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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23. 2021

10년제 대학

성호의 글




ⓒ Philipp Kämmerer on Unsplash



 남들보다 가방끈이 더 긴 것은 아니지만, 그 가방을 유난히도 오래 메고 다녔다. 2011년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총 6학기를 휴학하고, 별도로 졸업마저 3학기나 미룬 뒤인 2021년에야 늦깎이 졸업을 했다. 정확히 10년이 걸렸으니 대학교를 초등학교보다 오래 다닌 셈이다. 군 휴학을 제외하더라도 남들보다 족히 4년은 더 늦었다. 재수해서 들어갔으니 5년이다. 그 정도면 대학 학위를 한 개 더 딸 수도 있을 시간인데, 난 대체 뭘 하느라 이렇게 졸업이 늦었던 걸까.



  대학교 3학년. 본격적인 취업 준비로 모두가 슬슬 바빠질 시기에 나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창업이 하고 싶었다.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 스스로 만든 회사에 열정을 쏟아붓고 싶었다. 자신만의 회사를 차린다는 것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그때의  열정 만수르였다.


 모든 관심사는 온통 스타트업 창업에 있었다. 창업 관련 대회나 동아리 등에서 만난 친구들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휴학까지 하고 진지하게 임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여러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창업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경험과 의지의 부족으로 흐지부지되기도 했고,  번은 팀원들 간의 지분 다툼으로 팀이 해체되기도 했다.



  넘치는 열정을 쏟아부을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따르던 분의 소개로 작은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브랜드 매니저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여느 10 이하의 소기업이 그렇듯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직책일 , 실제로는 모두가 온갖 일을 도맡았다. 일주일에 6일을 거의 매일 야근하며 1년을 다니고 나니 ‘번아웃 와서 그만두었다.


다시는 소기업은 절대 가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다음 행보도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채식 관련 회사였는데, 당시 채식 1 차였던 나는 채식을 널리 알리는 일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일하는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 조금 힘들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판단 미스였다. 그곳에서도 번아웃이 와버렸다.



회사를 ‘근성으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지 모른다. 하지만 번아웃의 근본적인 원인은 ‘얼마나 일하느냐 있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그리고 ‘어떻게 일하는지 달려 있었다.  회사는  어떤 명목상의 비전도 없이 그저  벌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었고,  번째 회사는 비전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사내에 있는 직원  스스로를  비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회사 모두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구성원이라는 여러 구슬을 하나로 꿰어 목걸이로 만들어  단단한 실과 같은 ‘핵심적인 방향성 없다고 느껴졌다. 그저 생존을 위한 매출을 내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목걸이가 되려고 들어온 형형 색색의 구슬들이 실을 찾지 못해 그저 굴러다니다가 나가고,  빈자리를 새로운 구슬이 들어와 채우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군대를 2번이나 다녀오고 남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돌고 돌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내 열정이 불타오르는 환경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첫째,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일 것. 둘째,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환경일 것. 그리고 마지막, 혼자 일을 하든 여럿이서 하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일하는 환경일 것.    



그런 환경을 찾기란 쉽지 않다. 창업을 하려고 해도, 취업을 하려고 해도 ‘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탐욕스러운 목적이 되어버리거나,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목표가 되어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비전이니 고객의 행복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상적인 얘기라며 뒷전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래서 독립을 택했다.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 곳이라면 굳이 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고 싶지 않다.  



20대 청춘을 불살라 대학 졸업까지 10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이런 깨달음과 결심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값진 시간이다. 이러한 자각은 내 앞에 펼쳐진 길을 운전할 튼튼한 자동차가 된다. 내 차니까 당연히 운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해야겠지.



자, 시동을 걸고 출발해 보자! 부릉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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