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는 사직서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대학졸업 후 서울로 상경했지만 언론고시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대형신문사 시험에 몇 번이나 연속으로 낙방하고 겨우 합격한 지역신문사 기자생활 12년 차. 근면성실한 성격으로 큰 사고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사실은 아직도 버거웠다. 아침 브리핑과 초고마감, 편집국장의 압박, 사람들과의 관계.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연차가 늘어갈수록 더욱 적응되지 않는 현장싸움. 국민들 앞에 떳떳하고 진실된 기사만을 써왔다.
재미없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단 한순간도, 단어하나에도 거짓을 실어본 적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종이신문이 점점 사라지고 온라인중심으로 방향을 틀더니 광고유치를 위한 구독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역신문의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뉴스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90년대생 신입들의 당차고 재미있는 기사들은 영상콘텐츠나 SNS를 힘입어 최고 조회수를 자랑했다. 자극적인 온라인기사들이 쏟아지고 기레기 소리를 들을지언정 클릭수를 높이기 위한 양심 없는 기사들이 탑을 찍었다.
그러한 변화에 분노도 잠시 부장진급에서 밀려난 뒤로는 조용히 비주류 지역소식과 칼럼을 쓰면서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민수가 입사 후 작성한 기사는 6000건에 육박했지만 시샘하듯 돌아온 것은 비아냥이었다.
"12년 동안 특종하나 없는 기자는 너밖에 없을 거다"
"예술하고 싶음 예술을 하지 왜 기자가 됐니?"
"글만 잘 쓰면 뭐 하나? 직장생활 그만큼 했으면 눈치라는 게 있어야지"
얼마 전부터 부쩍 늘어난 체중과 높아진 혈압, 나이는 아직 40대 중반이었지만 정기검진에서 신체나이 50대, 고혈압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뒤로는 감정제어조차 힘들었다. 술과 담배를 끊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아내 은영은 눈물을 보였다. 딸들이 아직 중학생이었고 결혼 10년 만에 장만한 집의 대출금은 아직도 28년이나 갚아야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죽이고 싶으면 참고, 죽고 싶으면 퇴사하라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퇴직금으로 작은 식당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 엄마가 이해해 줄까'
'퇴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시를 쓰면서 살고 싶다고 하면 아마도 화를 내겠지'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친구 영훈으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영훈을 만난 건 언론사 입사시험준비를 시작하면서였다. 논술이 약하다며 민수를 설득해 스터디모임을 만들더니 차곡차곡 스펙을 쌓은 영훈은 1년 만에 대형신문사에 합격했다. 영훈은 모두 민수 덕분이라며 기뻐했고 이후 기자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은 서로의 고충과 비밀들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갔다.
영훈 또한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민수와는 다르게 저돌적이었다. 늘 팩트를 고집했으며 몇 년 전에는 대선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돌직구를 몇 번 날린 뒤로 업계에서 또라이로 소문이 났는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내 취재원 말이야 조짐이 이상해. 조만간 큰 게 터질 거 같아. 너한테만 알려줄게 기다려봐"
영훈은 가끔 얘기하던 익명의 취재원을 현집권 여당 관계자라고만 밝혔다. 민수는 사실 그 취재원이 누구인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어차피 알아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굳이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영훈이 알려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그 취재원에 대해 말해준 것인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이번건은 니가 해줘"
"무슨 말이야"
"다른 신문사, 방송국 새끼들은 안돼. 저번처럼 삭제될 거야. 일단 내가 자료파일을 특수등기로 부칠게 확인해 보고 연락 줘"
하지만 바로 다음날 영훈의 비보를 들었고 등기는 오지 않았다. 등기대신 도착한 소포에는 파일대신 약통이 하나 들어있었다.
'분명히 파일이라고 했는데......'
[저번 건강검진결과도 안 좋고 불면증 있다고 해서 영양제 보낸다. 먹고 건강해져라]
영훈의 사인은 자살이라고 했다. 왜 무엇 때문에? 나에게 보낸다던 파일은 뭐지?
뭔가 이상했다. 파일 확인하고 연락을 달라고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약 먹고 건강해지라고?
죽음에 대해 이토록 가까이 마주한 것은 40여 년 평생 처음이었다. 장례식장에는 업계사람들과 화환이 가득했지만 홀어머니 혼자 지키는 영훈의 빈소는 처참했다. 늦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영훈이 홀어머니를 두고 자살을 할리가 없었다. 뉴스에는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기자의 자살이라는 기사가 짤막하게 나왔다가 사라졌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담긴 유서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별다른 부검 없이 사건조사가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 민수의 반복되는 악몽과 두통은 불안증세를 더욱 악화시켰고 병원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자 건강상의 이유로 결국 사직서 제출했다.
고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임민수 기자님?"
"누구십니까"
"한번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송영훈기자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영훈의 이름을 듣자 울컥하며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훈을 잘 안다는 고대표는 영훈의 예전 직장 상사라고 했다.
"송기자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국문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기사를 아주 잘 쓰시더군요. 특히 칼럼은 정말 팬 됐습니다. 하하"
두꺼비 같은 입술을 크게 벌리며 호탕하게 웃는 그는 생김새로만 봐서는 성격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제안을 받아들여준다면 하고 싶은 취재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 드리겠습니다"
고대표는 자신을 소개하며 대형신문사에서의 업적부터 나오게 된 배경과 만나자고 한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게다가 받았던 연봉 수준까지 맞춰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인터넷신문? e브레이킹? 긴급속보? 혹시 사기꾼 아냐?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다른 곳에 이직해 보면 안 돼? 당신 경력이면 받아주는 데가 있을 거야"
은영은 민수를 만류했지만 민수는 아직도 영훈의 목소리가 생생한 만큼 그를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고대표의 제안은 마치 본인이 도와줄 테니 미심쩍은 영훈의 자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 보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영훈아 나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까.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 제대로'
고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어느 날 회사에 생초짜 신입이 들어왔다. 큰 키에 까만 머리와 흰 피부를 가진 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우진이 말도 안 되는 기사짜깁기를 시켜도 군말 않고 해내는 모습을 보고 귀여운 청년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식구가 늘어났다니 기분이 좋았다.
"신입한테 그런 걸 시키는 기자가 어디있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선배님. 제가 해보니까 기사를 잘 쓰려면 많이 보고 베끼는 게 최고예요"
회식날 직원들로부터 날씬해졌다는 말을 듣고 난 후 생각해 보니 영양제 덕분이었다. 영훈이 보낸 약통에는 30개의 알약이 들어있었다. 은영은 찝찝하다며 버리라고 했지만 친구가 준 마지막 선물을 외면하는 것 같아 먹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더니 실제로 내장지방이 감소했다는 병원에서의 진료결과를 들었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젊어지는 느낌이었다. 민수의 변화를 가장 반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은영이었다.
"와 이렇게 효과 좋은 약은 처음 봐! 정말 신기하다. 여보, 더 많이 사서 나도 같이 먹으면 안 돼?"
두 사람에게서 드론이야기를 들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진은 평소 호기심이 많고 엉뚱한 매력이 있던 친구였기에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민수의 주변에도 드론이 있었다. 출근길에서도 봤고 얼마 전 강릉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도 주변을 맴돌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도 본 것 같은데. 우진의 말대로 그냥 드론이 아니었던 건가 에이 설마'
현우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민수에게 말했다.
"저 선배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름이 아니라 저도 건강관리를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약인지 공유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게. 다 먹어서 다시 사야 되는데 나도 잘 몰라서 구하게 되면 알려줄게요"
사실 얼마 전 은영의 부탁으로 한 알 남은 약통을 들고 약을 구하려고 했지만 약사도 처음 보는 약이라고 했다. 허가되지 않은 외국제품인 것 같으니 복용을 중단할 것을 권유했다.
영훈은 왜 갑자기 영양제를 보낸 걸까. 파일과 약은 어떤 관계인 걸까. 하루빨리 취재원을 만나봐야 했다.
그동안 틈틈이 취재원을 주시했지만 별다른 낌새가 없었다. 그는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었고 영훈의 죽음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평소 루틴업무를 수행했다. 의심 가는 정황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 번은 만나서 확인해야 했다.
"저는 임민수 기자라고 합니다. "
"그런데요"
"송영훈 기자와 절친한 친구사이입니다.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요"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송기자의 파일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민수도 모르게 파일이라는 단어가 나와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그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영훈이 파일에 대한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수 또한 땀으로 젖은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날 밤 한적한 공원에서 만난 취재원을 보자마자 영훈이 왜 죽었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증거도 없이 섣불리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영훈을 위해서. 그는 민수에게 아무 말 없이 명함을 한 장 건넸다.
[휴먼바이오 한유라 박사]
"그 여자를 찾아가요"
"누굽니까"
"그 여자가 송기자에게 파일을 줄 거라고 했으니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답니다"
뒤돌아서던 그가 한마디를 더했다.
"드론을 조심해요"
'드론'이라는 단어에 민수의 눈이 커지는 것을 눈치챈 걸까.
"그 드론은 위험해요"
의문의 말을 남기고 그는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