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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23. 2021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성호의 글




ⓒ 영화 <소울> 중


최근에 한 네이밍 공모전 사이트에 아이디어를 하루에 1개씩 제출해 보고 있다. 공모전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아서 당선된 사람에게는 30만 원에서 많아야 1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상금이 지급된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적은 시간을 들인다면 시간 대비 성과가 굉장히 쏠쏠하겠다는 생각에 용돈벌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시도하고 있다.



처음엔 하루에 30분 정도만 할애하기로 했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탓인지 늘 정신을 차려보면 1시간, 때로는 2시간까지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렇게 시간을 초과하면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 행위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 자신이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라도 된 것처럼(카피라이터가 어떻게 일하는지는 1도 모르지만) 클라이언트가 요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히 자료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몇 가지 내보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뽑는 일련의 과정이 은근 재미가 있었다. 타인의 기준으로 보면 그저 작은 네이밍 공모에 참여하고 있는 무직자 일지 몰라도, 나는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전문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린 과정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정보다는 결과로만 평가받는 세상이기에 결과를 더 중시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외부 기준에 의해 평가받는 데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니 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기도 전에 나 자신이 먼저 결과물의 가능성을 평가한다. 용기를 내서 그것을 세상에 드러낸다고 한들, 용기를 냈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것이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지의 여부만이 가치의 유일한 지표가 되고 말았다.



60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이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상태라고. 어떤 결과물이 나오고 그것을 인정받아야만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있거나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작가라는 말이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저 과정만 즐기면 그만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외부의 인정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본질은 외부의 기준에 따른 목표에 있지 않다. 본질은 행위 자체에 있다. 목표만을 생각하다 보면 과정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 되고 만다. 과정 자체가 곧 목표일 때 그곳엔 순수한 즐거움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잊고 그것에 빠져드는 몰입의 상태.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창조성의 붓을 온전히 자신이 쥐고 있는 데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그것이 곧 행위의 순수한 본질이다.



타인의 인정에 목을 매기 시작하면 완벽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스스로를 너무 압박하다 보면 좋다고 시작한 것인데도 어느새 하기 싫어진다. 누구 좋자고 이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심지어는 전문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이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즐기는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샌가 꽤나 잘하는 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전문가의 반열에까지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뭐 어떤가. 과정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즐겼으면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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