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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현 Aug 14. 2024

태양은 너를 비추고 있어 (2)


태양은 너를 비추고 있어 (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잠시 후 그는 큰 바위틈새를 지나 약간 지대가 높은 곳으로 성큼성큼 올라갔어. 거기에는 먼저 도착해 불을 만들어 놓고 그 곁에 둘러앉은 남자 둘이 있었어. 지도도 없이 명확한 길도 있는 것도 아닌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찾아낸 걸까 싶은데 내가 그냥 여기 같이 있는 거 자체가 왜?라는 것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걸 이젠 느꼈는지도 모르겠어. 그러니 점차 말이 없어지더라고. 설명해 달라고 조르는 것도 부질없이 느껴지면서.      



그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불을 보고 그들의 악기 소리와 목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내 두려움도 거기에 흐르게 뒀어. 누워서 별을 보았어. 너무 촘촘해서 하얀빛 사이에 검은 아이가 들쑥날쑥 얼룩처럼 떠 있는 거 같았어. 아까보다 훨씬 밝아진 주변의 암석들은 우리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감싸주는 병풍 같더라고.     



그나저나 아까부터 소변이 마려웠어. 타이밍을 찾고 있었지. 나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 나왔어. 딱히 화장실을 찾을 필요도 없잖아. 내가 가는 그곳이 화장실이야. 세상에서 가장 넓은 화장실에서 오히려 자리를 잘 못 잡겠더라.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희미해졌어. 내 머리 위에는 아주 캄캄한 밤의 하늘과 그 덕분에 선명한 수많은 별이 보였어. 서로 다른 시간이 한 그림 안에 있었어.

돌 틈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희미한 기척이 들려. 뱀은 아니겠지. 겁을 먹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주 감당 못할 건 아니라는 느낌이었어. 여하간 놀라지 말라고. 그 존재는 사막여우였어. 녀석은 나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아. 놀라서 얼어버린 나를 오히려 유심히 관찰했어. 그리고 더 놀랍게도 말을 하는 거야.



발이 아프구나.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난 한 마디를 겨우 뱉었어.


어떻게...


어떻게 네가 말을 하는 거냐. 내가 네 말을 어떻게 알아듣지? 내가 발이 아픈 걸 넌 어떻게 알지? 이 모든 어떻게였어. 여우는 내 말을 못 들은 건지 물었어.     


이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아파. 치료를 받았는데도 아파.


나는 갑자기 되게 약한 어린아이처럼 말했어.     


누가 치료해 줬구나. 그런데 그거 누가 치료해 줘도 아팠을 거야.


여우의 목소리는 다정했는데 나는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매번 치료해 주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어. 그래서 이 정도로 덜 아픈 거야.


여우는 계속 웃었어. 내가 무척 귀엽다는 듯.      


너 그 사람들 앞에서 막 뛰어 봤어? 아주 신나게.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속상해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아픈데 어떻게 신나게 뛰라는 거야. 너 진짜 이상한 애다.


여우는 졸지에 진짜 이상한 애가 되었지만 별로 기분 나쁜 거 같진 않았어. 대신 뾰쪽한 돌부리에 아주 편안하게 걸터앉아 더 웃긴 표정을 지어 보였어.      


너랑 장난칠 시간이 없어.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신경질적으로 말했는데 여우는 장난치는 게 아니라며 처음으로 길게 말했어.



그 누군가는 자신의 의미가 사라진 상태의 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어쩌면 그게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인지도 모르지. 자신의 가치를 언제나 타인으로부터 찾고 싶은 거. 겉으로는 안 그렇다고 하는데.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유롭고 기쁜 너를 미워할지도 몰라. 내 말을 믿기 어렵다면 두고 봐. 어딘가 다리를 절고 있는 너를 볼 때 안심한다고. 그들은 자신이 사랑을 주고 있는 거라고 의심조차 없이 믿고 있지.



난 처음으로 여우를 자세히 보았어. 눈동자가 너무 푸르러서 아주 맑은 물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어.

내가 사랑을 느꼈던 순간들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안에 존재하던 어른들은 사라지고 아이들만 남아서 울고 있었어. 자신의 사랑을 받으라고 했던 어른은 저마다 서로 사랑을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어. 처음엔 타인이 먼저 보여서 화가 났고 그다음엔 그 그림 안에 내가 보여서 더 화가 났어.     


그럼 나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대체 어딨어?


여우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어.     


바보야. 아까 만났잖아. 네 앞에서 먼저 걸어가던 사람. 네 다리로 걸을 수 있게 하는 사람.     





아침 태양을 느꼈어. 나는 그가 들고 온 침낭에서 눈을 떴어. 그가 그 먼 길을 고생하며 메고 온 그건 정작 그의 몸을 누일 것도 아니었어. 그는 내게 침낭과 메트를 내어주고 밤새 불과 공간을 지켜줬어. 내가 안심하고 꿈을 꿀 수 있도록. 그는 한동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노래하고 이야기했어. 영어를 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더 자기들의 언어로 떠드는 거 아냐. 싶기도 했는데 나는 그의 해석 안 되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어.



아주 깊고 편안한 잠을 잤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는 장작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사라졌어.



내가 사라졌어.







2022.12.15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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