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문, 점성학을 이용해 봅니다. 저의 행성과 별자리를 토대로 캐릭터와 옷을 만들어 입히고 무대에 세웁니다. 행성이 하는 그날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 답을 이어 나가다 보면 종착지에 다다르는데요.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요?
> 제가 소설로 썼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고양이의 꿈 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져왔어요. 태양을 떠올리니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다합에 있을 때 우크라이나 사람을 따라갔던 그 하루에서 왔고요. 그 기억에서 출발했으니 여기에 실어도 될 것 같아요. <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다. 나머지 행성들, 달, 소행성, 혜성 등은 모두 태양 빛을 반사하여 빛을 낸다. 태양의 현재 나이는 46억 살 정도로 추정하는데 앞으로 70억 년 정도(백색 왜성으로 수명을 다하기까지)를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지구까지의 거리는 1억 5천만 킬로 미터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8분 20초 후에 지구에 도달한다. 그러니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은 8분 20초 전의 모습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예전이다. 말할 수 없이 오래전이다. 태양 내부에서 행융합에 의해 만들어진 그 에너지가 태양표면까지 도달하는데 대략 수 십만 년 이상 걸린다고 하니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은 약 수 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에너지인 거다. 과거에서 온 빛, 우리는 그 속에 산다. 어쩌면 모든 시간이 여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점성학에서 태양은 '나'라는 주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드러내는지, 의식적 측면, 개성, 고유성을 상징한다. 이번 태양 편은 자신의 안에서 타오르는 빛,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캐릭터(태양)+옷(사수자리):
금성, 수성에 이어 또 사순이다.
+무대: 이집트 사막
태양이 그날의 무대에 던지는 질문.
0.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0. 당신이 의식하는 것이 당신의 세상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겠는가?
(바라보고 싶은 곳에 빛을 비추어요. 얍얍. 관찰자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요.)
태양에 갈 수는 없으니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행성으로 간다.
가보니 태양이 아직 뜨기 전이었다. 깜깜했다. 그러니 아주 직전이다. 태양이 곧 뜬다는 이야기.
이집트에서 만난 이 남자가 이곳은 사막이라고 내게 말을 해준 기억은 나. 기괴하고 커다란 암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그곳은 내가 책에서 봤던 일반적인 사막과는 좀 달랐어. 굉장히 다른 행성 같았어. 처음 그곳을 인지했을 때 너무 컴컴해서 대체 어딜 향해 걷는 건가 싶었어. 그리고 누군지도 모를 그 남자는 지척에서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어가는데 그를 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고. 묻는다고 딱히 시원한 답을 해줄 것 같지도 않은 그 남자에게 그저 다 와 가느냐고만 물었어. 너는 이 컴컴한 곳에서 대체 길을 알고나 가는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 말은 하지 않았어. 왠지 그가 모른다고 하면 더 절망적일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상처가 난 발이 너무 아픈 거야. 신발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겠어.라고 말했고 그런 나의 아픔을 외면하듯 묵묵히 걷고만 있는 그가 너무 얄미웠어.
발이 너무 아파. 빨리 걸을 수가 없어.
참다못해 남자에게 말했는데 남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말없이 내게 왔어. 그리곤 내가 들고 있는 짐을 받아서 자신의 어깨에 둘러멨어. 이미 그는 많은 걸 들고 걷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의 이름 모를 악기들과 침낭과 매트 같은 짐들에 내 짐까지 둘러메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어. 짐은 꽤 무거워 보였는데 그의 발걸음은 희한하게 가벼워 보이더라고. 오히려 더 힘이 나는 듯 걷고 있었어. 그 모습은 어쩐지 내 미안한 마음까지 덜어주었고.
힘들면 내가 업어 줄 수도 있어.
그는 뒤를 돌아다보며 가끔 이렇게 말했는데 내 귀엔 너 혼자 잘 걸을 수 있는 거 알거든. 하는 거 같았어. 엄살이 아니라 진짜 발이 아프긴 한데 따지고 보면 그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어. 설령 내일 발이 완전히 망가지더라도 지금 당장 난 걸을 수 있는 건 사실이었거든. 그리고 그를 따라갈 힘이 충분히 있고. 이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느꼈어. 그런데도 난 지금이 아니라 미래가 불안해지면 자꾸 그에게 말했어.
발이 아파.
그는 내가 아주 가볍게 들고 가던 마지막 짐 하나마저 본인이 받아 들었어. 그리고 다시 걷는 거야. 그 모습을 보는데 뭐라 더 말할 수가 없었어. 뭔지 모르지만 낯선 그를 믿고 선뜻 따라나선 내가 나를 믿고 싶으면서도 너 완전히 정신 나갔구나 하는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여기까지 이미 와 버렸는데 뭐 별다른 수도 없잖아.라고 되뇌었어. 그를 따라 다시 걸었지. 어둠 속에서 나보다 더 뚜렷하게 인지되는 그의 실루엣을 보면서 난 생각했어. 난 너라도 보면서 걷지만 넌 뭘 믿고 그 어둠 속으로 걸어가니. 심지어 핸드폰도 의지할 불빛도 이정표도 없는 곳에서 넌 뭘 믿고. 계속 그런 생각들이 연거푸 쏟아지니 발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곳에 그가 닿길, 아니 우리가 닿길 염원하는 쪽에 더 에너지를 쓰게 되더라고.
금방이면 닿을 것 같은 그 길이 길어지면서 의심이 몰려오긴 했어. 모르는 사람을 믿어서 나는 또 안 겪어도 될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냐.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암흑 같은 그 길이 밝아지는 거야. 어둠이 별빛에 촤-악 소리로 양쪽으로 쪼개지며 열리는 느낌이랄까. 가시거리가 딱 그 남자의 등과 움직이는 두 다리 정도만 분간하는 정도였다면 암석의 기괴한 형태도 별안간 눈에 들어오고 짐작조차 어려웠던 지척보다 멀리 떨어진 지형이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거야. 놀랍더라고. 어쩌면 아까부터도 볼 수 있었는데 일부러 덜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면서. 암흑에 누가 손수 여기저기 불을 밝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게 다 보이는 거야. 조금 앞서 묵묵히 걸어가는 그 모습이 내게 말했어.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돼. 너는 혼자가 아니야.
2022.12.14