷이 뭔지.

옷 살 때 쇼핑몰 사장님이 안 알려주는 쇼핑 꿀팁. 

콕 찝어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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