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2)

파리에서 생긴 일

by 꿈청이
화재로 불 탄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사업 = 못 들어감

아주 포근하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며, 파리 2일 차 일정이 시작되었다. 알람을 맞춰놓은 것도 아닌 데 시차적응이 바로 된 건지 눈이 번쩍 떠졌다. 곤히 잠든 친구를 냅두고 혼자 밖을 나섰다. 마침 출근 시간이었는지 파리지앵들이 분주하게 일터로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일하러 가지 않은 아침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살짝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골목에 있는 슈퍼마켓으로 갔다. 몇 년은 파리에서 산 것처럼 편안했다. 귀여운 사과 모양이 그려진 빨간 타포린 백에 물, 음료수, 과자, 초콜릿 등 식료품을 담아 들고 빵집으로 향했다.



빵집에서 정체 모를 파란색 음료를 2개 사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아침을 먹은 후에, 오늘 일정을 살펴보았다. 에펠탑(Tour Eiffel)을 보고, 한인택배점에 들렸다가, 트로카데로 광장(Place du Trocadéro)에서 다시 에펠탑을 본 후에 퐁피두 센터(Le Centre Pompidou)를 갔다가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구경하고,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었다.


그런데 역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다. 퐁피두 센터는 파업으로 문을 닫았다. 분명히 한국에서 출발했을 때는 없던 말이었는 데.. 루브르 박물관은 지나쳤어도 근현대 미술이 모여 있는 퐁피두 센터는 꼭 가야지 싶었던 차여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아쉬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금개혁으로 잔뜩 성이 난 파리지앵들이 이전보다 파업을 더 자주 하는 바람에 프랑스인 선생님은 파업으로 비행기도 안 뜰까 봐 에어프랑스 대신 아시아나로 항공편을 예약했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에펠탑에 혼을 담아 구경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에펠탑으로 갔다. 그런데 에펠탑은 보수공사를 하는 바람에 가까이에서 보니 누더기처럼 흉측한 천 같은 것으로 덮어 놓았고, 생각만큼 감흥이 없었다. 그냥.. 한국에 널려 있는 송전탑 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왜 에펠탑을 지을 당시에 그렇게 반대를 했는지 조금은 공감이 되었다. 그래도 남는 게 사진이라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친구가 불어난 짐 때문에 한국에 택배를 부쳐야 한다고 해서 한인 택배 업체로 향했다.



에펠탑 앞에 버스들이 많이 늘어서있었고, 마침 타야 하는 버스가 와서 바로 탔다. 친구는 무거운 짐에다가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인지 본인이 돈을 낼 테니 택시를 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구글검색을 통해 환승이 된다는 말을 굳게 믿은 상태로 눈앞에 있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기계는 버스표를 넣자 빨간 불을 보였다. '음, 이상한걸' 하는 찜찜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온 친구마저 표를 넣고 있었다. 버스기사님도 아무 말이 없었고, 우리는 다소 한산한 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우리 뒤에 따라온 검표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부정승차에 대한 벌금을 요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무슨 상황인 지 물었지만,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은 잘못된 표를 넣은 것이기에 불법 행위에 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벌금은 인당 50유로(약 7만 원)이었다. 관광객이어서 몰랐다고 항변했고, 표 값을 제대로 지불하거나 아직 한 정거장도 가지 않은 버스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3명의 검표원은 나와 친구를 둘러싸고, 그중 가장 험악해 보이는 몸집이 큰 흑인 여자가 너희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단호하게 벌금을 내라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그들의 말투와 행동에 화가 났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이렇게 관광객을 불법자로 몰아가는 게 기가 막혔다. 그리고 계속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절대 주지 말았어야 했는 데, 순간 여권을 보여주면 좀 이해하려나 싶어서 검표원에게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 내 여권은 검표원의 품 속으로 들어갔고, 나와 친구는 돈을 주지 않으면 여권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협박을 당했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이람.


문득 교통카드 충전을 못하거나 카드를 깜빡했을 때 다음에 타면 내라며 그냥 태워줬던 한국의 버스기사님들이 생각나서 더 울적했다. 검표원이 진짜 경찰인지 사기꾼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여권도 뺏긴 마당에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결제로 벌금을 내고 원래 내리려던 정류장에서 내렸다. 내리기 전, 여권과 함께 벌금에 대한 분홍색 영수증을 받았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성질이 난다. 그렇지만 누굴 탓하겠는 가. 정보를 잘못 보고 실수했으니, 다음엔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지.


가뜩이나 소매치기당할까 봐 긴장하면서 다녔는 데 결국 이렇게라도 뜯기는 건가 싶어서 더 우울해졌다. 한국이 너무 그리웠고, 남은 일정 다 버리고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나보다도 더 열받아 보이는 친구도 걱정이었다. 친구 말대로 택시 탈 걸... 기본료밖에 안 나오는 거리를 십만 원도 넘는 돈을 주고, 모욕을 당하며, 그 와중에 짐은 많아서 처량한 꼴로 털레털레 걸어서 택배 부치는 곳에 도착했다.



버스 벌금 사건 이후, 친구와 나는 많이 풀 죽은 상태로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향했다. 우울한 마음에 맞춰서 날씨까지 우중충했다. 트로카데로 광장은 꽤나 더러웠다.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사람은 많았다. 멀리 에펠탑이 보이고 거기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존이었다. 그러나 2024년 파리올림픽 행사 준비로 트로카데로 광장 주변은 공사 중이었으며,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노란색 크레인이 함께 나왔다.


파리의 겨울은 성수기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있는 것처럼 곳곳에서 공사를 진행 중이었고, 당연히 추웠다. 무슨 정신으로 겨울에 유럽을 온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경비는 성수기에 비해 훨씬 저렴했고, 관광객도 적은 편이었다. 어쩌겠는가 싼 게 비지떡이지. 만약 일평생 한번 파리에 가게 된다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굳이 의미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꽃이 피고 따뜻해서 아름다운 4-5월에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광장에서 대충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주변 레스토랑을 갔다. 춥고 배고파서 멀리는 못 가고, 크고 힙해 보이는 이탈리아 식당이 있길래 기대 없이 들어갔는 데 가격도 괜찮고, 피자도 맛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주차장 + 우주선 컨셉인거 같았는데 청결하면서도 굉장히 특이하고 멋졌다.



파리에서 오페라를 보고 싶어서 전 날에 남은 표가 있나 봤으나 역시 없었고, 혹시 당일 표가 남았는지 확인 차 오페라 가르니에에 가 보기로 했다. 프랑스에는 모두에게 문화의 기회를 동등하게 주기 위해 남는 표를 엄청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극장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그 기회를 잡는 덴 실패했다. 대신 맛있는 AMORINO OPERA 아이스크림을 먹고, 멋진 노을을 기대하며 생트샤펠로 향했다.



차가 약간 밀린 상태로 생트샤펠에 도착했으나, 5시에 입장 마감이 되어서 못 들어갔다. 허탈했다. 날씨는 춥고, 가고 싶은 퐁피두센터와 생트샤펠은 실패하고, 노트르담은 공사 중이고, 에펠탑은 잘 안 보이고, 돈 뜯기고, 전날엔 맛없는 거 먹고.. 체력까지 떨어져서 그런가 좋았던 것보단 힘들었던 것만 생각났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이렇게 된 이상 다음에 또 오는 수밖에' 라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로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에 도전했다. 예전에 애정을 가지고 달팽이를 키운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냥 에스카르고를 먹기엔 조금 버거울 것 같아서 추천 메뉴인 달팽이 수프를 시켰다. 아 그런데.. 처음 먹는 달팽이는 흙 맛이 나고 심하게 물컹거렸다. 이게 왜 추천 메뉴인지 잘 모르겠고, 나와 유럽인 입맛은 많이 다른가 보다 하고 넘기려고 노력했다. 친구는 무난한 메뉴를 시켰지만 그것도 별로였던 것 같다. 나름 프랑스 가이드 지인분에게 얻은 정보로 온 현지인 맛집들이었는 데 영 아니었다. 혹시 내가 그분에게 뭔가 잘못한 게 있었던 걸까.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냥 내 입맛에 안 맞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식당에는 현지인들만 보였고, 작은 공간에 테트리스처럼 테이블을 많이도 넣어놨다. 시간이 지나자 테이블은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프랑스 요리는 전체요리(Entrée, Hors d'oeuvre, Appetizer), 메인요리(le plat, main dish), 디저트(Dessert) 세 가지를 차례대로 먹는 거라고 생각해서 도전했다. 그런데 앙트레와 메인요리만 먹어도 너무 배불러서 나중에는 메인요리와 디저트를 먹는 등 2가지 메뉴로 구성해서 먹었다. 나랑 친구는 후다닥 먹고 나면 일어나기 바빴는 데, 훨씬 전에 온 프랑스 사람들은 한창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긴 테이블의 끝자락이었고, 안쪽 의자에 앉으려면 테이블 밑으로 기어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 그 와중에 8명 정도 되어 보이는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우리의 긴 테이블에 앉으면서 그들과 한 가족이라도 된 것 같은 식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애완견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답게 식당에 당당하게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온 데다 본인 허벅지 위에 강아지를 앉히고 우리와 같은 테이블을 사용했다. 강아지는 능숙하게 주인의 물 잔에 들어있는 물을 혀로 핥아먹었다. 나는 강아지와 마주 보며 에스카르고 수프를 마지못해 떠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 문화를 경험하는 건 언제나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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